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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문화산책]<49> 건축(10) 제의실, 침묵으로 시작해 침묵으로 마치는 방

[가톨릭 문화산책]<49> 건축(10) 제의실, 침묵으로 시작해 침묵으로 마치는 방

사제들이 천상을 향해 나아가는 전례의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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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6 발행 [1250호]
사제들이 천상을 향해 나아가는 전례의 출발점

▲ 브라질 바히아에 있는 살바도르 대성당 제의실.
▲ 콜롬비아 메데인에 있는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대성당 제의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 제의실 소제대 위에는 '실렌티움(SILENTIVM)'이라고 크게 쓰여 있다. 침묵. 제의실에서는 침묵하라는 뜻이다. 참회의 반성 때, 본기도와 영성체 후 기도 전의 '기도합시다' 다음, 독서나 복음 또는 강론 다음, 영성체를 한 다음 등 미사 중에도 침묵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사제는 미사가 시작하기 전 제의실에서 침묵하며 제의를 입는다. '로마 미사 전례서 총지침'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거행에 앞서 이미 성당, 제의실 그리고 주위에서 침묵을 지키는 것이 권장된다. 이렇게 모두 곧 시작될 거룩한 예식을 경건하고 합당하게 거행하도록 마음을 준비한다"(총지침 45항). 모든 사람은 제의실 안에서 하느님 집의 거룩함과 영신적 일치의 자세로 경의를 표하며 침묵을 유지한다(170항).  

 미사가 끝나고 퇴장해 제의실로 돌아온 후에도 사제는 십자가에 절을 하고 전례복을 벗는다. 미사를 마친 후에도 제의실에서는 침묵 안에서 제의가 치워진다. 이는 제의실이 주님께서 계시는 감실과도 가깝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성전에 계시다. 온 세상은 그분 앞에서 조용히 하여라"(하바 2,20). 이렇듯 제의실은 침묵 속에서 미사를 준비하고 마치는 방이다.

 제의실은 성당에서 사제의 제의를 보관하고 미사를 위해 제의를 입는 곳이며, 옷을 갈아입는 탁자와 전례 의식에 사용되는 모든 물품들을 보관하는 장소다. 그러나 전례 봉사자가 아닌 이상 신자가 제의실에 들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 더구나 제의실이라는 용어만 보고 단순히 제의를 입는 곳이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제의실은 전례를 위해 사제의 행렬이 시작하는 곳이며, 회중석 한가운데를 지나 천상을 향하는 길을 지나게 되는 출발점이다.

 사제는 개두포를 착용하기 시작해 장백의를 입고, 끈을 매고, 영대를 착용하고, 마지막으로 제의를 입을 때마다 각각 그것에 합당한 기도를 바친다. 그만큼 전례복을 입는 그 순서 안에서 이미 거룩한 미사는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사제는 제의실에서 개두포를 착용하면서 '미사 전에 전례복을 입을 때 드리는 기도'에 따라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 내 머리에 투구를 씌우시어 마귀의 공격을 막게 하소서." 그리고 제의를 입으며 이렇게 기도를 바친다. "주님, 주님께서는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고 하셨으니 제가 주님의 은총을 입어 이 짐을 잘 지고 가게 하소서. 아멘."

 제의 의미와 역할

 제의란 사제가 미사, 성사 집행, 행렬, 축복 등 모든 의식 때 교회 규정에 따라 입는 미사 전례의 중심 복장을 모두 일컫는 말이다. 제의는 그리스도의 사제직, 성덕,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희생, 하느님과 인류에 대한 그분의 사랑 등을 상징한다. 사제가 제의를 입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고 제사의 위대함과 하느님께 대한 존경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제의는 크게 안에 입는 아마포로 된 제의와 밖에 입는 비단으로 된 제의 등 두 가지로 나뉜다.

 제의는 고대 로마 귀족들의 외투인 페눌라(penula)에서 발달한 것으로, 라틴어로 '카술라'(casula)라고 하는데 '작은 집'이라는 뜻이다. 13세기 기욤 뒤랑 주교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제의실은 거룩한 용기를 보관하는 장소이며 사제가 제의를 입는 곳이다. 제의실은 그리스도께서 인성의 옷을 입으신 복되신 마리아의 자궁이다. 제의를 입은 사제는 앞으로 나아가 사람들 앞에 나타난다. 그리스도께서 동정녀의 자궁에서 나오시어 세상 속으로 나아가셨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제에게 제의는 '작은 집', 곧 성모님의 자궁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러한 생각은 사라져 버렸고, 크기도 아주 작아져서 제의실이 얼마나 중요한 방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브라질의 바히아에 있는 살바도르 대성당의 제의실을 보라. 제의실 하나가 웬만한 작은 성당으로 보일 정도로 크고, 바닥과 천장과 가구는 17세기 포르투갈 바로크 양식으로 정교하게 치장돼 있어서 참으로 화려하다. 이 건축공간은 거룩한 미사에 앞서 사제가 제의를 입는 것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콜롬비아의 메데인에 있는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제의실은 앞의 성당과 비교하면 소박한 편이지만, 그래도 널찍하고 단단하며 기품이 높은 제의실이다.

