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영성
[사도직 현장에서] 삽살개 ‘바오’가 부럽다
김선규 수사(성안드레아병원장·한국순교복자수도회)
2016. 04. 03발행 [13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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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규 수사(성안드레아병원장·한국순교복자수도회)




성안드레아병원에는 세 살된 ‘바오’라는 삽살개가 있다. 병원의 환우들과 보호자들, 외래 오시는 많은 분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바오는 병원을 찾는 모든 방문객의 냄새를 일일이 맡으며 확인한다. 입원한 환우들에게는 다가가면서도 항상 거리를 둔다. 물론 먹을 것 앞에선 이 경계가 무너지곤 한다. 바스락거리는 비닐봉지 소리만 나도 바로 말 잘 듣는 개가 된다. 앉으라면 앉고, 기다리라면 기다린다.

그래도 바오에게는 철칙이 있다. 병원과 수도원을 구분한다. 병원에서는 반갑게 꼬리 흔들며 반긴다. 그러나 병원 뒤쪽에 있는 수도원으로 올라올 사람과 올라오면 안 될 사람을 구분한다. 수사님들이 “바오야 짓지 마’, “바오야 괜찮아”라고 해야, 짓지 않는 똑똑함을 발휘한다.

그런데 요즘 문제가 생겼다. 바오의 밥그릇에 사료가 줄지 않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자유 급식을 했던 바오는 하루에 한 번 새벽에 밥을 먹는다. 늘 같은 양의 사료만을 규칙적으로 먹으며 스스로 몸매관리를 한다. 그런데 사료는 그대로 있고, 설사를 해 항문 주위의 털들이 배설물로 냄새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원인을 추적한 결과, 바오를 너무 사랑한 어떤 환우가 밥과 반찬을 몰래 빼돌려 주고 있는 것이었다. 사료만 먹던 바오가 밥을 소화하지 못해 탈이 났다. 환우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지만, 환우들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밥 주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한가지는 바오를 묶어 놓는 것이다. 그러나 바오의 자유로움을 박탈하게 되고, 바오를 반가워하며 예뻐라 하는 환우들의 짧은 행복을 빼앗아야만 한다. 또 한가지는 그대로 두면서 바오의 아픔을 공유하게 하고 함께 돌보도록 발품을 파는 것이다. 단점은 누가 주는지 언제 주는지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과 누군가를 의심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더 큰 문제는 바오의 아픔보다는 주는 즐거움과 따르는 즐거움이 더 큰 환우들의 마음이다. 나는 차선을 선택했다. 좀 불편하더라도 한두 사람의 그릇된 사랑의 표현 때문에 대다수 사람의 소박한 행복감을 빼앗을 수는 없다. 다시 한 번 밥을 주는 환우를 설득하기로 했다.

바오는 마음이 다친 이들에게 대화의 상대요, 마음을 열 수 있는 마음의 창이며, 말없이 옆에 함께 있어주는 벗이다. 나는 바오처럼 누군가에게 그러한 존재가 되어준 적이 있을까! 또 나에게 그런 존재는 있는가? 바오의 있는 존재 그 자체가 부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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