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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앙 나의 기업] (14)조상호 토마스 아퀴나스 (주)나남 대표

[나의 신앙 나의 기업] (14)조상호 토마스 아퀴나스 (주)나남 대표

사람 만드는 책 만들기·나무 심기… 그가 복음을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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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30 발행 [1329호]
사람 만드는 책 만들기·나무 심기… 그가 복음을 사는 법

▲ “조금 불편하게 사는 것이 올바른 길일 때도 있다”는 조상호 대표는 그 길이 대개는 “양심이라는 이름의 나의 신(神)의 목소리가 인도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이창훈 기자



대학 시절 지하신문을 만들다 제적됐다. 기자의 꿈은 접었지만 출판으로 언론 기능을 수행하고자 출판사를 차렸다. 우연히 시작한 나무 심기는 세파의 유혹을 견디고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해준 출구가 됐다. 조상호(토마스 아퀴나스, 65) 나남출판 대표 이야기다.



그는 전남 장흥 출신이다. 고려대 법대 2학년이던 1971년 지하신문 「한맥」 편집장이었다. 청계천 개발에 밀려 경기도 광주로 쫓겨난 이들의 아픈 삶을 취재한 내용이 문제가 됐다. 제적과 함께 징집돼 최전방 철책선에서 소총수로 36개월을 보내야 했다. 어렵사리 복학해 대학을 마쳤다. 1976년 우여곡절 끝에 수출입은행 공채 1기로 취직했다.

하지만 3년 후인 1979년 5월 그는 나남출판사를 차렸다. 첫 책으로 「갈매기의 꿈」 저자 리처드 바크의 「어디인들 멀랴」를 냈다. 이듬해 초엔 출판에 전념하고자 직장을 그만뒀다. 버트란드 러셀의 「희망의 철학」을 냈다. 당시 한국 사회의 모습을 여실히 반영하는 듯한 책이었다. 출판사는 책이 잘 팔려야 하지만 잘 팔릴 희망은 없어 보였다. 1년 후 뜻밖에도 한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하겠다고 해서 4000권을 새로 찍어냈다. 부제였던 ‘희망의 철학’을 제목으로 달았고, ‘나남신서’ 1호를 붙였다.

‘나남신서’는 36년 세월이 흐르면서 1800호를 훌쩍 넘어섰고, 나남출판은 사회과학 전문 출판사로서 굳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1980년대 중반 커뮤니케이션 분야 책을 본격적으로 출판하면서 ‘나남의 책이 없으면 신문방송학과 커리큘럼을 짤 수 없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이 분야에서도 독보적 입지를 굳혔다. 사회복지학 총서도 100권이 넘는다.



베스트셀러보다 스테디셀러

그렇다고 나남의 책이 사회과학 분야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나남양서’ ‘나남문학선’ ‘나남창작선’ ‘나남시선’ 등 인문, 문학 부문에도 관심을 갖고 꾸준히 양서를 펴내고 있다. 그동안 나남이 낸 책은 3000종이 넘는다. 특히 조상호 대표가 큰 스승으로 평생을 사숙(私淑)하고 있는 조지훈의 전집 9권을 낸 것이나, 박경리의 소설 「토지」 21권을 양장본으로 출간한 것 등은 조 대표여서 해낼 수 있는 업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토지」는 밀리언셀러가 됐다.

조 대표가 출판업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출판 언론을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언론이 제 기능을 하기 힘들었던 군부 독재 시절, 출판을 통해 우회적으로 언론의 역할을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출판 언론의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진일보(進一步)하는 자세로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삶을 살아야 했다. 나무 심기는 이 험난하고 고달픈 삶에 숨통을 틔우는 활력소가 됐다.

그는 30여 년 전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옛집 아파트 입구에 커다란 느티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 이렇게 시작한 나무 심기는 1990년대에 들어와 파주 적성의 1만 5000평에 묘목밭을 가꾸는 것으로 이어졌고, 2008년에는 포천에 20만 평의 나남수목원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묘목을 심고 죽이기를 거듭하면서 조 대표는 깨달음을 얻었다. 나무를 심는 일은 세월에 대한 정직한 보상이고, 생명에 대한 애착임을. 세파에 시달리고 인간의 탐욕에 실망할 때마다 조 대표는 나무를 심고 나무와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을 추스르곤 한다.

나남에는 두 가지 캐치프레이즈가 있다. ‘나남의 책은 쉽게 팔리지 않고 오래 팔립니다’와 ‘나남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듭니다’다. 쉽게 팔리지 않고 오래 팔리는 책을 만드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남은 그런 지향으로 책을 만들어왔다. 1년에 100~200권 팔리는 전문 서적들. 그것이 나남을 지탱해온 밑거름이 됐다. ‘나남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듭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에는 어느 필자의 표현처럼 ‘나남이 사람을 만든다’는 당돌함이 들어 있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좋은 해몽을 잘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소화할 때 꿈보다 더 좋은 결과를 실제로 낼 수 있다. ‘나남’이라는 이름이 그렇다. ‘나와 남이 어우러진다’는 뜻으로 풀이한다면 해몽이 좋은 것이다. 원 의미는 조 대표의 고향인 ‘전라남도’의 줄인 말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나와 남이 어우러짐’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나와 남이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대동 사회는 조 대표가 그리는 사회이기도 하다.

그런 사회를 위해 조 대표는 할 일이 많다. 그는 이를 ‘자연채무’(自然債務)라고 부른다. 법적이고 강제적인 효력은 없지만 양심에 비춰 진 빚이 있고 따라서 갚아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조지훈 전집을 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2001년부터 지훈상(지훈국학상, 지훈문학상)을 제정해 해마다 시행하고 있는 것이나, 매년 열리는 박경리 토지문학제에 협찬을 하는 일, 로터리 클럽을 통해 장학금을 내고 모교에 도서를 기증하는 일 등은 또한 자연채무를 갚는 일환이다.



독실한 처가, 그리고 신앙의 삶

조 대표는 2000년 대희년을 1년 앞둔 1999년 봄에 서울 양재동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주변의 권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처형이 수녀일 정도로 처가가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어서 그 압력을 많이 받았다. 제적당하고 최전방에서 3년 동안 복무할 때 관물대에 나뒹구는 영한대역 성경을 독서욕을 채워주는 유일한 위안거리로 삼았다는 조 대표는 그때 성경을 읽은 기억이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고통의 길에서도 부드러움의 평화로 반려가 되어준 아내(황옥순 베로니카)에게 조금이라도 대속이 되었으면 싶었다”는 말로 세례받았을 당시를 떠올린 조 대표는 자신의 신앙과 관련, “생활 신앙”이라고 말한다.

“‘미사가 끝났으니 복음을 전합시다’ 하지 않습니까. 복음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자는 것이지요. 이것이 (복음의)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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