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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평화·고요… 하느님과 영적 결혼의 단계

기쁨·평화·고요… 하느님과 영적 결혼의 단계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 45. 기도의 단계 ⑩ - 변모적 합일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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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8 발행 [1301호]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 45. 기도의 단계 ⑩ - 변모적 합일의 기도

▲ 영적 결혼의 은총을 받는 데레사





인간을 향한 하느님 계획의 충만한 실현

‘변모적 합일’은 합일의 기도에 있어서 마지막 단계이자 동시에 영혼이 거치는 기도 여정의 궁극적 단계를 말합니다. 영혼은 여기에 도달함으로써 기도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하느님과의 궁극적인 사랑의 합일에 이르게 됩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영원으로부터 인간을 위해 마련해 주신 놀라운 계획으로서 인간은 바로 그렇게 되기 위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됐고 자신의 자유 의지를 통해 협력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이 단계는 「자서전」 11장에서 성녀가 소개하는 정원에 물을 대는 4가지 방식 중 마지막에 해당합니다. 또한 그것은 ‘성’과 ‘궁방’의 비유에서 소개되는 일곱 개의 궁방 가운데 마지막 궁방인 제7궁방에 해당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단계를 지배하는 요소는 ‘기쁨’, ‘평화’, ‘고요’입니다. 왜냐하면 영혼은 자신이 그토록 열망했던 사랑하는 임이신 하느님을 직접 만나 그분과 더불어 온전히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이 합일은 그간 그를 그토록 애태웠던 하느님을 향한 모든 갈망을 충족시켜 줍니다. 또한 인간은 그분과 하나되고 참여(參與)로써 하느님이 되고 변모(變貌)됩니다. 이는 곧 그가 신화(神化)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로써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계획이 완성됩니다. 그러나 이는 이승에서 완전히 실현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여전히 시공(時空)의 제약을 받는 육체적인 한계를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이승에서 도달한 하느님과의 합일 역시 항구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천상에 가서야 비로소 누리게 될 천상지복입니다.



하느님과의 영적 결혼이 이루어지는 단계

변모적 합일을 ‘영적 결혼’이라고도 하는데 이 단계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이전의 영적 약혼에서와는 달리 신비 현상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점입니다. 하느님은 영적 결혼의 은총을 통해 당신 자신을 온전히 인간에게 건네며 통교하시고 그와 더불어 사랑으로 하나 되십니다.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신 하느님께서 굳이 다른 경로를 통해 당신을 부분적으로 드러내실 필요도 없고 부수적인 은총들을 주실 필요도 없습니다. 당신을 통째로 인간에게 선물로 내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상태에서는 신비적인 현상들이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 편에서 본다면, 이 상태는 사랑에 대한 그의 모든 원의를 충만히 채워주기 때문에 이전에 아파했던 모든 사랑의 고뇌가 사라지고 선물로 주어진 하느님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그분께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고 그분과 더불어 하나가 됩니다. 이로써 하느님과의 합일 속에서 참여로써 하느님이 됩니다. 그래서 이 단계를 ‘변모적 합일의 기도’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의 인성(人性)과 삼위일체 하느님 체험

이 단계를 특징짓는 핵심적 요소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들 수 있습니다. 영적 여정의 절정인 이 단계에서 여전히 그리스도는 근본 바탕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특히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성녀의 영적 결혼 체험의 핵심을 차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적 결혼의 은총을 통해 인간이신 당신, 특히 구원 역사의 정점에 있는 십자가 사건을 암시하는 못 자국과 그 흔적을 간직한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육체를 통해 드러나셨습니다(영적 보고서 25). 뿐만 아니라 영적 결혼에서는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깊은 인식’도 하게 됩니다(7궁방 1,6). 이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단지 머리로만 아는 게 아니라 전인적 체험을 통해 알고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적 결혼에서 얻는 유익

이 단계에서 영혼에게 일어나는 효과 또한 영적 여정의 최고봉이라는 그 타이틀에 걸맞게 그 어떤 단계보다도 강렬하고 다양하게 드러납니다. 우선, 이 단계에 이른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는 은총을 받습니다. 그 망각의 밀도가 깊어서 그는 마치 자기 존재마저 없는 듯이 느끼며 오직 하느님의 영광만을 찬미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찬미를 조금이라도 더 보태기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 봉헌하려 합니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세상의 무슨 짓이라도 기꺼이 하려 듭니다(7궁방 3,2-3).

둘째, 또한 그는 하느님을 위해 많은 괴로움을 당하겠다는 원의를 갖습니다. 그러나 이전 단계에서 같은 원의를 가지며 불안해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하느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꺼이 괴로움을 참아 받고자 합니다(7궁방 3,4).

셋째, 박해를 당할 때 몹시도 마음이 기뻐지고, 앞서 말한 단계들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큰 평화를 간직합니다. 또한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들을 원수처럼 여기지 않고 오히려 진심어린 사랑을 베풉니다. 그래서 그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면 도와주려 하고 진심으로 그들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드립니다(7궁방 3,5).

넷째, 이 단계에 접어든 영혼은 관상과 활동이 조화된 삶을 살아갑니다. 성녀는 7궁방에 도달했다 해서 하느님에 대한 관상에만 몰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오히려 관상가일수록 철저히 현실의 삶에 투신해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고 적극적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활동가가 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복음서에 나오는 마리아와 마르타의 비유를 들어 마리아가 예수님을 관상하는 좋은 몫을 선택한 것은 맞지만 마리아와 마르타는 언제나 함께 가야 한다며 두 노선 사이의 균형을 잡아주었습니다(7궁방 4,13-16).


▲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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