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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정신철 보좌주교 임명 이모저모

겸손되이 순명하고 기도로 나아가는 새 목자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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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9 발행 [1067호]
겸손되이 순명하고 기도로 나아가는 새 목자 탄생


▲ 정신철(왼쪽) 주교가 4월 29일 교구 총대리 이준희 신부에게서 꽃다발을 받으며 활짝 웃고 있다.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


축하 꽃다발과 박수 세례

 4월 29일 인천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된 정신철 주교는 따뜻한 사제, 다정다감한 사제로 정평이 났듯, 공식 발표시각인 이날 오후 7시 성소국 사무실에서 열린 축하식에서 특유의 백만 불(?)짜리 미소를 지으며 축하객들을 맞이했다.
 
 정 주교는 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및 여성연합회, 사제와 수도자, 성소국 직원들의 잇따른 꽃다발 세례와 박수에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그러면서도 "과분한 직책을 맡아 어깨가 무겁지만 늘 겸손하고 기도하며 노력하는 주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교구 총대리 이준희 신부는 "성소국장인 정 신부님이 주교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이제 능력 있는 주교님께 총대리직을 물려주게 돼 홀가분하면서도 한편으로 큰 부담을 드리는 것 같아 죄송하다"고 말했다.
 
 정 주교가 초등학교 3ㆍ4학년 시절 복사를 할 때 보좌신부였던 이찬우(주안3동본당 주임) 신부는 아껴뒀던 몽블랑 만년필을 선물한 뒤 "주교님은 어린 시절 자신이 교황이 되면 나를 주교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며 "이제 주교가 됐으니 교황이 될 가능성은 한 단계 높아졌지만, 나는 주교가 되기엔 이미 늙어버렸다"고 말해 축하식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어머니 박순정(도나타, 75, 서울 개봉동본당)씨는 "너무 기뻐 임명 당일에는 온종일 기도하다 눈물을 흘리고, 다시 기도하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며 "아들 신부님이 주교님이 된 것을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이자 기쁨으로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인천교구는 초대 교구장 나길모 주교에 이어 2002년 최기산 주교가 교구장으로 착좌할 당시 본당 85개, 사제 195명, 신자 37만2000여 명으로 복음화율 10.09%였으나 2009년 말 현재 신자 43만7621명으로 복음화율 10.15%까지 올라섰다.
 
 본당은 2002년에 비해 28개 늘어난 113개이며, 사제는 75%나 증가한 260명으로, 지속적 인구 증가와 이에 따른 사제 증가로 수년 전부터 보좌주교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보좌주교 탄생으로 교구 성장에 새 동력을 얻었다는 게 사목자들의 한결같은 평이다.



▨정신철 주교 인터뷰

 "예수님이 평범한 일상에서 제자들을 부르셨듯, 평범한 일상에서 저를 주교로 부르셨습니다. 나이가 어려 부족한 점이 많지만 최기산 주교님 사목방침이 잘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4월 29일 주교에 임명된 정신철 주교는 "평소와 다름 없이 사무실에 출근해 일하다 하느님 부르심을 받게 됐다"면서 "기도와 말씀 안에서 노력하는 주교가 되겠다"고 밝혔다.
 
 정 주교는 인천교구는 청소년ㆍ문화사목ㆍ복지 및 선교에 사목 역점을 두고 있다면서 "교구장 사목활동의 협력자로서 교구를 함께 이끌어 나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 주교는 1993~1994년, 2002~2003년 각각 삼정동본당과 역곡2동본당 보좌신부 시절, 강론 중 3분을 할애해 아이들이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직접 발표하게 했다. 정 주교는 "어린이들 속에서 함께 웃으며 하느님을 찬양하던 보좌신부 시절이 가장 그립다"고 말했다.
 
 정 주교는 "사제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본당 주임을 맡아보지 못했다"며 "성소국장 소임을 마치면 본당 주임신부로서 소박하게 살고 싶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정 주교는 현대인 신앙생활에 대해 "가시적 성과를 우선시하는 데다 공동체 의식을 잃어버린 채 갈등 속에 살아가는 모습이 간혹 눈에 띈다"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신앙을 요즘의 신앙언어로 풀이해 쉽게 하느님 말씀을 이해하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정 주교는 "교구장 최기산 주교님이 임명 소식을 듣고 곧바로 달려오셔서 손을 잡아주시더니 큰 웃음을 보이시기만 했다"며 "주교님 웃음의 의미를 잘 헤아려 주교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지지 않도록 해드리겠다"고 다짐했다.

이힘 기자

▲ 꽃목걸이를 건 정신철 주교가 1993년 1월 인천 답동주교좌성당에서 거행된 사제서품식에서 서품식 후 신자들에게 인사하며 제대를 내려오고 있다.

▨정신철 주교의 삶
 
 성소국장으로서 교구 미래가 달린 성소자 계발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던 정신철 주교는 1964년 10월 인천시 송림동에서 출생, 1993년 사제품을 받았다.
 
 삼정동본당 보좌를 거쳐 2002년 파리 가톨릭대학에서 실천신학인 교리교육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교회 첫 번째 교리교육학 박사로 기록돼 있다. 2002년 역곡2동본당 보좌를 거친 뒤 2003년부터 현재까지 인천가톨릭대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 위원으로서 주교회의가 발간하는 「청년교리서」 1~4권 저술에 참여하기도 했다.
 
 정 주교는 어린 시절 별명이 '범생이'였을 정도로 착실하면서도 바르게 살았다. 신앙심이 투철한 부모 밑에서 자란 정 주교는 초등학생 시절 복사를 서며 본당 신부들과 가깝게 지내는 동안 사제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특히 부친 정종심(바오로, 78, 서울 개봉동본당)씨는 정 주교가 '대수도원장'이란 별명을 붙였을 정도로 기도생활을 충실히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주교는 신앙이 독실한 부모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매일 형(정대철 베드로, 48, 가톨릭대 의대 소아과 교수)과 함께 '가족기도'를 바친 뒤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지금도 기도가 삶의 일부이자 생활인 것도 부모가 몸소 보여준 철저한 신앙생활 덕분이다.
 
 어머니 박순정(도나타)씨 역시 끊임없는 기도와 편지로 사제의 길을 걷는 아들을 격려해왔다. 1994년 정 주교가 파리 가톨릭대학으로 유학을 떠났을 때부터 쓰기 시작한 편지는 두꺼운 원고지철 14권 분량이나 된다. 이 가운데 일부를 엮어 「아들아 성인 사제 되어다오」라는 책을 출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 주교의 은사신부인 이찬우 신부는 "복사 시절부터 신부나 신학생들과 잘 어울리며 사제의 꿈을 키우더니 이제는 주교가 되셨다"며 "정 주교님은 사제와 신학생, 예비신학생들이 형처럼 잘 따르는 사제였다"고 말했다. 이어 "정 주교님은 언제나 적극적이고 긍정적이기에 교구 사제들과 호흡을 잘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주교와 1년 여간 함께 근무한 성소국 전릿다(마리리타, 노틀담수녀회) 수녀는 "매번 맛있는 꽈배기를 몇 상자 사들고 들어와 교구청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영명축일 때마다 늘 기도와 함께 선물을 챙겨주는 다정다감한 사제"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 인천 박문초등학교 졸업식 때 답동주교좌성당을 배경으로 찍은 기념사진. 당시 박문초등학교에는 성당 옆 현 교구청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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