 제의실은 크게 두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 본래 라틴어로 제의실이라는 말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제의를 입고 전례를 위해 대기하고 준비하는 제의실(세크레타리움, secretarium)과 성구를 보관하는 제의실(사크리스티아, sacristia)이다. 곧 제의실은 '준비실'과 '보관실'이라는 두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말로는 이 두 말을 모두 '제의실'이라고 번역하지만, 이는 사제들이 경신례를 거행하기 위해 행렬을 준비하고, 제의와 성구를 보관하며 제의를 입고 벗는 등 여러 기능을 가진 성당의 특정한 장소를 말한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는 제의실의 두 가지 기능이 제대에 가까운 두 개의 방에서 이뤄졌다. 동방교회에서도 제의와 성경을 보관하는 '디아코니콘'(diaconicon)과 성체성사를 위해 빵과 포도주를 준비하는 '프로테시스'(prothesis)라는 두 개의 방으로 나눠 제의실 기능을 구별했으며, 이를 성당 입구 중앙 통로 옆에 두었다. 그런데 16세기가 돼서는 이 두 가지 기능이 하나가 돼 오늘에 이르렀다.

 제의실로 가려면

 제의실로 가려면 성당 안을 통과하지 않고 밖에서도 들어갈 수 있게 해야 했다. 제의실은 성당 안에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수도원에서처럼 별동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오랜 성당에서는 주제대 뒤에 많이 두며 측제대 가까운 곳에도 두었다. 어떤 성당에서는 제의실이 여러 개인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성당 입구 가까운 곳에 많이 둔다. 준비실 역할을 하는 제의실은 행렬이나 제의를 입고 편하기 지나가도록 넓어야 하고 주교가 머리에 쓰는 주교관이나 행렬 십자가가 지나가기 쉽게 높아야 한다. 과거에는 제의, 장백의, 중백의, 개두포 등 전례복을 깊은 서랍에 보관했고 그 위는 제의 등을 입는 테이블로 사용했다. 오늘날에는 장에 걸어두기도 하지만 더 귀한 제의일 때는 서랍에 보관한다.

 제의실에는 사제가 제의를 입기 전 손을 씻을 수 있는 세정대와 수건, 수건걸이가 있어야 한다. 제의실에는 '피시나'(piscina)라고 부르는 손 씻는 수반을 두는데, 배수는 세례수처럼 '사크라리움'(sacrarium)이라 부르는 것에서 직접 땅에 흐르게 한다. 이 세정대가 싱크 옆에 있으면 보통 손을 씻을 때 무심코 사용하지 못하게 뚜껑을 덮어둔다. 제의를 세탁한 물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반드시 화단 등에 버리는 것과 같은 의미다. 제의실에 대해서는 전례적인 규정이 없이 매우 기능적일 것이 요구되지만, 이 방은 전례를 준비하는 곳이므로 존경과 침묵이 지켜질 수 있도록 잘 정돈돼 있어야 한다.

 주교좌성당이나 바실리카 성당처럼 큰 성당에는 제의실을 담당하는 봉사자를 임명했는데, 이들을 제의실지기 또는 성물지기(sacrist)라고 부른다. 제의실의 두 가지 기능, 곧 준비실과 보관실에 따른 이름이었다. 13세기 제의실지기는 초와 제의, 성구를 관리했는데, 이는 제의실이 성물과 성체를 보관하고 전례를 준비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복음서를 준비하고 주례자의 기도문이 적혀 있는 기도서를 배열했으며, 제의를 펴서 준비하는 일을 맡았다. 한편 보관실(sacristia)의 기능, 곧 교회 가구, 성당 제구 장식 등을 유지 관리했다. 그러나 16세기 트리엔트공의회 이후에는 사제가 이 직무를 맡게 됐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제의실을 수녀가 담당하거나 평신도에게 맡기고 있다.



광현( 안드레아, 건축가,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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