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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문화산책]<50> 문학(10) 톨스토이의 '부활'

[가톨릭 문화산책]<50> 문학(10) 톨스토이의 '부활'

악이나 죄에서 우리를 끌어올려주는 건 '부활'같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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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9 발행 [1251호]
악이나 죄에서 우리를 끌어올려주는 건 '부활'같은 사랑

▲ 러시아 화가 레핀이 1887년에 그린 톨스토이 초상화.


우리가 받아들인 소설 「부활」

 '황성옛터'로 유명한 가수 이애리수는 1932년에 '시베리아 찬바람이 지구상에 떨치니 보기는 죽은 듯하나 실상은 살았도다'로 시작되는 가요 '부활'을 히트시켰다. 가사 내용을 살펴보면 일제 강점기 당시 우리 민족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카추샤의 노래'는 이미자, 은방울자매, 조미미 등 여러 가수가 불렀다. "마음대로 사랑하고 마음대로 떠나가신 첫사랑/ 도련님과 정든 밤을 못 잊어 얼어붙은 마음속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오실 날을 기다리는 가엾어라 카추샤/ 찬바람은 내 가슴에 흰 눈은 쌓이는데 이별의 슬픔 안고/ 카추샤는 흘러간다"는 가사는 원작의 내용을 십분 반영했다.

 한국문학사는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남선은 1914년 11월 「청춘」 제2호에 「부활」을 '갱생'이란 제목으로 집중 소개했다. 이후 「부활」은 '해당화'나 '부활한 카추샤' 같은 제목으로 꾸준히 번역, 출간됐다. 톨스토이를 존경한 이광수는 「어둠의 힘」이란 톨스토이의 소설을 직접 번역하기도 했다(일본 중역이었지만). 러시아 여성의 대명사 '카추샤'가 나오는 우리 가요는 10곡이 넘을 터인데,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의 영향력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부활」 탄생의 배경

 톨스토이 말년의 대작 「부활」은 일종의 반성문이다. 1828년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톨스토이는 어렸을 때 푸시킨의 시를 아버지 앞에서 암송해 칭찬받을 정도로 머리가 좋은 아이였다. 세 살 때 어머니가, 열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고모 밑에서 자라면서도 공부를 잘해 1844년 16세 때 카잔대학에 합격했다. 하지만 마음에 안 차 페테르부르크대학 법학사 자격 검정시험을 치러 두 과목에 합격했다. 그러다 이마저도 조금 다니다 중도에 포기하고 귀향했다. 그는 대학 시절 학업은 뒷전이고 사교계에 출입하면서 도박과 주색에 빠져 지냈다. 톨스토이는 임종 얼마 전에 자신의 전기 작가 비류코프에게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지금까지 누구한테도 안 한 얘기일세. 이 얘기를 내 전기에 넣어주게.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두 가지 큰 죄를 지었네. 결혼 전에 아크시니야 등 몇몇 소작인 여자와 관계를 가졌네. 또 하나는 숙모님 댁에서 일하던 가샤라는 하인을 건드린 죄일세. 그녀는 순결한 처녀였는데 내가 유혹했기 때문에 숙모님 댁에서 쫓겨나 신세를 영 망치고 말았네."

 그는 젊은 한때 임질에 걸려 고생했을 정도로 황폐한 삶을 살다 이러면 안 되겠다고 마음먹고 1850년 6월 11일부터 일기를 쓰면서 자신의 지난날을 반성했다. 군 입대도 스스로 정신을 차리려는 반성의 일환이었다. 포병대 사관후보생으로 입대해 복무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 러시아 문단에 서서히 두각을 나타냈다.

 장교로 제대하고 나서 더욱 열심히 소설을 쓰던 중 A.F. 코니라는 이름의 변호사 작가한테서 핀란드 어느 별장지기의 딸 로자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에게 농락당해 임신한 뒤 주인집에서 쫓겨나 매춘부로 전락했다는 실화였다. 페테르부르크 센나야 광장 근처의 매음굴에 살던 그녀는 술 취한 손님의 돈 100루블을 훔친 죄로 4개월 금고형을 받는다. 그런데 그 재판 배심원 중 로자리아에게 못된 짓을 한 남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남자는 지난날의 잘못을 반성하고 교도소로 찾아가 청혼을 했다고 한다. 당시 이 재판의 검사였던 코니를 찾아와 상의를 한 그 남자는 코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가서 구애해 여자로부터 마침내 결혼 승낙을 받아냈다. 금식기간만 끝나면 식을 올리려고 준비하고 있던 터에 신부 될 이가 발진티푸스로 죽고 만다. 남자의 그 뒤 소식은 코니도 모른다고 했다.

