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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북녘 본당] 덕원자치수도원구 고산본당, 원산본당

[내 마음의 북녘 본당] 덕원자치수도원구 고산본당, 원산본당

함경도와 연길의 선교 거점이자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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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8 발행 [1353호]
함경도와 연길의 선교 거점이자 뿌리

교구와 달리 자치수도원구는 ‘특수한 사정 때문에 자치 수도원장(아빠스)에게 사목이 위탁된’(교회법 370조) 준교구이자 하느님 백성의 한 부분이다. 덕원자치수도원구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첫 남자 수도회 성 베네딕도회에 위탁, 1940년 1월 13일에 설정됐다. 관할 지역은 함경남도 원산시와 고원ㆍ덕원ㆍ문천ㆍ안변군 일대 3626㎢다. 덕원자치수도원구의 교세 현황은 1944년에 단 한 번 기록이 보이는데, 고산ㆍ원산ㆍ덕원ㆍ고원 본당 등 4개 본당에 35개 공소, 성직자 23명, 수도자 73명, 신자 수 5370명이었다. 하지만 해방 이후 덕원자치수도원구 역시 1949년 5월 11일 덕원수도원이 폐쇄되고 덕원신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모든 성직자와 수도자가 체포되거나 추방돼 ‘침묵의 교회’가 됐다.



23. 고산본당

본당 설립연도 : 1896년

소재지 옛 지명 : 함경남도 안변군 고산읍

현 지명 : 강원도 고산군 고산읍

마지막 주임 : 6대 주임 오트 신부(1940.4~1949.5)



우리나라에 ‘고산’본당이 네 곳 있다. 전주교구 고산본당, 대구대교구 고산본당, 제주교구 고산본당, 그리고 덕원자치수도원구 고산본당이다.

덕원자치수도원구 고산본당은 1896년에 ‘내평’본당으로 설립, 함남 안변군과 강원도 평강, 회양, 강릉 일부 지역까지 관할했고, 신자 수는 1000여 명 정도로 큰 본당이었다. 설립 2년 후 1898년에는 공소 20개, 신자 1400여 명으로 늘었다. 파리외방전교회로부터 1921년 본당 사목을 이전받은 덕원자치수도원구는 카누토 디베르나스 신부, 플라치도 노이기르크 신부 등을 파견, 본당의 기틀을 잡는다. 1931년엔 성당을 교통의 요지인 신고산 고산역 인근으로 이전, 고산본당으로 개칭한다.

고산본당 선교는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원산수녀원의 활약이 컸다. 해성 유치원에 농원, 마리아 도움 시약소, 해성학교 등을 만들어 사도직의 기반으로 삼았다.





24. 원산본당


본당 설립연도 : 1887년 7월

소재지 옛 지명 : 함경남도 원산시 명석동

현 지명 : 강원도 원산시 명석동

마지막 주임 : 14대 주임 담 파비안 신부(1930.8∼1949.5)


▲ 1931년 원산본당의 성체 거동 행렬. 출처=「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원산 수녀원사」


원산본당의 복음화 여정은 1920년 7월 5일 원산대목구 설정이 갈림길이 된다. 경성(서울)대목구에서 함경남북도를 분리, 성 베네딕도회 서울 백동수도원에 위임한 시점이다.

원산본당은 원산대목구의 주교좌 본당으로, 덕원자치수도원구와 함흥대목구 분리 이후에도 주교좌 성당으로 기능하며 ‘관북’(함경도), 나아가 ‘간도’(연길)의 선교 거점이자 뿌리가 됐다.

원산은 1880년 5월 개항, 1914년 경원선 개통으로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됐다. 1887년 7월 원산본당이 설립돼 파리외방전교회 드게트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했다. 신자와 외교인 간 분쟁이 빚어지기도 했지만 1884년 20명, 1890년 67명에 불과했던 신자 수가 1899년엔 486명으로 늘어났다.

원산본당과 관련해 함북 온성 태생인 ‘간도의 사도’ 김영렬(요한 세례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참된 진리 탐구에 목말랐던 그는 스승이 1895년 동학혁명에 연루돼 회령 관부에서 처형당하자 1896년 4월 평소 스승이 권하던 서학을 공부하려고 서울로 향하다가 원산본당 5대 주임 베르모렐 신부를 만나 밤새 토론한 뒤 3주간 교리 교육을 거쳐 세례를 받았다. 이후 그는 간도로 돌아가 박연삼(루카), 김진오(바오로) 등에게 선교, ‘간도 12사도’를 탄생시킨다.

원산본당의 복음화에 있어 1925년 원산에 진출한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도 빼놓을 수 없다. 베네딕도 수녀회원들은 원산본당 등에 야학과 시약소, 노인과 아동을 위한 교리 강습소, 해성유치원ㆍ학교 등을 설립 운영함으로써 복음화의 주역이 됐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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