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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문화산책]<44> 건축(9)-독서대와 강론대, 하느님 말씀이 선포되는 곳

[가톨릭 문화산책]<44> 건축(9)-독서대와 강론대, 하느님 말씀이 선포되는 곳

하느님 말씀의 식탁, 제대 가까이에 작더라도 위엄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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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5 발행 [1244호]
하느님 말씀의 식탁, 제대 가까이에 작더라도 위엄있게

▲ 이탈리아 로마의 산클레멘테 대성당의 복음 독서대(왼쪽)와 서간 독서대(오른쪽).
▲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대성당 독서대.
 예수님께서는 회당에 가시어 성경을 펴시고 이사야서를 봉독하셨으며, 이어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신 다음, 회당에 모인 이들에게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16-21)고 말씀하셨다. 루카복음은 예수님께서 성경을 몸소 읽으시고 성경의 말씀이 그 자리에서 이뤄졌음을 선포하셨다고 알려준다.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펴시고 읽으신 자리가 독서대이며, 성경 말씀이 그 자리에서 이뤄졌음을 선포하신 자리가 강론대다. 그러므로 독서대와 강론대에서 말씀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이 두 자리는 하나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와 회당 전례가 시작됐을 때도 높은 곳에서 말씀을 읽었다. "율법 학자 에즈라는 이 일에 쓰려고 만든 나무 단 위에 섰다.… 에즈라는 온 백성보다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았으므로, 그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책을 폈다. 그가 책을 펴자 온 백성이 일어섰다"(느헤 8,4-5). 또한 이사야서에서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라. 유다의 성읍들에게 '너희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시다' 하고 말하여라"(이사 40, 9)라고 말한다. 이것이 독서대의 의미다. 그래서 독서대는 화려하거나 존엄하게 장식되며 요한복음을 상징하는 독수리가 날개를 펴고 독서대를 받치고 있다. 그뿐인가.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향해 높은 곳에 오르신다. "예수님께서는 그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마태 5,1-2).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친 자리가 강론대다.

 독서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를 먹이는 주님의 두 식탁을 말한 바 있다. 주님께서 희생하시는 빵의 식탁인 제대와, 하느님 말씀의 식탁인 독서대가 그것이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4)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다. 때문에 새 성당을 봉헌할 때 주교는 부제에게서 복음서를 건네받고 "하느님의 말씀이 이 집을 채우소서"라고 외친다. 성당 안에서 가장 고유한 시설은 제대, 독서대, 세례대 이 세 가지인데, 그중 하나가 독서대다.

 제대는 그리스도께서 빵의 형상으로 현존하시는 성찬 전례의 중심이고, 독서대는 그리스도 자신이 그의 말씀 안에 계시는 복음을 선포하는 말씀 전례의 중심이다. 사제가 복음을 읽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사의 주요한 두 부분인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가 이뤄지는 주님의 두 식탁에는 각각 고유한 자리가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말씀 전례에 신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됐고, 독서자, 시편 독창자, 성가대에 의해 하느님 말씀이 새로운 생명을 입게 됐다.

 오늘날 독서대의 자리가 특별히 정해진 바는 없다. 그러나 독서대는 제대 가까이에 놓이되, 제대보다 작더라도 위엄 있게 마련돼야 한다. 또 높은 곳에 두어 모든 신자가 쉽게 볼 수 있게 하고, 그곳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잘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초기 교회에서 복음은 사제가 읽었으며 주교는 그의 주교좌나 제단에 놓인 의자에서 강론했다. 교회가 커지자, 특히 밀라노 칙령 이후에는 존귀한 하느님의 말씀을 회중에게 말하기 위해 들어 올린 단을 사용하고 흔히 계단으로 올라가게 만들었다. 이를 '암보'(ambo, 독서대)라 불렀다. 'ambo'라는 말은 그리스어 '아나바이네인'(anabainein)에서 나온 것인데, 이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다'라는 뜻이다. 5~6세기부터 대부분 회중석의 중앙 통로 윗부분에 독서대가 있었고 이곳을 계단으로 올라갔다.

 이것은 구약에 있는 한 형태를 참조했거나 같은 시대의 유다 회당에서 따온 것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크고 돋보이며 화려해졌다. 한 시리아 교회에는 부제들이 앉는 벤치와 주교 의자가 있을 정도로 큰 말굽 모양의 독서대가 있었다. 예전에는 신자들이 말씀을 잘 들을 수 있게 독서대를 회중석에 두는데, 이에는 계단이 두 개 붙었다. 하나는 동쪽의 제대 옆에서 올라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쪽에서 올라가는 계단이었다. 동쪽 계단에서는 차부제가 제대를 향해 서간을 읽고, 서쪽 계단에서는 부제가 회중을 향해 복음서를 읽었다.

