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나의 신앙 나의 기업] (16) 윤대인 안드레아 강동성심병원 이사장

[나의 신앙 나의 기업] (16) 윤대인 안드레아 강동성심병원 이사장

‘병을 고치는 이는 하느님’이라 단언하는 병원 경영자

Home > 기획특집 > 나의 신앙 나의 기업
2015.09.27 발행 [1333호]
‘병을 고치는 이는 하느님’이라 단언하는 병원 경영자

▲ 꾸르실료 체험 후 낮은 데로 내려가 봉사하는 삶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말하는 윤대인 이사장. 이창훈 기자

▲ 강동성심병원에 있는 성당.



병원은 병을 고치는 곳이다. 의사가 있어서다. 하지만 병원을 경영하면서도 ‘병을 고치는 이는 의사가 아니라 하느님’이라고 믿는 최고 경영자가 있다. 윤대인(안드레아, 65) 강동성심병원 이사장이다.



서울 지하철 5호선 강동역 인근에 있는 강동성심병원. 1986년에 개원한 이 병원은 평생을 의료 사업 및 교육 사업에 헌신한 일송 윤덕선(미카엘, 1921~1996) 회장이 세운 마지막 병원이다. 한림대학교 설립자인 고 윤 회장은 필동성심병원(지금은 중대 부속병원으로 바뀜)을 비롯해 한강성심병원, 강남성심병원, 춘천성심병원, 강동성심병원을 잇달아 세워, ‘병원 경영의 귀재’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들 병원에 공통되는 단어가 있다. ‘성심’이다.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라는 뜻의 ‘성심’(誠心)이 아니라 예수 성심, 성모 성심을 뜻하는 ‘성심’(聖心)이다.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 성모님의 거룩한 마음으로 병원을 운영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들 네 병원은 모두 한림대학교(부속)병원들이다. 하지만 학교법인에 속해 있는 다른 세 병원과 달리 강동성심병원만 별도 법인인 의료법인으로 등록돼 있다. 윤대인 이사장은 윤덕선 회장의 차남으로 강동성심병원의 최고경영자다.

윤대인 이사장은 원래 전공이 병원이나 경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이른바 ‘KS’ 그룹에 속한다. 역경을 딛고 어렵사리 공부해 성공한 입지전적인 유형과도 거리가 멀다. 유복한 집안이었고 공부하는 데에 경제적 어려움은 겪어보지 못했다. 대학 전공은 고고인류학이었다. 조교를 하면서 교수직을 꿈꾸기도 했으나 부친의 부름에 1978년 강남성심병원에서 기획과장으로 병원 경영을 배우기 시작했고, 1986년 강동성심병원이 설립되던 해에는 선친이 1943년에 세운 삼천당제약을 물려받아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현재는 강동성심병원 이사장과 삼천당제약 회장을 겸하고 있다.

윤 이사장은 1990년대 중반까지 말만 신앙인이었지 실제 생활은 그렇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명문 출신으로 늘 최고, 최상을 지향하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1996년 선친이 선종하고 꾸르실료를 체험하면서 삶이 변했다.

“꾸르실료 체험은 이전까지 위만 바라보고 끊임없이 상승 욕구를 채우며 살아왔던 제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됐습니다. 전혀 다른 세상, 아래로 향하는 세상이 있음을 깨닫게 됐지요.”

가진 것이 없어도 아무런 대가 없이 봉사하면서 기쁘게 살아가는 삶을 보면서 윤 이사장은 봉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특히 개인택시를 하면서도 아이를 입양해 키우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는 그 자신의 봉사 생활로 이어졌다. 1년에 네댓 번씩 꾸르실료 봉사를 하면서 윤 이사장은 변해 갔다. 음악을 좋아하는 그는 음악 봉사에 눈을 떴다. 봉사단에 합류해 꾸르실료 음악봉사는 물론, 군부대와 교도소 위문 공연을 했다.

윤 이사장은 봉사에 필요한 비용을 대부분 부담하면서 봉사 활동을 이어갔고, 2007년 꾸르실료 도입 40주년 행사를 계기로 윤 이사장은 ‘꾸르실료 러브클럽 팝스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오케스트라는 매월 적게는 1회에서 많게는 3~4회 봉사 활동을 한다. 여기에 드는 제반 비용은 물론 윤 이사장이 전액 부담하고 있다. 지난 5일 대전에서 열린 전국 울뜨레야에서도 음악 봉사를 했다.

꾸르실료를 통해 알게 된 봉사의 삶은 또한 개인 생활에도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새벽 미사가 있을 때는 하루를 미사로 시작하고, 매일 미사 독서와 복음 말씀을 묵상하고 이를 지기들에게 나누는 삶으로 이어졌다.

이는 또한 병원 경영에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쳤다. 물론 강동성심병원은 설립 자체가 의료 혜택에서 소외된 지역 주민들의 치료와 보건 향상이 우선이었다.

“강동성심병원이 개원할 당시 강동 지역은 서울에서도 소외된 오지였습니다. 여름이면 강물이 범람해 지역이 침수되곤 했지요. 선친이 강동에 병원을 세운 것은 오지 지역민들의 의료 복지를 위한 종합병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병원 경영의 방향이 조금 달라졌다. 물론 환자들의 병을 치유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의사만이 환자를 치유한다는 이전 생각은 바뀌었다. 육체적인 치료와 함께 내적인 치료를 통한 전인적 치료를 중시하게 된 것이다.

윤 이사장은 이 전인적 치료에서 원목실이 크게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꾸르실료 체험이 자신의 삶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처럼 원목 활동이 환자들의 영적 치유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병을 고치는 것은 의사가 아니라 하느님이시다”라는 윤 이사장의 굳은 확신은 바로 이와 무관치 않다.

강동성심병원은 개원 이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 돈이 없어 입원비를 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환자가 강제 퇴원 되는 일이 없도록 해왔다. 취약 계층의 의료비 지원 등을 위해 병원 사회사업팀이 연간 1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사용해 왔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주변에는 초대형 종합병원들이 잇달아 들어섰고, 이들은 치료 제공 외에 다양한 복지 서비스로 환자 고객들을 유치하면서 강동성심병원은 점점 입지가 좁아졌다. 그래서 3년 전부터 대대적인 병원 리모델링을 실시, 현재 마무리 단계에 있다. 본관 앞부분을 증축해 내원객들의 편의를 도모했다. 병실도 6인실을 없애고 5인실로 만들어 사용 공간을 늘렸다. 3층에는 기도실을 둘 계획이다.

“1986년 강동성심병원이 처음 생겼을 때는 말 그대로 종합병원이었어요. 어디를 다쳤건 어디가 아프든 급성 환자들이 와서 치료를 받았지요. 또 병원은 치료로 경영을 해야지 치료 외적인 사업으로 경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당시 선친의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이제는 급성 환자보다 만성 환자가 훨씬 많고 이들에 대한 서비스는 달라져야 한다. 또 장례식장 운영 등도 병원의 중요한 사업이 되고 있다. 5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리모델링을 시작한 것도 이런 변화의 흐름을 따라잡기 위해서다.

지난 5~6월 메르스 사태는 “병 고치러 왔다가 병을 얻어가는 병원이 돼서는 안 된다는 큰 교훈을 줬다”는 윤대인 이사장은 당시 임직원이 협력해 어려운 고비를 무사히 잘 넘긴 것에 대해 고마움을 전하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정말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는 사람을 고친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 가톨릭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
첨부파일
발행일자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