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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선교사들의 고향을 가다] (9·끝) 파리외방전교회와 한국 교회 관계

[프랑스 선교사들의 고향을 가다] (9·끝) 파리외방전교회와 한국 교회 관계

한국 교회 위해 기꺼이 거름이 된 프랑스 선교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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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9 발행 [1366호]
한국 교회 위해 기꺼이 거름이 된 프랑스 선교사들

▲ 파리외방전교회 본부 지하 소성당에 전시된 조선에서 순교해 성인이 된 선교사들 초상화와 사진. 백슬기 기자



1827년 교황청에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조선 교회에 성직자를 파견해 달라’며 유진길(아우구스티노) 등 조선 신자들이 보낸 서한이었다. 당시 교황청 포교성성(현 인류복음화성) 장관 카펠라리 추기경은 조선 교회를 담당할 선교회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어느 선교회도 박해받는 조선 교회 전교에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제가 하겠습니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브뤼기에르 주교였다. 그는 전교회 본부에서 비용 등의 문제로 조선 선교를 망설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조선 사람들의 경우만큼 절박한 경우는 없다”며 조선 교회 선교사를 자원했다. 편지가 도착한 지 2년 만이었다.

1831년 카펠라리 추기경은 교황으로 선출됐다.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이다. 그는 그해 9월 두 개의 소칙서를 발표했다. △조선 교회를 중국 교회에서 분리해 조선대목구로 설정하고 △초대 조선대목구장으로 브뤼기에르 주교를 임명한다는 내용이었다.

조선대목구는 이렇게 설정됐다. 한국 교회 교계제도 뿌리에는 신앙 선조들의 피땀과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있었다. 프랑스 선교사들의 고향 순례를 마무리하며 한국 교회와 파리외방전교회의 관계를 살펴본다.







한국 교회에 자립의 힘을 심어주다

파리외방전교회의 중요한 선교 지침은 ‘선교 지역에서 본토인 성직자를 양성해 본토인 자치 교회를 설립하는 것’이다. 조선 교회에서 성직자 발굴을 가장 먼저 실천한 사람은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로서 최초로 조선에 입국한 모방 신부였다. 모방 신부는 1836년 어린 최양업(토마스)ㆍ최방제(프란치스코 하비에르)ㆍ김대건(안드레아)을 신학생으로 선발하고, 그해 12월 마카오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 신학교에 입학시켰다. 이로써 김대건ㆍ최양업 신부가 탄생할 수 있었다.

뒤이어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은 1855년 충청도 배론 장주기(요셉) 성인의 초가에 성 요셉 신학교를 설립하고, 조선인 성직자 양성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1866년 병인박해 때 신학생을 가르치던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푸르티에ㆍ프티니콜라 두 신부가 순교하면서 신학교는 문을 닫게 됐다. 1885년 서울 용산에 성 요셉 신학교를 모태로 한 ‘예수성심신학교’가 세워졌다. 이 역사를 이어 사제 양성의 요람으로 성장한 곳이 오늘날의 가톨릭대 신학대학이다.

1942년 12월 노기남 신부가 한국인 최초로 주교품을 받고, 제10대 조선대목구장으로 임명됐다. 한국 교회 창설 158년 만에 처음으로 조선인 사제가 이끄는 자치 교회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조선 순교자 시복ㆍ시성의 발판을 마련하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은 교리 서적 출판 분야에도 큰 역할을 했다. 선교사 수가 적어 전국의 신자를 만날 수 없어 교리서를 제작해 대신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제4대 조선대목구장 베르뇌 주교는 서울에 인쇄소를 설치해, 성 최형(베드로)ㆍ전장운(요한)에게 교회 서적 출판 임무를 맡기기도 했다.

박해 시기 순교 상황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에도 선교사들의 손길이 미쳤다. 제2대 조선대목구장 앵베르 주교는 기해박해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1839년 조선 서울에서 일어난 박해에 관한 보고」를 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는 신자들과 「기해일기」를 완성했다. 제5대 조선대목구장 다블뤼 주교 또한 조선 순교자들 시복 청원을 위해 조선 교회사 및 순교사 자료를 수집해, 「다블뤼 비망기」로 엮어, 파리외방전교회 본부로 보냈다. 다블뤼 주교의 자료는 이후 달레 신부가 「한국천주교회사」를 편찬하는 데 중요한 기본 자료가 됐다.

백슬기 기자 jdarc@pbc.co.kr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 부위원장 원종현 신부




“과거 프랑스 선교사들은 조선 교회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지금은 거꾸로 한국 신자들이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따라 프랑스를 찾고, 한국에서 파견한 사제들의 선교 활동으로 프랑스 교회가 다시금 활력을 얻고 있습니다. 이런 상호 교류는 양국 교회가 복음적으로 성숙해가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프랑스 선교사 고향 순례를 기획한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 부위원장 원종현 신부는 “한국 교회와 프랑스 교회가 좋은 동반자적 관계를 이뤄나가기 위해선 지속해서 현양 사업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 신부는 앞으로도 양국 교회가 교류를 통해 서로에게 좋은 모습을 배워가길 기대했다. “한국의 젊은 사제들이 프랑스 교회에서 사목한다면 사목 자로서 큰 가르침을 얻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특히 오랜 시간 그리스도교 안에서 일궈온 문화를 통해 실천적 사랑과 겸손한 신앙을 배울 수 있을 겁니다.”

원 신부는 또 신앙의 관점 안에서 프랑스 선교사들을 현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제국주의 등 당시 정치적 상황보다도 신앙의 관점에서 프랑스 선교사들이 조선 교회를 위해 헌신한 삶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주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프랑스 선교사들은 보편 교회 안에서 이웃 교회를 돕기 위해 박해를 받고 순교한 고마운 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 신부는 이번 순례가 “프랑스 선교사들의 삶 하나하나를 알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면서 “한국 순교자들과 더불어 조선에서 사목하다 순교한 프랑스 선교사들의 삶에도 더욱 관심 가져 달라”고 신자들에게 요청했다. 백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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