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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전동성당<상>

순교 1번지에 우뚝 선 신앙의 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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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2 발행 [729호]
순교 1번지에 우뚝 선 신앙의 요람


▲ 1. 1908년에 착공, 1931년에 완공된 전주 전동성당 전경. 로마네스크 양식과 비잔틴 양식이 혼합돼 국내 교회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손꼽히고 있다.2. 화려한 곡선미로 공연장으로 사랑받고 있는 전동성당 내부 모습.  
  건축은 '인간을 담을 그릇을 빚는 작업'에 흔히 비유되고 있다. 아름다운 건축물들은 그 생김새가 서로 달라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인간과 자연 그리고 건물 공간이 서로 거슬리지 않고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회 건축물 중에서 이런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이 바로 전주교구 전동성당(주임 김준호 신부)이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동 1가에 있는 전동성당은 도심 한가운데 있으면서 녹음이 우거진 정원으로 시민들에게 쉼터를 제공해 주고 있다. 사적 제288호로 지정돼 있는 전동성당은 또 로마네스크와 비잔틴 양식이 혼합된 건물로 한국의 교회 건축물 중 곡선미가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며 화려한 건물로 손꼽히고 있다.

  또 주위에 경기전(조선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셔 놓은 곳, 사적 제339호)과 풍남문을 끼고 있어 한국의 전통 건축 양식과 외래 건축 양식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전동성당은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영화인들과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에게 촬영지로 사랑받고 있으며, 음악 공연장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지난 5월에는 강재규 감독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촬영장으로 사용됐고, 많은 관객의 눈물을 자아냈던 영화 '약속'의 마지막 장면 중 주인공 박신양과 전도연이 둘만의 결혼식을 올리던 곳도 바로 전동성당이었다.
 
  전동성당은 한국교회 최초의 순교자들인 윤지충(바오로,1759~1791)·권상연(야고보, 1751~1791)이 순교한 자리에 세워졌다. 이들은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유교식 조상 제사를 폐지하고 신주를 불태워 참수형을 받았다. 이런 이유로 전동성당에 들어서면 오른편 정원에 '한국 천주교 순교 1번지'라고 새겨진 선돌이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동성당 터는 또한 '호남의 사도'로 불린 유항검(아우구스티노, 1754~1801)과 김유산(토마스, 1761~1801)이 순교한 곳이자 유항검의 동생 유관검과 이우집, 윤지충의 아우 윤지헌이 성직자 영입을 위해 북경 주교에게 서양의 큰 배를 조선에 몰고와 달라고 요청한 '대박청래'사건을 일으킨 죄로 처형된 곳이기도 하다.
 
  전동본당 초대 주임인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보두네 신부는 20세기 초 전동성당을 지을 때에 일제 통감부가 전주에 신작로를 닦으며 풍남문 성벽을 헐자 이 성벽 돌과 흙을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풍남문 성벽 돌을 가져다 성당 주춧돌로 사용했다. 유항검을 비롯한 전동성당 터에서 치명한 순교자들의 목을 효수했던 성벽의 돌을 성당 주춧돌로 사용함으로써 이곳이 순교지일 뿐 아니라 '신앙의 요람'임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전동성당은 서울 명동대성당 내부 공사를 마무리했던 프와넬 신부의 설계로 1908년에 착공됐다. 초대 주임 보두네 신부는 17년 동안 매입한 5000평의 대지에 교우들이 낸 성당 신축기금과 자신이 절약해 모은 돈, 그리고 안원오(프란치스코) 회장과 김찬일(아우구스티노) 회장이 기부한 돈을 모두 합쳐 5만원이라는 거액으로 공사를 시작했다.
 
  중국인 벽돌공 100여명이 동원돼 전주성을 헐은 흙을 사용해 벽돌을 직접 굽고, 석재는 전북 익산의 황등산에서 캔 화강석을 말 네필이 끄는 마차로 운반해 왔고, 목재는 오늘의 치명자산을 매입해 벌목하여 사용했다.
 
  공사 기간 동안 전주 시내에 사는 신자들은 물론 진안, 장수, 장성 등지에 사는 교우들이 밥을 지어먹을 솥과 양식을 짊어지고 와 손마디와 손바닥에 굳은 살이 박히고 어깨에 혹이 생기도록 자원 부역을 했다. 신자들의 희생적 노력 끝에 공사를 시작한 지 만 7년 만인 1914년에 전동성당 외형공사를 모두 마쳤다.
 
  초대 주임 보두네 신부는 성당 완공을 못보고 1915년 5월 이질에 걸려 57세로 선종했다. 그래서 성당 내부 공사는 제2대 본당 주임인 라크루 신부에게 맡겨졌다. 라크루 신부는 193평에 달하는 성당 내부공사를 1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묵묵히 진행하여 마침내 1931년 6월18일 대구교구장 드망즈 주교 주례로 성전봉헌식을 거행했다. 이처럼 전동성당은 착공에서 성전봉헌까지 23년이라는 대역사 끝에 완성된 성당이다.
 
  전동성당은 정면 중앙 종탑부와 양쪽 계단에 비잔틴 풍의 뽀족 돔을 올린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이다. 특히 12개의 창이 있는 종탑부와 8각형 창을 낸 좌우 계단의 돔은 전동성당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대표적 상징물로 꼽히고 있다. 또 페인트 칠을 하지 않은 성당 내외벽은 적색과 회색의 벽돌색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색채의 조화가 인상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그리고 내부 공간도 서울 명동대성당과 똑같이 공중 회랑과 많은 창으로 만들어 육중한 벽체에 비해 자연 채광으로 상대적으로 내부 공간이 밝도록 꾸며놓았다.
 
  교회 건축물 전문가인 김정신 교수(단국대 건축공학과)는 "전동성당은 전체적으로 종탑부 돔이나 석조 기둥 등 비잔틴 요소를 혼합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으로 외관의 세부 기법, 따뜻한 느낌을 주는 내부 공간 등 여타 유명 선당을 능가하는 건물"이라고 평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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