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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이 아르헨티나 정부의 거액 후원금 거절한 까닭은

교황이 아르헨티나 정부의 거액 후원금 거절한 까닭은

“남에게 손 벌려 판 벌리면 부패에 빠지기 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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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6 발행 [1370호]
“남에게 손 벌려 판 벌리면 부패에 빠지기 쉬워”

아르헨티나 정부는 후원금 기부보다 국민의 요구에 응답해야
 

무리한 사업 확장 종교기관·선심성 지원 정치인 모두에 경고
 

외부 지원 의존에 제동… 교회 사업에 절제·가난·고결함 필요





 아르헨티나 정부가 최근 교황청 산하 교육재단에 기부한 후원금을 프란치스코 교황이 돌려보내면서 빚어진 ‘해프닝’은 부족한 사업비를 외부 지원에 기대곤 하는 종교 기관들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
 

후원금 액수는 1666만 6000페소(한화 약 14억 원)다. 몇몇 서방 언론은 “교황이 악마를 상징하는 숫자 666을 싫어해서 거절했다”며 이를 흥미성 기사로 다뤘으나, 그게 이유가 아니다. 외부 지원을 받아 능력 이상으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종교 기관과 선심성 지원으로 교회를 등에 업으려는 정치인 양쪽 모두에게 보내는 따끔한 경고 의미가 있다.
 

소동의 자초지종은 이렇다. 아르헨티나의 마우리시오 마크리 새 대통령은 5월 30일 스콜라스 오쿨렌테스 재단에 거액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시작된 이 재단은 예술과 스포츠 활동을 통해 청소년들의 사회 통합을 증진하는 국제 조직이다. 교황청은 2013년 8월 이 단체를 산하 기관으로 승인했다.
 

후원금은 아르헨티나 재단 본부가 사무실 리모델링과 직원 36명 채용 명목으로 정부에 요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교황은 호세 마리오 코랄 회장 등에게 서한을 보내 “그 돈을 당장 돌려줘라”고 질책했다. 「바티칸 인사이더」가 입수한 서한을 보면 후원금을 거부해야 하는 이유가 명확히 적시돼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국민의 요구에 응답해야 합니다(새 정부는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공공요금 대폭 인상 등 서민 고통을 강요하고 있어 국민 불만이 팽배한 상황임-편집자 주). 재단은 그들에게 한 푼도 요청할 권리가 없습니다. 사제로서 그리고 형제로서 말하는데, 여러분은 부패로 직행하는 가파르고 미끄러운 길에 막 올라섰습니다. 제 표현이 불쾌하다면 용서하십시오.”
 

교황은 이어 한두 번 외부 지원에 의존하다 보면 그게 관행으로 굳어진다고 지적했다.
 

“그건 중독성이 있고, 자기를 합리화하게 만듭니다. 매끈하고 편안한 길은 치명적일 때가 있습니다. (재단의 스포츠 교류사업과 관련) 저는 젊은이들이 즉석에서 팀을 짜서 동네 공터에서 즐겁게 공을 차는 스포츠를 좋아합니다. 유명 경기장을 빌려 대단한 챔피언전을 여는 걸 원치 않습니다. (판을 크게 벌리다 보면) 부패에 빠질 위험이 있는데, 그걸 피하려면 사업에도 절제와 가난, 고결함이 필요합니다.”
 

교황이 추신에 “숫자 666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쓴 것은 사실이지만, 조크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긴 곤란하다.
 

교황과 중도 우파 성향의 마크리 대통령의 관계는 우호적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추기경 시절에 반 서민적 정책을 펴는 우파 정치인들에게 쓴소리를 많이 했다. 또 정부 지원을 받는 것을 싫어해 “공무원들은 교회에 돈을 갖고 오지 말고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직접 도우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교황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수단 소매를 놓고 고국의 정치인들과 벌이는 ‘줄다리기’의 고충을 코믹하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사진을 찍을 때 정치인들은 교황과 친한 사이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수단 옷자락을 잡아끌고, 교황은 거기에 말려들지 않으려고 슬쩍 뒷걸음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이다.
 

교황은 지난 3월 2일 일반 알현에서도 교회가 받지 말아야 할 돈에 대해 언급했다.
 

“사람을 저임금으로 착취하고, 노예로 만들어 번 돈으로 교회를 후원하려는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그들에게 말합니다. ‘그 돈을 도로 가져가십시오!’ 하느님 백성에게 그런 더러운 돈은 필요치 않습니다. 단지 하느님의 자비로 열린 마음이 필요한 겁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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