 '미사 전례서 총지침' 272항을 따르면, 독서대에서는 독서 봉독, 화답송, 복음으로 말씀이 선포된다. "백성과 함께 드리는 미사에서 성경 봉독은 언제나 독서대에서 한다." 부활성야에는 부활찬송을 독서대에서 부르고 제3독서를 독서한 이가 독서대에 서서 화답송 선창을 부른다. 화답송과 보편지향기도도 독서대에서 행하기를 적극 권고하고 있다. 따라서 독서대는 말씀이 선포되는 자리이지, 독서대라는 설비가 놓인 곳이 아니다. 또 독서대에서는 강론을 하기도 한다. 독서대와 강론대를 함께 '복음 선포대'라고도 하지만, '독서대'라는 말이 더 일반적이다. 제대나 해설대에서는 성경을 봉독하지 않는다. 따라서 해설자, 성가대원, 성가대 지휘자 등의 봉사자가 독서대에 올라가는 것은 적합치 않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대성당은 975년 지진으로 피해를 입었는데도 2층짜리 장대한 독서대의 흔적이 아직 제단 가까이 남아 있다. 아래에서는 서간을 읽고 위에서는 복음을 읽는다. 성당에는 독서대를 하나만 둔다. 그러나 독서대를 두 개 둔 로마의 산클레멘테 대성당에서는 제대를 향해 왼쪽인 성가대의 북쪽 변에는 더 크고 장식이 많은 복음 독서대를 두었고, 오른쪽의 남쪽 변에는 더 작고 단순한 서간 독서대를 두었다. 복음 독서대가 이렇게 큰 것은 독서자만이 아니라 좌우에서 초를 들고 있는 두 사람이 함께 서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가끔 서간 독서대가 위아래로 나뉘는데, 윗단은 서간을 노래로 할 때 쓰이고 아랫단은 구약성경을 읽을 때 쓰였다. 8세기에서 10세기까지 성경을 노래로 읽을 때는 독서대가 널리 사용됐으나, 13세기부터는 사용하지 않게 됐다.

 강론대

 비잔틴이나 중세에서 말씀을 노래로 하던 것에서 말씀을 강론하는 것으로 변화하게 되자, 점차 강론대(pulpit)가 독서대를 대신하게 됐다. 현재 남아 있는 강론대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2세기의 것이다. 이것에는 간단한 단이 기둥에서 내쌓기를 하여 만들어졌고 이에는 난간이 붙어 있었다. 1000년 전에는 강론대가 독서대와 마찬가지로 다른 요소보다 더 크고 높고 뚜렷하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15세기나 16세기, 특히 개혁교회에서는 말씀이 크게 강조되어 강론대 위에 닷집을 두는 등 화려하게 만들었으며, 후에 생긴 강론대는 회중석에 가깝게 놓였다. 그러나 강론대는 오직 강론을 위해서만 사용됐다. 강론대에는 씨 뿌리러 나가는 사람을 새긴 것이 많다.

 오늘날에는 음향설비가 발달해 가장 큰 성당을 제외하고는 강론대가 사용되지 않게 됐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에는 독서대를 더욱 많이 사용하기 시작했다(독서대인 'ambo'를 강론대로도 번역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독서대는 말씀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심을 표상하기 때문이다. 제대와 독서대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대해 당신을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내시지만 그러나 하나이심을 표현한다. 그렇다고 해서 제대와 독서대가 다툰다는 뜻은 아니다. 제대는 성체성사의 중심으로서 중심성이나 탁월성을 요구하며, 독서대는 제대와 적극적인 관계를 갖되 제대에 종속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만큼 독서대와 제대는 건축적으로도 강력한 공간적 관계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오늘날에는 독서대가 해설대와 짝을 이뤄 설계되는 예를 많이 본다. 독서대는 제대와 같이 존엄한 장소이므로 기품이 있게 만들어야 하며, 해설대와는 분명히 구별돼야 한다.

 독서대와 강론대와는 구별되는 'lectern'이라는 용어가 하나 더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해설자, 성가대 지휘자 등이 사용하는 흔히 나무로 만들어진 가구를 말하며, 전례와 무관한 소식이나 내용을 설명할 때 쓰인다.



광현(안드레아, 건축가,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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