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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구·조명혜 부부의 펜화성지순례] 35. 성 베네딕도회 덕원수도원과 성당

[이승구·조명혜 부부의 펜화성지순례] 35. 성 베네딕도회 덕원수도원과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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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2 발행 [1245호]

   잊힌 성지를 펜화로 다시 보는 '이승구ㆍ조명혜 부부의 펜화성지순례'는 이제 평양교구에서 또 다른 북녘 교회로 이어진다. 35회부터는 덕원자치수도원구와 함흥교구, 연길교구 등 선교지와 성 베네딕도회 서울 백동수도원도 함께 소개한다.

 
 '눈먼 이들에게 빛을(Lumen Caecis)'이라는 모토를 내건 성 베네딕도회가 한국에 진출한 지 22주년이 되던 해, 1931년에 덕원수도원과 성당<그림>이 완공됐다. 1927년 11월 서울에서 덕원으로 수도원을 옮긴 지 4년 만이었다.

 카예타노 피어하우스 신부와 레오폴도 다베르나스 신부가 설계한 덕원수도원과 성당은 평면 ㅁ자 형태 지상 3층 규모에 지붕면이 양쪽 방향으로 경사진 박공지붕으로 된 박공(gable)집으로 지어졌으며, 특히 덕원수도원 성당<그림 오른쪽>은 길이 57m에 너비 19m, 종탑 높이는 34m나 됐다. 그해 11월 5일에는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에서 기증한 세 개의 종이 걸렸고, 12월 24일엔 처음으로 시간전례(성무일도), 곧 주님 성탄 대축일 제1저녁기도가 바쳐졌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립한 덕원수도원과 성당은 중세 독일의 히르사우(Hirsau)수도원을 모델로 지어져 당시 오틸리엔 연합회 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수도원이자 성당으로 꼽혔다. 모원인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은 건물 몇 채가 모여 있는 정도였고, 뮌스터슈바르작수도원은 직각으로 연결된 소박한 건물 두 채가 전부였다. 슈바이클베르크수도원의 경우는 건축 공사가 막 시작된 단계였을 뿐이었다. 이처럼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했던 덕원수도원은 당시 동아시아의 서양식 근대건축에서 예술적으로나 건축사상사적으로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뿐 아니라 덕원수도원과 성당 부지 위치 또한 이상적이었다. 함경북도 덕원군 부내면 어운리(현 북강원도 원산시 송천동 원산농업대학)에 위치해 있던 덕원수도원과 성당은 당시 덕원읍에서 1.5㎞, 원산부에서 4㎞ 가량 떨어져 있었으며, 수도원 앞에는 원산과 함흥을 잇는 간선도로와 철도가 연결돼 있었다. 덕원역은 수도원에서 걸어서 20분, 원산부는 걸어도 2시간이면 충분했다고 한다.

   수도원 앞에는 또 비옥한 벌판에 논밭이 펼쳐져 있고 그 사이를 강이 돌아 흘렀으며, 수도원 뒷산을 넘으면 동해가 나타났다. 동해는 수도원에서 걸어서 불과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아름다운 부지에 세워진 수도원과 성당, 신학교을 유지하는 데는 100ha(30만 2500평)에 이르는 수도원 소유 임야가 재정적 뒷받침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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