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영성
[사도직 현장에서]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
김선규 수사(성안드레아병원장·한국순교복자수도회)
2016. 04. 17발행 [13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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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규 수사(성안드레아병원장·한국순교복자수도회)




해 질 무렵 화단에 물을 주고 있노라면, 직원들은 하나둘 현관을 빠져나가고 환우 분들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산책을 하며 삼삼오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분주했던 병원에는 어느덧 노을과 함께 고즈넉한 한가로움이 몰려온다. 화단에 물을 주며 한가로움을 즐기고 있을 무렵에 어떤 여자 환우 분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격앙된 얼굴과 높아진 목소리로 날카롭게 물음을 던진다.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

난 당황한 나머지 “화단에 물을 주려고 여기 있는데요” 하자, 여자 환우 분은 “화단에 물을 주려고 당신이 여기 있는 것입니까?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환자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병동은 어떤지, 식사 수준은 어떤지 돌아봐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환우 분은 병원 생활을 하면서 느끼셨던 불만들을 쏟아내기 시작하셨다. 당황한 나는 그저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환우 분의 정중하면서도 높은 톤의 목소리로 제기한 문제들을 다 듣고는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간단했다. “감사합니다. 이런 문제들을 이야기해 주셔서 말입니다. 검토하고 논의해 보겠습니다.”

환우 분은 다시 강한 어조로 “당신이 왜 여기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하고는 유유히 지나가신다.

환우 분이 지나간 다음 화단에 물을 주는 동안 그분의 물음이 계속 머리에 맴돌고 있었다.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며, 존재론적 질문이 아닌가!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단순히 병원에서 책임을 맡고 있다는 이유뿐만 아니라 수도자로서의 존재 이유를 묻는 것 같았다.

내가 왜 화단에 물을 주며 이곳에 서 있는가를 비롯하여 바쁜 일상에서 나의 존재에 대한 원론적 질문에 대해 소홀하게 되는데, 오늘은 환우 분을 통해 오랜만에 나의 신원과 사도직에서의 소임을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간음한 여인 이야기에서처럼, 모두가 하나씩 떠나갈 때 몸을 굽히시고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시면서 그 여인 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끝까지 함께하셨기 때문이다. 사랑은 옆에 있어 주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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