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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앙 나의 기업](11) 최현만 율리아노 미래에셋생명 대표이사

[나의 신앙 나의 기업](11) 최현만 율리아노 미래에셋생명 대표이사

고객 가치 최우선 하는 그 이름은 혁신 기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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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5 발행 [1321호]
고객 가치 최우선 하는 그 이름은 혁신 기업가

▲ 최현만 미래에셋생명 대표이사는 고객의 가치를 최선에 둘 때 기업도 함께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전남 강진에서 농부의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배가 고파 고구마라도 깎아 먹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을 정도로 큰 병을 앓았지만, 어머니의 극진한 돌봄으로 병고를 이겨낼 수 있었다. 고교 시절에 입문한 가톨릭 신앙은 고비 때마다 버팀이 돼주었다. 미래에셋그룹 수석부회장인 최현만(율리아노, 54, 서울 일원동본당) 미래에셋생명 대표이사 이야기다.



그는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가난한 시골 농부의 자식이 ‘출세’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은 ‘고시’에 합격하는 일이었다. 대학 입학 후 군에 입대한 그는 군 복무를 마치면서 ‘고시’를 목표에 두고 공부에 매진했다. 하지만 세 차례나 도전해 모두 쓴잔을 마셔야 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지금의 아내다. 농부의 아들과 비교할 수 없는 의사 집안이었다. 하지만 사랑은 장벽을 극복하게 해주었다. 그는 고시의 꿈을 접고 당시에 뜨고 있던 증권업종을 첫 직장으로 삼았다. 1989년 동원증권(한신증권)에 입사했다. 동기생들보다 네댓 살 많은 나이였다.

“남들보다 늦게 증권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발을 디뎠으니 적응하려면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성실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고덕동에서 여의도까지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출근해야 했는데, 늘 첫 번째 아니면 두 번째일 만큼 출근이 빨랐습니다.”

그는 입사 8년 만인 1996년 지점장이 됐다. 그것도 대리가 된 지 불과 1년 반 만에 이룬 것으로, 당시 증권업계에서는 초유의 승진이었다.

그는 법인 영업의 달인이었다. 남들이 개인 고객들을 대상으로 영업할 때 그는 법인을 목표로 삼았다. 관련 업계의 동향, 주식 흐름 등을 분석한 자료들을 챙겨서 서울 중구와 세종로 일대의 법인 회사들을 찾아 뿌렸다. 이렇게 해서 법인이 고객이 되면 놓치지 않았다. 또 고객이 된 법인이 연결고리가 돼 다른 법인을 고객으로 모실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능력, 정확한 판단과 철저한 분석, 성실함과 부지런함은 그가 지닌 장점들이었다.



실적 우선은 신뢰 관계를 깨기에

물론 증권업이 그에게 장밋빛 미래만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그는 두 번이나 사표를 낸 적이 있었다. 한번은 대리 승진하기 전 평사원 때였다.

“증권사 영업사원들이 실적에 급급하다 보니 고객들과의 신뢰 관계가 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식이 오르고 잘 될 때는 상관없지만, 주가가 떨어지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고객 우선이 아니라 실적 우선이 신뢰 관계를 깨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증권업계의 행태가 싫어서 사표를 내고 제조업체의 기획실장으로 취직했지만, 더 맞지 않았다. 결국 일주일 만에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 대리가 된 지 13일 만에 다시 사표를 던졌다. 실적 경쟁은 더욱 치열했고, 이를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위기를 딛고 그는 증권맨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리고 그는 1년 후에 미래에셋의 창업 멤버가 되고, 1999년부터 2011년까지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로서 증권업계 ‘혁신의 아이콘’이 된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제가 동원증권에서 평사원이었을 때 부장이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를 잘 봐 주시고 늘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지요.”

그러나 그가 박현주 회장과 함께한 가장 큰 동인은 기업 이념, 경영 철학이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고객의 가치를 중시하는 것이었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고객의 가치를 중시하고, 고객 편에 서려고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고객과 함께 기업도 클 수 있습니다. 이윤만을 목표로 하는 기업은 살아남지 못합니다.”



가치관에 따른 새로운 경영

이런 가치관과 경영 이념을 바탕으로 그는 혁신을 주도해 나갔다. 그 대표적인 것 하나가 미래에셋증권에 객장을 없앤 것이다. 객장에 주식 변화를 알 수 있는 전광판을 설치하는 데만 줄잡아 1억 원 이상 든다. 게다가 고객을 위한 좌석을 배치하는 등 객장을 꾸미는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그는 과감히 객장을 없애는 대신에 고객들이 집에서 직접 정보를 받아보고 투자를 결정할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노력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그 혜택이 고객에게 돌아가도록 해 수수료를 큰 폭으로 낮출 수 있었다.

수수료를 대폭 낮추는 것은 물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큰 모험이었고,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있었다. 그에게는 모범이 있었다. 그가 주님으로 모시는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님도 유혹을 많이 받으셨지만, 유혹을 물리치고 많은 사람을 위해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고객을 위하는 길이 이기는 길’이라는 신념과 용기를 가지고 인내하고 고객 중심의 길을 걷도록 해준 아이콘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는 어린 시절 가톨릭계 학교인 강진 성요셉여중(현재는 성요셉여고)에 다니던 큰 누나의 영향으로 천주교를 알게 됐다. 이것이 인연이 돼 고등학교 시절 학교 바로 옆에 있는 광주 계림동성당에서 조철현(비오) 신부에게서 세례를 받았고 학교 가톨릭학생회에서 활동하면서 신앙을 키웠다. 중학교 시절에 다친 몸이 악화돼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두 번이나 휴학해야 했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를 신앙은 정신적으로 성숙하게 해주었다.

2012년 미래에셋그룹의 수석부회장이 되면서 그해 6월 미래에셋생명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긴 그는 다시 변화와 혁신을 주도, 2013년과 2014년 연속해서 업계에서 가중평균수익률 1위를 차지하는 기업으로 바꿔놓았다. 또 고객을 향한 내실 경영으로 2014년 금융감독원 민원발생평가에서 우수 등급인 1등급을 차지했다. 미래에셋생명은 7월 초 코스닥 시장 상장을 통한 기업 공개로 또 다른 도약의 큰 걸음을 내딛는다.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

고객 편에 서는 기업이라는 경영 이념(철학)은 미래에셋그룹의 사회공헌 활동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개인적인 기부나 자선 활동 외에 그룹의 수석부회장으로서 그룹 차원에서 그룹 총수 박현주 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을 통해 연간 50억~100억을 사회공헌 활동에 사용한다. 임원들은 월급 1%를 재단에 기부한다. 또 미래에셋생명 차원에서도 △인재 육성 △사회복지 △나눔 문화의 3개 분야로 나눠 다양하게 사회공헌 활동을 벌이고 있다.

고객 중심의 혁신적 기업 운영을 위해서는 예수님의 용기를 많이 본받지만, 고객과의 약속보다 주일 미사 참례를 앞세울 정도까지 그 용기가 이어지지 못하고 있어 부끄럽다는 최현만 대표. 하지만 「매일 미사」를 옆에 두고 보면서 매일 기도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가 즐겨 부르는 성가가 시편 23편(가톨릭 성가 54번)임은 결코 우연이 아닌 듯하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나는 아무것도 아쉽지 않네/푸른 풀밭 시냇가에 쉬게 하사/나의 심신을 새롭게 하네.’ 글=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사진=백영민 기자 hee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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