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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문화산책]<59> 건축(12, 끝) 성당, '빛의 성작' 또는 '어두운 성작'

[가톨릭 문화산책]<59> 건축(12, 끝) 성당, '빛의 성작' 또는 '어두운 성작'

성당은 제대 품고 성혈 안은 '커다란 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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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3 발행 [1260호]
성당은 제대 품고 성혈 안은 '커다란 성작'

 '빛의 성작'과 '어두운 성작'. 독일의 건축가 루돌프 쉬바르츠(Rudolf Sch-warz, 1897~1961)가 말한 표현이다. 그런데 나는 이 표현만큼 성당 건축의 본질을 잘 나타내는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의 성혈을 담는 잔인 성작(聖爵)은 귀중한 재료로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유리가 매우 귀해 유리로 만들다가 그 이후 금과 은으로만 만들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에는 고상하고 단단한 다른 재료로 만들 수 있도록 했으며 그 안은 반드시 도금하게 했다. 성체를 담아 두거나 사제가 환자에게 성체를 영해주기 위해 성체를 모셔갈 때 쓰는 성합(聖盒)은 성작과 모양이 비슷하나, 뚜껑이 있고 성작과 마찬가지로 금속으로 만들며 내부를 도금한다. 그러니 성작과 성합은 뚜껑이 있는가 없는가가 다를 뿐 모양은 거의 비슷하다. 영어로는 성작을 '찰리스'(chalice)'라 하고, 성합은 '시보리엄'(ciborium)이라고 한다.

▲ 산타 코스탄자 성당. 이탈리아 로마.
▲ 거룩한 십자가 성당. 독일 보트로프.


 '빛의 성작'

 건축가 루돌프 쉬바르츠는 전후 가장 중요한 가톨릭교회 건축가다. 그는 1938년에 「교회 건축에 대하여」(Vom Bau der Kirche)라는 책을 출간했으며, 이것이 20년 후에 영어로 「육화된 교회」(The Church Incarnate)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그리고 그 영어판의 서문은 그의 친구이며 근대 건축의 거장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가 썼다. 미스는 그를 위대한 건축가이며 사고하는 건축가이자, 위대한 독일의 교회 건축가, 이 시대의 가장 사려 깊은 사상가로 평가했다. 쉬바르츠는 로마노 과르디니(Romano Guardini) 신부와 아주 가깝게 일을 했으며, 과르디니가 주도한 대규모의 독일 가톨릭 청년 운동을 위한 경당 설계를 시작으로 수많은 독일의 주요 현대 성당을 설계했다. 건축을 공부한 후 신학과 전례학을 공부했으며, 그의 건축 작품의 약 60%가 성당 건축이었다.  

 쉬바르츠는 교회 건축의 평면을 7개의 이상적 형태로 제시했다. 그런데 그는 7개의 평면 중 두 개는 성당을 '빛의 성작'(chalice of light), '어두운 성작'(dark chalice)이라고 말했다. 참으로 의미 깊은 표현이다. '빛의 성작'은 세 번째 평면의 이름인데, 이 평면에서는 둥근 지붕 위에서 빛이 들어와 공간의 수직적 차원을 더해 준다. 마치 성작이 위에서 내려오는 밝은 빛으로 가득 차듯이, 성당 공간도 그렇게 빛으로 가득 차야 한다는 뜻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하늘 아래에 열려 있는 세상의 중심에는 제대가 있고, 제대는 하늘 밑에 있기 때문이다. 제대를 통해 땅은 빛을 향해 올라간다. 이를 두고 쉬바르츠는 이렇게 말했다. "한 줄기의 햇빛이 떨어지는 사물처럼 제대는 빛으로 옮겨진다. 제대는 해가 아니다. 그러나 제대는 빛을 받아 빛나는 땅이다."

 돔이라는 둥근 지붕 위를 뚫어 그 아래에 빛을 받아들이는 형식은 예전부터 중요한 건축에 자주 사용됐다. 그러나 교회가 이 형식을 받아들인 것은 둥근 지붕 위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가득 채워진 공간은 땅과 하늘이 만나는 것이며, 그 안에서 사람들은 무거운 땅에서 벗어나 가볍고 밝은 하늘로 이어진다고 직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성작도 마찬가지다. 성작은 단지 포도주를 담는 용기가 아니다. 성작 아래의 오목한 부분은 땅이며, 그 안에 비어 있는 것은 하늘이다. 성작은 하늘 아래 땅이 있으며 그 안이 빛으로 가득 채워짐을 드러내는 용기다. 그래서 사제는 성체와 성혈을 담은 성반(聖盤)과 성작을 땅에서 하늘을 향해 들어올린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가장 뛰어난 건축인 로마의 산타 코스탄자 성당(Santa Costanza)은 돔이라는 둥근 천장을 얹은 것으로는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원통 구조물 위에 뚫린 창을 통해 빛이 들어온다. 그리고 이 빛은 그 밑에 있는 제대와 공간 전체를 비추며 우리를 조용히 감싸준다. 둥근 천장에는 프란체스코 돌란다(Francesco d'Ollanda)가 1540년에 완성한 프레스코화가 하늘처럼 높은 느낌이 나도록 그려져 있는데, 그 안에 말없이 앉아 천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몸과 공간이 하나가 된다.

