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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37> 구스타보 구티에레스(상)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37> 구스타보 구티에레스(상)

'가난한 이들' 의 관점에서 시작된 '해방신학' , 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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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6 발행 [1256호]
'가난한 이들' 의 관점에서 시작된 '해방신학' , 문을 열다

가난한 이들의 변호인

 구스타보 구티에레스는 흔히 '해방신학의 선구자' 혹은 '해방신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그런 칭호들은 그의 신학적 일생과 지향에 비추어봤을 때 그저 부수적 수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의 신학적 근본관심사는 단순히 신학적 성취나 새로운 신학적 체계를 정립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의 빛 속에서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가난한 이들의 얼굴을 신학적 화폭에 그려내고자 하는데 있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들의 삶과 해방실천에 기초한 관점이 구티에레스 신학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그의 저술들 역시 바로 이런 관점이 녹아들어 씌어졌다. 따라서 구티에레스의 해방신학을 통하여 가난한 이들을 향한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를 귀여겨듣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그의 신학의 문턱을 넘어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의 본질적인 의도와 무관하게 또 하나의 새로운 신학적 우상을 만들어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생애

 구스타보 구티에레스는 1928년 6월 8일 페루의 리마에서 케추아족 혼혈(메스티조) 부모 사이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열두 살 때 걸린 골수염 때문에 수년간 병고에 시달렸으며 결국 한쪽 다리에 장애를 입어 절게 됐다. 1947년 정신과 의사가 되기 위해 리마의 산 마르코 대학교에 입학해 의학을 공부하면서 정치동아리에 참여해 정치현실에 눈뜨게 된다(1947-1950).

 그러나 졸업 후 철학과 신학에 관심을 갖고 진로를 바꿔 사제로 살기로 결단해 페루 리마의 가톨릭 신학교와 칠레의 산티아고 신학교에 입학해 잠시 수학한 후, 유학길에 올라 벨기에 루뱅 가톨릭대학교에서 철학과 심리학을(1951-1955), 프랑스 리용 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을 연구했다(1955-1959). 1959년 사제로 수품한 후 1년간 교황청 그레고리오 대학에서 수학한 후(1959-1960) 귀국해 1960년부터 1965년까지 리마 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리마의 빈민지역 리막(Rimac)에서 사목생활을 병행해 가난한 이들이 처한 불평등한 현실과 구조적인 불의에 눈뜨게 된다. 1974년에는 리마에 가난한 이들을 위한 라스 카사스 센터를 설립했다.

 1985년에는 학문적 업적을 인정받아 프랑스 리용 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에도 유럽의 여러 유수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1993년에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헌신을 인정받아 프랑스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1998년에는 그의 해방신학에 큰 자극을 준 도미니코 수도회 회원 라스 카사스(Bartolome de Las Casas 1484-1566)를 비롯해 프랑스 유학 중에 교류했던 콩가르(Y. Congar), 세뉘(M.-D. Chenu), 쉴레벡스(E. Schillebeeckx) 같은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 회원들의 영향으로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했다. 구티에레스는 유럽 여러 대학교와 미국 노틀담 대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했으며, 노구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왕성하고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구티에레스 해방신학의 배경

 구티에레스의 신학에 큰 자극을 주었던 교회적 사건으로는 특히 1962년부터 1965년까지 열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자신이 신학자문으로 참여했던 1968년 콜롬비아 메데인(Medellin)에서 열린 제2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CELAM Ⅱ)를 언급할 수 있겠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의 쇄신과 적응(aggiornamento)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교회를 구원의 보편적 성사로 자리매김함으로써 교회와 세상의 관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시대 안에서 인간들의 열망과 하느님 현존과 계획의 징표를 읽고 이를 복음의 빛으로 해석해 응답하고자 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들은 남미의 구체적 현실에 대답하기에는 미흡했으며 일반론적 서술에 머물고 있다는 한계를 지녔다. 반면에 라틴 아메리카 교회를 그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만큼 새로운 전환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되는 메데인 회의(1968년)는 비참하고 불의로 가득 찬 라틴 아메리카 대륙에서 교회가 처한 현실을 바탕으로 교회 쇄신의 방향을 더욱 뚜렷하게 제시했다.

 메데인 회의는 라틴 아메리카 대륙이 전면적인 해방, 온갖 예속으로부터의 해방, 인격적 성숙, 집단적 통합을 바라는 열망으로 가득 찬 새로운 역사적 시점에 들어 서 있다고 진단하면서(메데인 문헌: 서문 4항) 남미의 상황을 '제도화된 폭력이라고 부를 불의의 상황'(메데인 문헌: 평화, 16항)으로 규정한다. 특히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인 불평등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주님이 주시는 평화의 선물을 거부한다. 그런 곳에서는 주님 자신조차도 거부된다"(메데인 문헌: 평화, 14항)고 천명하였다. 아울러 메데인 회의는 인간을 온갖 노예상태에서 해방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의 빛 속에서(메데인 문헌: 정의, 3-5항 참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과 연대(메데인 문헌 : 교회의 가난, 9-11항 참조)를 강조하고 교회의 현실 참여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다.

