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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원의 순교자들] (40, 끝)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박현동 아빠스에게 하느님의 종 38위 시복 의미와 경과를 듣다

[덕원의 순교자들] (40, 끝)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박현동 아빠스에게 하느님의 종 38위 시복 의미와 경과를 듣다

북녘에서 형제애와 신앙 증거한 ‘사랑의 순교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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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3 발행 [1273호]
북녘에서 형제애와 신앙 증거한 ‘사랑의 순교자들’

▲ 김형주 작 ‘하느님의 종 덕원의 순교자 38위’, 200×300㎝, 캔버스에 유채, 2014.




평화신문 2013년 5월 26일자 제1217호부터 시작한 ‘덕원의 순교자’의 연재를 끝맺는다. 이 기획은 교황청 시성성 장관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의 권고에 따라 한국교회 신자들이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 아빠스와 김치호 베네딕도 신부와 동료 순교자들’ 38위를 널리 알리고 이들의 현양 운동을 교회 안에 확산하기 위한 취지에서 시작했다. ‘덕원의 순교자’를 끝맺으면서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박현동 아빠스를 통해 하느님의 종 38위 시복 경과와 그 의미를 들어보았다.



- 덕원의 순교자 시복 의미와 재판 경과가 궁금합니다.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 아빠스와 김치호 베네딕도 신부와 동료 순교자들’ 38위의 시복재판은 20세기 한국 천주교회 순교자들에 대한 첫 시복건이란 점에서 교회 안팎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첫 시복재판은 2009년 12월 28일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성당에서 개정된 이후 12차례 예비심사 회기가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회기 과정에서 16명에게서 목격자 증언을 청취했고, 시성성으로부터 시복재판에 ‘장애 없음’ 판정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역사위원회 최종 보고와 예비심사 보고서 작성에 관한 두 차례 회기가 남아 있으며, 이 회기가 마무리되면 가능한 한 올해 안으로 재판 기록을 시성성에 보고하려 합니다.

이에 앞서 성 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아 연합회 한국 진출 100주년을 두 해 앞둔 2007년 5월 10일,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덕원의 순교자들’ 38위에 대한 시복시성 추진 교령을 반포했습니다. 여기에는 2007년 2월에 열린 오틸리아 연합회 평의회 권고와 같은 해 봄에 열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총회의 격려가 큰 힘이 됐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시대 최근 연도까지 신앙에 대한 배척 때문에 피 흘린 모든 이를 미래에도 기억하자고 호소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뜻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 하느님의 종 38위에 대해 그동안 신문에서 연재했습니다만, 이분들은 어떤 분들인지요.

“덕원의 순교자들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 전후 정치 사회적 혼란, 그리고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리스도인 특히 성직자와 수도자란 이유만으로 무신론자인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무참히 희생된 순교자들입니다. 북녘땅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주님을 증거하던 사제와 수도자들이 6·25전쟁을 전후해(1949~1952) 공산주의자 손에 적잖이 희생됐습니다.

이 가운데 성 베네딕도회 덕원수도원·연길수도원·원산수녀원 소속 수도자들과 함흥대목구·연길대목구 소속 사제들이 포함돼 있는데, 이분들이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 아빠스와 김치호 베네딕도와 동료 순교자들’ 38위입니다. 이 가운데는 한국인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가 13명이고, 독일인 사제와 수도자가 25명입니다. 교계 직분으로 좀 더 세분하면 주교 1명, 성직수사 14명, 덕원·함흥교구 사제 4명, 평수사 13명, 수녀 3명, 평신도 1명으로 구성돼 있고 연길교구 사제 2명도 포함돼 있습니다. 이 가운데 25명은 독일 7개 교구 출신 수도자들입니다.

또 이들 38위 순교자 중 23명은 평양인민교화소와 자강도 만포 관문리수용소 등지에서 총살 등으로 살해됐고, 13명은 옥사덕 수용소에서 영양실조 등으로 굶어 죽었습니다. 그리고 한윤승(필립보)·신윤철(베드로)신부는 해주인민재판장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근처 바닷가에서 생매장됐습니다.