 원통 공간 바깥쪽으로 볼트 천장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덮여 있다. 이 모자이크에는 볼트 천장 밑에 있는 작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중심 공간에서 나온 반사광이 겹치면서 시시각각 미묘한 빛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피어난 꽃과도 같이 아름답고 주옥과 같은 이 원형 성당은 다름 아닌 제대 위의 성혈을 담고 있는 거대한 '빛의 성작'이다.

 '어두운 성작'

 쉬바르츠는 다섯 번째 평면을 '어두운 성작'(dark chalice)이라 부르고 있다. 이 평면이 포물선이어서 들어올 때는 넓고 높게 들어오지만 제대를 향해 걸어가면서 공간은 조금씩 좁아진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팔을 벌리고 사람들을 기쁘게 맞아들이시지만, 안으로 들어오면서 공간은 서서히 어두워지면서 겟세마니에서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속으로 바뀌어 감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넓고 밝게 빛나는 정면을 뒤로 하고 제대를 향해서는 무거운 재료로 둘러싸인 채 어두움이 드리운다. 벽과 둥근 천장은 회중 위로 높이 올라가고 디테일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제 성당 공간은 서서히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라고 기도하시면서 고통을 받으시던 장소로 바뀐다. 이것이 건축가 쉬바르츠가 '어두운 성작'이라고 표현한 성당 건축의 의미였다.

 그는 실제로 벽면이 포물선을 이루는 성당을 만들었다. 독일 보트로프(Bottrop)에 있는 거룩한 십자가 성당(Heilig Kreuz Kirche)이 그것이다. 벽돌을 차분하게 쌓은 포물선의 벽면이 성당을 감싼다. 포물선이 시작하는 정면 쪽의 큰 창은 마치 성작의 윗면과 같다. 제대 위의 성혈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는 성당이라는 거대한 성작의 밑면에 와 있는 셈이다. 이때 어두움이 드리운 제대와 벽면은 주님께서 받으신 수난과 고통의 공간이 된다.

 성당 건축의 의미

 성당 건축은 단순히 바닥과 벽과 지붕으로 둘러싸인 집이 아니다. 성합과 성작이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을 담고 있듯이, 성당은 제대를 품고 그 위에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을 안고 있는 커다란 '성합'이자 '성작'이다. 성당이라는 건축물은 성합과 성작처럼 금과 은과 같은 귀한 재료로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단단한 재료에 도금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벽돌, 돌, 콘크리트, 나무, 회반죽과 같은 어두운 재료로 만들어지는 성당은 최종적으로는 빛으로 거룩하게 도포되는 거대한 '빛의 성작'이다. 그 거대한 '빛의 성작'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초대하신 우리도 들어가 있다. 또 성당이라는 건축물은 돌이나 나무라는 흔하지만 무겁고 어두운 재료로 지어지기 때문에 '어두운 성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 성당은 건축가 루돌프 쉬바르츠의 말을 빌리면 그 자체가 '빛의 성작'이요 '어두운 성작'이다.  

 그리스도의 몸을 담는 성합과 그리스도의 피를 담는 성작을 만드는 데 쓰인 유리며 금이며 그 밖의 다른 재료는 얼마나 행복한 재료일까? 이 세상에는 무수한 재료가 많은데 이 물질은 그 중에서 뽑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담는 성합과 성작이 됐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내어주신 몸과 피를 영하며 내 몸 안에 모시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인 이들일까? 우리는 무수한 인간 중에서 선택돼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모시는 그리스도인이 됐다. 그렇다면 성당을 짓는 데 쓰인 돌은 얼마나 행복할까? 그 돌 중 어떤 것은 성당 저 꼭대기에 있고 어떤 것은 저 바닥에 놓였다. 또 어떤 것은 벽을 만드는 데 쓰여 때때로 환한 빛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돌도 불평하지 않는다. 이들은 무수한 돌들 중에 선택돼 쓰임새에 따라 하느님의 집인 성당을 짓는 데 쓰인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그리스도인은 그 자신이 성작과 성합이요, 하느님의 집인 성당은 그 자체가 아주 큰 성작과 성합이다.

 성당 건축은 교회가 필요로 하는 공간을 실현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단지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도구가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훌륭한 성당의 공간과 형태는 함께 모인 사람들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위대하신 하느님을 믿음의 눈으로 뵐 수 있게 해줬다. 성당이란 무엇인가? 성당은 빛의 자녀인 인간이, 수난하시고 부활하셨으며 구원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모시려고 모이는 거대한 '빛의 성작'이며 '어두운 성작'이다.


김광현(안드레아, 건축가,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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