 구티에레스의 해방신학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메데인 회의의 구체적인 육화라고 할 수 있으나 그의 신학에 결정적 배경을 이루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구티에레스에게 가난한 사람들은 바로 남미의 불의한 현실을 이해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새로이 숙고하게 한 결정적 동인이었고 해방신학의 일차적 산파였다.

 구티에레스 해방신학의 일차적 대화자인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16세기까지 거슬러가는 해방 전통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라스 카사스(Bartolome de Las Casas, 1484-1566)는 정복자의 관점을 극복하고 가난한 이들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언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해방신학의 선구적인 역할을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스페인 출신의 도미니코 수도회 선교사였던 라스 카사스 16세기 스페인의 라틴 아메리카 인디언 정복과 식민지 지배를 비판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시선에서 복음을 증언한 '가난한 인디언의 변호인'으로 일컬어진다. 16세기 당시 라틴 아메리카 상황을 지배했던 신학은 남미의 인디언 정복과 불의한 착취 그리고 식민지 지배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했던 억압과 정복의 신학에 다름 아니었다. 이에 따르면 라틴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인간의 자연성에 따라 애초부터 종의 처지로 태어났고, 이들의 주인으로 태어난 유럽인들보다 열등하다는 것이었다. 이 신학은 인디언들을 복종시키고 복음화하기 위해서는 전쟁도 불가피하다고 보고 인디언에 대한 억압과 착취, 노예화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했다.

 이에 대항해 라스 카사스는 인디언들 역시 자유롭게 태어난 존재이며, 자신들의 자유를 존중받을 권리를 갖고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노예로 간주되고 있는 인디언들은 억압과 착취로부터 자유롭게 돼야 하며, 그렇지 않고서는 복음화도 불가능하다고 봤다. 진정한 복음화는 오로지 자유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구원은 정의와 불가분한 것으로 여겨 당시 사회경제 체제의 핵심을 이루고 있었던 엔코미엔다(라틴 아메리카에서 스페인 국왕이 하사한 토지)를 철폐하는 데 앞장섰다. 무엇보다도 라스 카사스의 신학 핵심을 이루고 있었던 것은 인디언들이 단순히 복음화의 대상이 아니라 복음화의 주체임을 간파한 것이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인디언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고 보고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인디언들과 그리스도를 동일시했다는 점에 있다. 이런 맥락에서 구티에레스가 라스 카사스를 해방신학의 선구적 역할을 한 인물로 보고 자신의 신학적 작업의 여정에서 깊이 천착하고 있다는 점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구티에레스는 라스 카사스 대한 연구서들을 출간하기도 했다(특히 「라스 카사스: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서」, 1992).

주요저술

▲ 구티에레스 저서 「해방신학」 번역본(왼쪽)과 영어판 「우리의 우물에서 생수를 마시련다」.

 구티에레스의 주요 저술로는 무엇보다도 해방신학의 선구적이고 기념비적인 저작이라고 할 수 있는 「해방신학」(1971: A Theology of Liberation: History, Politics and Salvation)이 있다. 본격적인 해방신학 역사의 첫 장을 열었다고 할 수 있는 구티에레스의 「해방신학」은 1968년 페루의 심보테(Simbote)에서 해방의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최초의 강연에서 비롯됐고, 남미 해방신학의 대헌장(Magna Carta)으로 여겨진다. 그 후에 전개된 남미 해방신학의 대부분은 이 책을 인용한 각주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유신정권 시절인 1977년에 성염의 번역으로 출간돼 교회 안팎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금서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그 이후의 저술들은 근본적으로 「해방신학」의 근본 관점을 다양한 맥락에서 심화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저서로 「가난한 이들의 역사적 위력」(1979), 「우리의 우물에서 생수를 마시련다」(1983), 「욥에 관하여」(1986), 「생명의 하느님」(1989), 「라스 카사스 :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서」(1992: Las Casas: In Search of the Poor of Jesus Christ) 등을 언급할 수 있다. 그리고 구티에레스의 오랜 벗이요 현재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이기도 한 게르하르트 루드비히 뮐러(Gerhard Ludwig Muller) 추기경과 2004년에 공동으로 출간한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서서: 해방신학」(On the Side of the Poor: The Theology of Liberation)이 있다.

정용 신부(광주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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