 톨스토이는 코니한테서 이 일로 소설을 쓰지 않겠다는 확답을 하고 1889년부터 '코니의 이야기'라는 초고를 쓰기 시작했다. 1899년 가을에 탈고했으니 꼬박 10년에 걸쳐 쓴 소설이 「부활」이다. 남자 주인공 네흘류도프는 자신의 분신이고, 여자 주인공 카추샤(소설 속 본명은 예카테리나 미하일로바 마슬로바)는 가샤와 로자리아의 복합체라고 할 수 있다.

▲ 마슬로바(카추샤)는 감옥살이를 하면서 쾌락에 빠진 지난 삶을 반성하고 이타적인 삶을 살게 된다. 사진은 1958년 독일에서 제작한 영화 '부활'.
▲ 1958년 독일 영화 '부활' 포스터.
▲ 영화 '부활' 중 한 장면.

 사실에 근거한 소설의 줄거리

 이 소설의 줄거리는 이미 말한 셈이다. 시베리아에서 온 상인 독살 사건의 피의자로 법정에 선 마슬로바는 배심원들의 오판과 판사ㆍ변호사ㆍ검사 등 모든 이가 사건을 무성의하게 다루는 바람에 징역 4년형을 선고받는다. 자신들 때문에 마슬로바가 타락의 길로 들어선 것을 안 배심원 중 한 사람인 네흘류도프는 양심의 가책으로 힘들어하다가 백방으로 마슬로바의 구명운동을 전개한다. 면회를 다니며 알게 된 다른 사건의 피해자를 위해서도 자신의 온갖 인맥을 동원해 구명운동을 펴 슈스토바 같은 불쌍한 여인이나 억울하게 투옥하던 모자를 석방시키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수많은 시도에도 마슬로바가 시베리아 유형지로 떠나게 되자 네흘류도프는 자신의 농노들에게 세금만 조금 받기로 하고 땅을 다 나눠주고 시베리아로 따라간다. 두 사람의 결혼으로 이 소설은 끝날 것 같지만 작가는 독자의 기대를 저버린다. 국사범 여죄수 마리아 파블로브나에게 감화를 받은 카추샤는 혁명가 시몬손과 맺어진다. 결혼이 무위로 돌아간 뒤 네흘류도프는 숙소로 돌아와 영국인이 기념으로 준 성경을 보며 하느님 구원을 확신하고 타인을 위해 제3의 삶을 살 결심을 한다.
 
 작품의 진정한 주제는

 부활은 예수가 죽음을 넘어섬으로써 모든 신자가 죄와 죽음과 악마를 물리칠 수 있다는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부활 하면 우리는 예수의 부활을 떠올리지만, 소설에서는 그보다도 인간의 완전한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선 네흘류도프의 변화다. 귀족 집안 출신인 데다 재산도 넉넉해 앞길이 탄탄대로인 청년이다. 공작의 딸과 결혼도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마슬로바를 보러 교도소를 왔다갔다하면서 휴머니스트로 변한다. 부조리한 사회현실에 눈뜬 네흘류도프는 재산과 모든 특권을 버리고 자기가 농락한 여성을 위해 살아갈 결심을 한다. 농노들을 만나고 다니는 과정에서 자신이 얼마나 타인의 희생 위에서 살아왔는지를 뼈저리게 깨닫는다.

 마슬로바의 변화는 더욱 놀랍다. 처음에는 동정심으로, 나중에는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네흘류도프가 원하고 있음을 알고는 술과 담배를 한순간에 끊는다. 쾌락에 물든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사회의식으로 무장하면서 그녀 역시 이타적인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다.

 따라서 소설 「부활」은 흔한 연애소설이 아니다. 감옥의 실상과 귀족층의 허위의식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며, 당대 사회의 모순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입각해서 쓴 현실참여 소설이다. 또한 젊은 날의 타락을 장장 10년에 걸쳐 반성하며 쓴 톨스토이의 참회록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기본 정신은 사실 '사랑'이다. 사랑이 사람의 마음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타락의 길을 걷고 있는 마슬로바에 대한 네흘류도프의 연민의 정,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된 마슬로바의 변화도 사랑에 근거한 것이다. 창녀로 살아온 마슬로바의 과거를 묻지 않고 현재와 미래만을 보는 시몬손의 마음도 사랑에 근거한 것이고, 네흘류도프를 세상으로 떠나보내는 마슬로바의 결심도 사랑에 근거한 것이다. 마음의 부활은 우리를 악이나 죄의 세계에서 끌어올려 주는 두레박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부활 같은 사랑이라고 톨스토이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승하 교수(프란치스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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