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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앙 나의 기업] (19) 김영준 안셀모 경세원 대표

[나의 신앙 나의 기업] (19) 김영준 안셀모 경세원 대표

학술·전문 서적 출판 외길, 하느님께로 향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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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6 발행 [1354호]
학술·전문 서적 출판 외길, 하느님께로 향한 길

▲ 출판사 집무실의 김영준 경세원 대표. 그에게 출판은 생업일뿐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을 향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이창훈 기자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로 일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열과 성을 다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기다리고 섬기는 자세로 37년째 출판사를 꾸려왔다. 김영준(안셀모, 73) ‘경세원’ 대표 이야기다.



파주 출판단지 초입에 있는 경세원. 직원 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지만, 40년 가까이 출판 외길을 달려온 저력 있는 출판사다. 법학ㆍ행정학, 경영ㆍ경제학, 역사 등 학술 및 전문 서적을 중심으로 그동안 200여종의 책을 발행했다.



대표 서적 「다시 찾는 우리 역사」

 

경세원을 대표하는 책으로 김영준 대표는 단연 「다시 찾는 우리 역사」를 꼽는다.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가 집필한 이 책은 1997년 초판 발행 후 2004년과 2014년 두 차례의 전면 개정판을 내면서 현재까지 54쇄를 거듭하고 있다. 2010년에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을 받아 「A Review of Korean History」라는 제목의 3권짜리 영문판을 내기도 했다.

책이 나오게 된 사연도 이채롭다. 한국사에 관한 책을 낼 계획을 세우고 필자를 물색하던 중 한 교수를 추천받았다. 집필 청탁을 위해 많을 때는 한 달에 두어 번씩 연구실을 찾았으나 얼굴을 정면으로 대하지도 못한 채 나오곤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3년을 꾸준히 연구실에 드나든 끝에 마침내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계약 이후에도 탈고하고 초판이 나오기까지 10년 이상 걸렸다. 오랜 기다림 끝에 틔운 싹이 경세원을 대표하는 책으로 활짝 피어난 것이다.

김 대표는 전라남도 광산(현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부농 집안 출신이다. 살레시오중ㆍ고등학교를 마치고 집안에서 농사를 짓다가 우여곡절 끝에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해 경영학을 전공했다. 최전방에서 근무할 때 지뢰가 터져 동료 전우들이 몰사하는 등 여러 차례 삶의 힘든 고비를 넘겼다. 그럴 때마다 세례는 받지 않았지만 하느님의 섭리가 작용한다고 느꼈다. 김 대표는 그것이 살레시오학교 6년의 생활에서 받은 영향이라고 여긴다.

대학을 마치고 무역회사에 다니던 중 아는 분의 소개로 출판사로 자리를 옮겼다. 편집부에서 2년가량 근무한 후에 영업부서로 옮겨 6~7년을 지냈다. 숨어 있다가 이따금 영혼을 울리는 내면의 소리에 응답해 명동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것도, 노총각 생활을 청산하고 가정을 꾸리게 된 것도 이 시기였다.

서울의 봄과 5ㆍ18로 출렁이던 1980년에 그는 독립했다. 종로 낙원상가 옆에 작은 사무실을 내고 책상 두 개를 놓고 시작했다. ‘경세원’이라는 출판사 이름은 전 직장 영업부장 시절 한 대학 학장실에서 보았던 ‘경세제민’(經世濟民)이라는 글에서 땄다. 나라를 살려 백성을 구제하는 것처럼 ‘출판사를 잘 운영해 사람들에게 선익이 되자’는 뜻을 담았다고 할까.

김 대표는 이전 직장의 경험을 토대로 대학 교재와 전문 서적 쪽으로 출판의 가닥을 잡았다. ‘정성 들여 우수한 출판물을 만들자’고 다짐했다. 이를 위해 과감한 시도를 했다. 학생들의 공부에 도움이 되도록 각 장 끝에 내용 요약과 중요 개념을 실었다. 독창적 편집이었다. 표지는 컬러로, 본문은 2도로 인쇄했다. 당시 국내 전문 서적에서 볼 수 없는 화려한 변신이었다. 이렇게 내놓은 대표적 첫 작품이 「현대경제원론」(박홍립 저, 1982)이었다. 첫해에 3만 부가 넘게 팔렸다. 대박이었다. 좋은 책을 낸 것도 주효했지만, 때마침 대학가에서는 처음으로 복수 전공이 허용돼 경제 경영학을 복수 전공하는 학생들이 많이 늘어난 것도 작용했다. 김 대표는 이 또한 하느님의 섭리로 여겼다. 이 책은 이후 80쇄를 거듭하면서 경세원을 꾸준히 알렸다.

정성 들여 좋은 책을 만들겠다는 다짐은 경세원을 지탱하는 원칙이 됐다. 남들이 활판 인쇄를 계속할 때 서둘러 옵셋 인쇄로 바꿨다. 좋은 용지를 구하기 위해서 비용을 선지불하는 것을 마다치 않았다. 좋은 필자를 얻기 위해 몇 년씩 공을 들였다. 고시 수험생들에게 인기였던 「수험 헌법」의 저자 권영성 교수( 2009년 타계)를 필자로 모실 때도 3년이나 공을 들였다. 필자와 계약을 하게 되면, ‘마지막이라고 여기고 원고를 써 달라’고 당부했다. 교정을 직접 보는 것은 물론, 인쇄소와 제본소까지 직접 다니며 꼼꼼하게 챙겼다.

경제ㆍ경영ㆍ역사ㆍ법학ㆍ행정 등 학술 도서 전문 출판사로 입지를 굳힌 경세원은 2010년 가톨릭 매스컴상 출판부문상을 수상했다. 「다시 찾는 우리 역사」를 비롯해 「역사를 아는 힘」 「식민주의와 비교종교」 「독도는 한국 땅」 등 우수한 역사 학술 도서로 이 분야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최근 들어 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일자 경세원은 한영우 교수와 다시 손을 잡고 객관적인 근현대사 서술을 시도한 「미래를 여는 우리 근현대사」를 펴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에 자리한 경세원 전경.


세상 속에서 신앙인으로서 역할 충실히

김 대표는 1970년대 후반 본당 신협을 만들고 경로대학을 설립하는 것을 시작으로 본당과 교회 단체들에서도 헌신적으로 봉사해 왔다. 견진 대부를 통해 접하게 된 포콜라레와 꾸르실료(서울대교구 48차)는 김 대표의 신앙 성숙에 밑거름이 됐고 지금도 든든한 영적 반려자들이다. 2000년 대희년 당시에는 ‘공동선협의회’라는 시민 단체의 사무총장으로 봉사하면서 낙태와 사형집행 정지 거리서명 운동을 벌여 20만 시민의 서명을 받았고, 2012년에는 한국출판협동조합 이사장에 선출돼 활동하는 등 세상 속에 몸담고 살아가는 신앙인으로서도 역할을 하고자 노력해 왔다.

처음엔 일을 위해서라도 사람을 정성으로 대해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그 사람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대하듯이 대하려고 노력한다”는 김 대표. 그에게 출판은 평생을 함께해 온 벗이자 하느님과 이웃을 향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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