주요 인물로는 초대 원산교구장이며 덕원 수도원장이었던 신상원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 아빠스와 덕원 수도원 출신 첫 한국인 사제인 김치호 베네딕도 신부, 그리고 고 구상 시인의 형인 구대준 가브리엘 신부 등이 있습니다. 또 루치우스 로트 덕원수도원장 신부는 교황 비오 12세가 독일 주재 교황대사로 있을 때 대사 비서로 일했고, 아르눌프 슐라이허 신부는 한국어 신약성경을 번역 출간해 성경 보급에 앞장섰습니다. 백작 가문의 카누트 다베르나스 신부는 ‘두메 본당 신부’로 희생적 삶을 산 수도자였습니다. 또 김종수(베르나르도) 신부는 한국인 첫 수련장 수사였고, 성 남종삼(요한)의 후손인 부산 출신 김동철(마르코) 신부는 월남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자기 본당을 버리지 않고 신자들과 함께 있다가 체포돼 순교했습니다.”



- 덕원의 순교자들이 조선 시대 순교자들과 다른 특징이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20세기 순교자로서 덕원의 순교자들이 지니는 각별한 의미는 이들이 우리 역사의 한복판에서 우리 민족과 운명을 함께 나누었다는 데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대로 덕원의 순교자들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의 정치·사회적 혼란, 그리고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족의 절망과 아픔을 고스란히 몸으로 겪은 분들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삶과 죽음은 그 자체로 이미 한국 현대사의 일부이며, 그들의 순교 사건은 한민족의 비극과 별개가 아닙니다. 덕원의 순교자들이 우리 현대사에 끼친 영향력을 생각할 때, 이들의 순교 행적은 교회 안에서뿐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이가 가슴에 품고 공경할 만하다 하겠습니다.

덕원의 순교자들은 수도 공동체의 형제적 친교를 세상에 드러내 보여주신 분들입니다. 조선 왕조시대 순교자들이 신앙을 지키려고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 ‘용덕’을 증거했다면, 덕원의 순교자들은 오랜 강제수용소 생활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 즉 ‘애덕’과 ‘형제애’를 증거했습니다. 수용소 안팎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 나누는 과정에서 한국인 독일인, 성직자 수도자를 떠나 형제애를 실천한 것이 더 중요한 모습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또 갇힌 형제들이 악조건 속에서도 서로 돌보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서로 격려하고 애쓴 면을 눈여겨봐야 할 것입니다. 이전의 순교자들이 고신 극기와 영웅적 덕행으로 신앙을 증거했다면, 덕원의 순교자는 강제 노역의 일상에서도 형제애와 하느님에 대한 희망을 보여준 ‘사랑의 순교’ 측면이 더 두드러지는 듯합니다.”



-시성성 장관의 권고대로 시복재판 과정에서 이들의 현양사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덕원의 순교자 하느님의 종 38위는 남북한교회를 연결하는 촉매제요 고리입니다. 이들에 대한 평가와 현양은 이념보다는 사랑과 인도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독일의 경우 모원인 상트 오틸리엔수도원과 순교자들의 출신 본당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시복과 현양 운동이 있었습니다. 왜관수도원에서도 음악회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 활동을 통해 이들을 알리고 있습니다. 또 수도원 성당 벽면에 이들을 위한 기도와 현양 공간도 꾸미고 있습니다. 또 8월 초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릴 ‘동소문별곡’ 전에 덕원 순교자에 관한 자료를 전시할 계획입니다.

무엇보다 공산주의자들 특히 북한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우리 수도회 형제들에게 전이되지 않고 그들에 대한 연민이 생겼다는 점이 ‘신비’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덕원의 순교자들이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북한과 북한 침묵의 교회에 대한 사랑과 관심, 인도적 지원이 확대될수록 덕원 순교자들의 현양도 확산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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