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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6·25 순교자 시복 추진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6·25 순교자 시복 추진은?

시복 추진 ‘장애 없음’ 교령 조만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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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1 발행 [1319호]
시복 추진 ‘장애 없음’ 교령 조만간 발표

▲ 1948년 10월 10일 평양 관후리주교좌성당 사제관 앞에서 최항준ㆍ서항석 신부의 사제서품식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제6대 평양대목구장 홍용호 주교와 사제단 18명(성 베네딕도회 사제 3명 포함)의 생전 마지막 모습. 홍 주교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최 신부와 서 신부가 앉아 있다. 이 사진은 2004년 6월 메리놀외방전교회 미국 뉴욕주 어씨닝본원 고문서고에서 발굴됐다. 평양교구 제공




분단 70주년의 해.

6ㆍ25의 포연이 멎은 지 62년이 흘렀다.

무심히 흐른 세월은 증오를 화해로,

갈등을 일치로 물꼬를 돌렸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분단에 따른 이념 갈등과

전쟁의 와중에 희생된 ‘순교자’들이다.

순교자들의 죽음보다 강한 믿음은

이 땅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무엇인지를 일깨운다.

그분들의 삶을 기리며 본받아

믿음을 실천으로 증거하는 일이다.

교회가 그들의 시복을 추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그 순교 실상을 되돌아보고

시복 추진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살핀다.



“내가 목자인데, 양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습니까? 서울에 있는 양들이 다 피란을 떠난 뒤 그때 가겠습니다.”

6ㆍ25전쟁이 터지자 유창준(바오로)씨는 급히 명동성당을 찾아 조카 유영근(요한, 1906∼1950) 신부를 만나 피란을 권유했다. 당시 서울대교구 당가(현 관리국장)로 있던 유 신부는 작은아버지의 피란 권유를 뿌리친다. 그러고 나서 인민군에게 체포된 주한 교황사절 번 주교를 비롯한 외국인 선교사와 수도자들에게 음식을 날라다 주며 보살핀다. 이를 수상히 여긴 인민군이 “누구냐?”고 묻자 유 신부는 당당하게 “난 천주교 신부”라고 말한 뒤 그 자리에서 체포된다. 이후 ‘죽음의 행진’에 끌려가 1950년 10월 하순께 평북 운산 온정리에서 험준한 우현령을 넘다가 숨을 거둔다.

이 사실을 밝혀낸 유 신부의 조카 유병태(베드로, 79, 인천교구 중3동본당)씨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꿋꿋이 신앙을 증거하고 순교의 길을 걸으셔서 시복 대상자에 포함된 큰아버지 신부님의 삶과 순교행적을 1963년 내외문제연구소에서 출간된 「납북인사의 생활실태-죽음의 세월」을 통해 밝혀낸 건 제 생애의 가장 큰 기쁨이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지병이 깊어 아마 신부님 시복을 보지는 못하겠지만, 지난해 사제품을 받은 증손자 유종선 신부님과 자손을 통해 그 뜻과 순교 신심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처럼 죽음 앞에서 기꺼이 신앙을 입증하며 순교의 길을 선택한 6ㆍ25전쟁 때 순교자들은 얼마나 될까?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역사 전문위원이자 평양교구 시복추진위원인 장긍선 신부는 “전쟁 당시, 또 이전에 피를 흘린 가톨릭 순교자는 수천 명에 육박할 것”이라며 “아무리 적어도 1000명은 넘을 것”이라고 추산한다.

이들은 대체로 전쟁이 벌어진 1950년 6월 말부터 9ㆍ28서울수복 이전까지 주로 순교했으며, 북녘땅 평양ㆍ함흥교구와 덕원자치수도원구, 이남 서울과 춘천, 대전, 전주교구의 인적 피해가 상대적으로 더 컸다. 6ㆍ25 순교자 시복 건은 1984년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 의안에 수록되면서 교회에서 처음으로 공론화됐다. 2000년 대희년 당시 한국 천주교회가 작성한 「현대 그리스도인 순교자 명부」에는 6ㆍ25 순교자 160명의 이름과 약전이 수록됐지만, 이 명부엔 평신도 순교자가 빠졌다. 따라서 이미 시복 추진 대상자로 선정된 81위 외에도 순교자들에 대한 조사와 자료수집, 연구가 앞으로 더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시복 추진이 이뤄지고 있는 하느님의 종 81위는 2009년 시복 추진에 들어간 지 4년 만인 2013년 3월 시복 추진 대상자 선정을 마쳤다. 시복 안건 제목은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로 정해졌다.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위는 지난해 7월 교황청 시성성에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의 ‘장애 없음’(Nihil obstat)을 신청하고 1년 가까이 교령을 기다리고 있으며, 조만간 ‘장애 없음’ 교령이 도착하면 시복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남을 제외한 상당수 순교자 치명 터는 ‘미수복’ 지역이어서 현장 조사가 이뤄지기가 불가능하지만, 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 김득권 신부가 1970년대 채록한 카세트테이프 50개 분량 증언이 최근 일괄 시복 증거 자료로 인정하기 위한 공증이 마무리됐다. 이 81위에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서 시복을 추진 중인 ‘신상원 보니파시오 사우어 아빠스와 동료 37위’까지 합치면 119위에 이른다.

