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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명단에 포함된 가톨릭인사 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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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1 발행 [969호]
-노기남(바오로, 1902~1984) 대주교
 한국인 최초 주교. 1939년 일제 강압으로 결성된 '국민 정신 총동맹 경성교구 연맹'부이사로 선출. 1942년 신사참배 문제로 일본 동경 주재 교황 사절 마렐라 대주교와 동경 대교구장 도이 대주교와 대책 협의. 일제에 의해 감금된 35명의 프랑스 및 아일랜드 성직자 보호에 전력해 1959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최고 문화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수여.

-오기선(요셉, 1907~1990) 신부
 1932년 사제서품. 라리보 주교 비서로서 교구장을 일본인으로 교체하고자 하는 일제 계획을 막으려 1941년 도일, 교황사절 마렐라 대주교를 설득해 서울교구장에 한국인 임명을 가능케 함.

-김명제(베드로, 1873~1960) 신부
 1908년 사제서품. 1928년 황해도 감목대리구 감목대리로 임명. 경애보통학교, 명성학교 개설 등 교육에 힘씀. 1941년 일본 경찰에 의해 사리원 경찰서 유치장에 구금, 보름간 심문과 고문을 당한 후 석방.

-김윤근(요셉,1878~1943) 신부
 1909년 사제서품. 1910년 평북 용천 비현 본당 초대 주임으로 임명돼 성당 건립을 계획하고 이기당에게 대지와 가옥 매입을 부탁했으나 이기당이 '105인 사건'에 연루돼 뜻을 이루지 못함. 이후 평안도, 황해도 강원도 등지에서 사목.

-신인식(바오로, 1894~1968) 신부
 1920년 사제서품. 「가톨릭 청년」 「경향잡지」 편집 참여, 황해도 신천 주임을 거쳐 1937년부터 해방 이전까지 동성상업학교 교사로 활동. 해방 후 어수선한 사회 속에서 전례를 통해 신자들의 신앙심 고취에 노력.

-장면(요한, 1899~1966)
 미국 유학 후 1927년 귀국, 평양교구에서 메리놀회 선교사를 도와 교회일 돌봄. 1931년부터 1947년까지 동성학교 교사 및 교장으로 활동. 광복 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결정적 역할. 초대 주미대사, 제2공화국 국무총리 역임.

-남상철(프란치스코, 1891~1978)
 성 남종삼 요한의 손자. 일본 와세다대학 졸업 후 감곡 매괴보통학교 교사로 재직. 1921년부터 감곡면장 겸 도의회 의원으로 20여 년간 재직. 해방 후 영친왕 환국 추진위원회 회장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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