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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선교사들의 고향을 가다] (1)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의 고향, 레삭

[프랑스 선교사들의 고향을 가다] (1)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의 고향, 레삭

선교 위해 죽음 불사른 영성의 뿌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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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0 발행 [1356호]
선교 위해 죽음 불사른 영성의 뿌리를 찾아서


교리를 공부해 천주교 신앙을 스스로 받아들인 것은 우리 선조들이었다. 하지만 미사와 성사를 통해 박해 속에서 조선 교회가 견고히 성장할 수 있도록 헌신한 사람들은 바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다. 피로 물든 조선 교회를 위해 손든 그들은 선교지의 위험을 알면서도 “제가 하겠습니다”라며 서슴지 않고 나섰다.

돌아갈 곳을 기억에서 지운 채, 우리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죽음도 불사한 파리외방전교회의 선교사들.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 순례단과 함께 선교사들의 고향을 방문, 그들의 뜨거운 신앙과 선교 열정이 어떻게 꽃피울 수 있었는지를 확인했다. 그 여정을 9회에 걸쳐 전한다. 첫 번째는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의 고향 프랑스 레삭(Raissac) 지방이다.


▲ 브뤼기에르 주교가 어릴 적 신앙생활을 한 성 바르톨로메오 성당 안 경당 제대 위에 한국 성모자상이 놓여 있다.
   
▲ 브뤼기에르 주교가 태어난 생가. 현재는 마을주민이 살고 있다.
    
▲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를 기념하는 현판.



프랑스 남서부 나르본(Narbonne) 지방에는 지중해로 흘러드는 오드(Aude) 강이 있다. 강의 발원지인 피레네 산맥을 향해 물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레삭(Raissac)이란 작은 마을을 만나는데, 이곳이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Bruguiere Barthelemy, 1792~1835) 주교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자작농의 아들 브뤼기에르


3월 초, 레삭 마을 입구는 조용했다.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높이가 비슷한 가정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연한 건물 바탕에 알록달록 칠해진 나무창은 각자의 개성을 보여주는 듯했다.

거리에서 사람들보다 자주 만날 수 있는 것은 플라타너스 가로수와 곳곳에 펼쳐진 포도 나무밭이었다. 지중해성 기후를 띠는 레삭 지방은 와인용 포도를 재배하기 좋은 지역이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부모도 이곳에서 포도밭을 일궜다. 그는 자작농인 아버지 프랑수아와 어머니 테레즈 사이에서 열한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마을 입구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골목길 어귀에 브뤼기에르 주교가 태어난 생가가 있다. 노란색 벽에 창을 자주색으로 칠한 집이 바로 초대 조선대목구장이 탄생한 곳이다. 하지만 길가나 집 근처 어디에도 그의 탄생지 표지는 없었다. 전문 안내자 없이는 찾아오기 힘들 정도였다. 생가를 지키고 있는 사람도 후손이 아닌 지역 주민이었다.



성 바르톨로메오 성당

브뤼기에르 주교의 생가가 있는 곳에서 골목을 돌아 나오면 십자가 표지가 보인다. 표지를 따라 광장으로 걸어 나오면 커다란 플라타너스 한 그루가 서 있다. 바로 그 옆, 노란 벽돌 위에 편평한 붉은 기와지붕이 덮인 성당이 주교가 어린 시절 세례를 받고 신앙을 키운 곳이다. 흔히 알고 있는 유럽의 대성당들과 달리, 주변 가정집과 비교해도 무색할 만큼 크기가 아담했다. 지붕 위 종탑이 성당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작은 표시였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바르톨로메오 성인에게 봉헌된 이 성당에서 바르톨로메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카르카손 소신학교를 다니기 전까지 주일마다 이곳에서 미사를 참례했다.

어린 브뤼기에르는 키가 평균보다 작고 몸도 마른 소년이었다. 하지만 주교의 오랜 친구는 “그는 의지가 매우 강하고 독립심이 대단한 인물이었다”고 회상했다. 주교의 굳은 신앙심과 선교 의지는 이곳에서 자란 것이 아니었을까.

성당 안 경당 제대 위에는 앞서 방문한 한국 신자가 봉헌한 한복 입은 성모자상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 벽면에는 대리석에 글귀를 새긴 현판이 설치돼 있었다.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 1792~1835’. 이곳에서 자란 브뤼기에르 주교의 선교 열정을 기억하고자 본당에서 최근 제작한 것이었다.

순례단은 이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독서자가 읽은 이날 성경 말씀은 여리지만 성당을 가득 채울만큼 뚜렷하게 울려 퍼졌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비처럼,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시리라”(호세 6,1).

1999년. 성 바르톨로메오 성당 지붕이 내려앉고 종이 바닥에 떨어졌다. 갑자기 내리친 벼락 때문이었다. 하지만 몇 달 걸리지 않아 성당은 다시 제 모습을 찾았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고향 성당인 것을 안 주민들이 합심해 성당 수리를 도운 덕이었다.

디디에(Didier) 레삭 시장은 “몇 년 전부터 이곳에서 나고 자란 브뤼기에르 주교의 생애와 영성에 대해 주민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면서 “이제는 많은 사람이 주교에 대해 안다”고 설명했다.

또 “주교의 생가에 사는 주민에게도 그의 삶에 대해 알렸다”며 “생가에 거주 중인 주민에게 양해를 구하고 현판을 꼭 설치하려고 한다”고 계획을 밝혔다.

글ㆍ사진=백슬기 기자 jdarc@pbc.co.kr



브뤼기에르 주교는 누구인가



1815년 사제품을 받고 모교인 카르카손 신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가르쳤다. 그는 아시아 선교를 갈망하며 1825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했다. 1828년 샴(방콕)대목구 부주교가 됐다. 사제를 애원하는 조선 신자들의 소식을 접하고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와 교황청에 편지를 보내 조선 선교를 자원했다. 결국 1831년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에 의해 조선대목구가 설정되면서 초대 대목구장 주교에 임명됐다.

1년 뒤 이 소식을 접한 주교는 사목 중이던 태국에서 출발해 우여곡절 끝에 중국 마가자 교우촌에 도착했지만, 조선 입국을 앞두고 돌연 선종했다. 1835년 10월 20일, 43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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