81위 시복 추진 안건 담당 김정환(대전교구 내포교회사연구소장) 신부는 “‘장애 없음’ 교령이 도착하는 대로 예비심사에 들어가는데, 시복 법정 개정은 12월쯤으로 예상하고 있다”면서 “다만 81위 약전은 18∼19세기 조선왕조 치하 순교자들과 달리 6ㆍ25 순교자는 계속 새 증언과 자료가 발굴돼 공식 약전 발간은 보완을 거친 뒤 발간된다”고 밝혔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평양대목구장 홍용호 주교 질녀 최영렬 할머니
▲ 최영렬 할머니는 홍 주교 서품 당시 사진을 보여주며 “요즘도 늘 기도 중에 주교님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제6대 평양대목구장 홍용호 주교의 얘기를 꺼내자, 최영렬(아기 예수의 데레사, 89, 서울 불광동본당) 할머니는 ‘눈물부터 훔쳤다’.

최씨는 홍 주교의 질녀다. 홍 주교의 누나가 최씨의 어머니 홍마리아로, 홍 주교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누나 품에서 자랐다. 학교도 누나의 도움으로 다녔다. 한천보통학교와 용산 예수성심소신학교, 서울 대신학교도 누나와 자형(최남현 다니엘)의 학비 지원을 받아 공부했다. 평남 평원군 한천면 감칠리 327로 돼 있는 홍 주교의 본적지도 최씨의 집 주소다.

최 할머니가 홍 주교와 함께한 시기는 태어난 해인 1927년부터 1937년까지 10년, 그리고 해방 이후부터 1ㆍ4후퇴 때까지 5년 5개월 남짓한 기간이다. 일제 강점기 말엔 홍 주교 주선으로 중국 헤이룽장성 쑤이화시 하이베이진에 이주해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억이 없지 않다. 고향 감칠리에서 과일 궤짝을 제대 삼아 온 가족이 다 함께 홍 주교 주례로 미사를 보던 기억이 선명하다고 최 할머니는 회고했다. 홍 주교가 영유본당 주임으로 있던 시절에 자전거에 환등기를 싣고 와서 요셉이 갓 태어난 예수 아기와 마리아를 보호하기 위해 가족을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는 장면(마태 2,13-15)을 이야기해주던 모습도 떠올렸다.

“주교님이 신부님 시절에 5남매 중 저만 보면 ‘영렬이는 나하고 살자’고 하셨는데, 전 그때 시집갈 거라고만 대꾸했지요. 훗날 생각해보니 수녀가 되라는 말씀이셨는데, 나이가 어려 그걸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었어요. 그리도 인자하시고 따뜻한 분이 없었는데,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 희생되셨으니…. 그래서 주교님만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요즘도 늘 기도 중에 주교님을 기억합니다.”

“주교님이 시복되는 걸 보고 싶지 않느냐”는 물음에 크게 웃으며 “주교님이 시복되는 걸 보는 것은 다 하느님 뜻”이라고 말한 최 할머니는 “천당 가서 주교님 뵙는 게 더 빠를 것 같다”고 농담으로 답했다.

그러고 나서 “전에 공산 치하에서 수난이 시작됐을 때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박숙안(카리타스) 수녀님이 ‘언제쯤 종교 자유가 올 것 같으냐”고 홍 주교님께 물으니 주교님께서 ‘우리가 다 죽은 다음에 평화가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데 아마도 주교님은 순교를 각오하고 계셨던 것 같다”며 다시 눈물을 보였다.

“홍 주교님과 평양교구 사제단의 순교는 민족 화해와 일치, 통일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비친 최 할머니는 “세 살 많은 언니 최경숙(루치아, 성모성심수녀회) 수녀가 주교님이 선물했던 미사 가방을 중국에서 오랫동안 간직하다가 2003년께 한국에 가져와 저를 통해 평양교구에 기증할 수 있었던 것은 보람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최 할머니는 이재을(서울 공덕동본당 주임) 신부의 모친이다.    

글·사진=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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