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나의 신앙 나의 기업] (13) 한재권 안셀모 (주)서도산업 대표이사

[나의 신앙 나의 기업] (13) 한재권 안셀모 (주)서도산업 대표이사

“손수건만 만들지 않고 취약계층 눈물도 닦아주려 합니다”

Home > 기획특집 > 나의 신앙 나의 기업
2015.08.02 발행 [1325호]
“손수건만 만들지 않고 취약계층 눈물도 닦아주려 합니다”




설립된 지 60년이 넘었지만 그 회사엔 이렇다 할 사훈(社訓)이 없다. 경영 이념이라고 내세울 것도 없다고 한다. (주)서도산업 한재권(안셀모, 60) 대표이사는 거창한 이념이나 고착화한 구호보다는 변화하는 흐름을 읽고 제때에 대응해 나가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에게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일이 있다. 직원들이 만족해 하는 회사를 만드는 일이다.

피에르 카르댕(Pierre Cardin, 1983), 아놀드 파머(Arnold Parmer, 1989), 닥스(DAKS, 1991), 쉬메릭(Chimeric, 1998), 레노마(Renoma, 1998), 엠시엠(MCM, 2003), 아이엘드(i.el’d, 2007), 앤 클라인(Anne Klein, 2009), 바비(Barbie), 질 스튜어트(Jill Stuart, 2013)….

(주)서도에서 생산해서 판매하는 제품의 브랜드들이다. 정식으로 디자인과 기술을 도입하거나 제휴해서 만든 제품들이다. 종류는 많지 않다. 손수건과 스카프(머플러), 장갑과 우산(양산) 등이다. 그러나 브랜드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허투루 만들어내는 제품들이 아니다. 그만큼 제품에 자신 있다는 표시다.

(주)서도산업은 단지 생산과 판매만 전담하는 기업이 아니다. 제품 디자인에서부터 염직-봉제-포장-유통-판매까지 전 과정을 관장한다. 국내외에 생산 공장을 두고 있음은 물론 백화점, 할인점 등에 전국적으로 모두 73개 매장을 갖추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서도 판매한다.

서도산업은 이북에서 내려온 한 대표 부친(한수일 베드로, 1995년 선종)이 6ㆍ25전쟁 직후인 1953년에 대구에서 세웠다. 1974년 법인으로 전환했고, 6남매 중 맏아들인 한 대표는 대학을 졸업하고 1980년 회사에 합류했다. 실장과 상무를 거쳐 1995년에 대표이사가 돼 지금까지 회사를 이끌어오고 있다.



백화점 판매 손수건은 모두 서도 제품

1980년대 초반까지는 OEM(주문자위탁생산) 방식으로 일본 수출을 주로 했으나 이후 국내 시장에도 진출, 서서히 자리를 잡기 시작해 이제는 패션 잡화 시장에서는 선도적 입지를 굳히고 있다. 중국과 일본 등지로의 수출이 15%, 내수가 85%를 차지한다. 특히 국내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손수건은 100% 이 회사 제품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손수건이나 스카프 같은 패션 잡화들은 디자인과 염색이 품질을 좌우한다. 서도산업이 1980년대부터 외국 유명 브랜드의 디자인 기술을 도입하거나 제휴를 맺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외국 디자인 기술 도입에 그치지 않고 1999년 ‘서도디자인기술연구소’를 설립, 자체적인 디자인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그 훨씬 전인 1985년 자회사 서도염직을 설립, 염직 기술 향상에도 힘을 쏟았다. 회사가 이미 2000년대 초반에 기술 경쟁력 우수 기업, 기술 혁신형 중소기업으로 선정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제품 생산과 판매 못지않게 한 대표가 관심을 쏟는 것은 노사 관계. “자주 만나고 친하게 지내는 것이 최고”라는 한 대표는 대화와 친교를 통한 신뢰 형성을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회사에는 노사협의회가 있어 1년에 3~4차례 임직원이 함께 식사하면서 대화와 친교를 나눈다. 5년에 한 번은 450명에 이르는 전 직원이 회사 문을 닫고 동남아로 해외 나들이를 한다. 인원이 많아 그룹으로 나눠 나들이하지만 일정 중 하루는 모든 직원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지낸다. 2000년, 2006년, 2011년 이렇게 세 차례 다녀왔고, 내년에도 전 직원 해외 나들이를 할 계획이다.

그래선지 이 회사에는 지난 20여 년 동안 직원들이 노동 문제로 이의를 제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 후반 직원들이 노동 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며 노조를 만들면서 위기를 겪었다. 당시 임원이었던 한 대표는 6개월 동안 직원들을 만나고 대화하면서 문제를 해결했다. 한 대표가 1995년 회사 책임을 맡고 제일 먼저 한 일이 사내 근로복지기금 설립이었다. 이듬해에는 서도장학재단을 세웠다. 이 장학재단은 디자인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한 대표가 직원들이 만족해하는 회사를 만드는 데 공을 들이는 것은 기업인으로서 소신이기도 하지만 신앙의 영향도 있다.

“회사 일에 바쁘다 보니까 기도 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신부님과 상담을 했는데, ‘직원들이 만족해하는 회사를 만들도록 노력하면 그것이 기도 생활’이라고 조언해 주시더군요. 제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고맙게 받아들였지요.”

한 대표는 결혼하면서 신자가 됐다. “중매로 결혼하게 됐는데, 장인 되실 분이 부산교구 서면본당 사목회장이셨습니다. 그래서 부산에서 관면 혼배 한 번 하고 대구에서 또 한 번 하기로 계획했지요. 선친께 말씀드렸더니, 결혼식을 두 번 할 필요 없이 성당에서 한 번만 하자고 하시면서 ‘나도 성당에 가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알고 보니 선친께서도 어렸을 때 할머니 손을 잡고 가끔 성당에 다니셨더군요.”

한 대표는 신앙생활에서 두 가지에 역점을 두고 있다. 하나는 ‘바르게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감사하며 사는 것’이다. 그는 기도도 좋지만 바르게 실천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매사에 감사하는 삶이야말로 신앙인들이 추구해야 하는 삶이라고 여긴다.



사회적 기업 유니월드 세워

2003년 한 대표는 (주)유니월드라는 자회사를 세웠다.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싶어서 만든 회사였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의 반발이 커서 접고 말았다. 유니월드는 다른 식으로 살아났다. 2010년 대구시가 일자리 창출 사업으로 추진한 1사 1사회적 기업 운영에 동참해 사회적 기업으로 거듭난 것이다. 현재 49명이 일하고 있다. 그중에는 본사에서 정년으로 퇴사한 후 다시 이 회사로 재취업한 이들도 있다.

2008년 개성공단에 (주)서도투자를 세워 운영하고 있는 한 대표에게는 또 다른 꿈이 있다. 사회적 기업 유니월드처럼 취약계층을 위한 일자리 창출을 계속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탈북 주민들은 성실하고 부지런합니다. 남한 사람들과 섞여 있으니까 적응을 잘 못하는 것 같아요. 회사의 작업 공정도 그렇게 어렵지 않으니 동기 부여만 되면 잘 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 가톨릭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
첨부파일
발행일자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