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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68호 2022년 06월 26일 연중 제13주일, 교황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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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김대건·최양업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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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입국마저 실패하며 실의에 빠진 채 육로로 눈길 돌려
[신 김대건·최양업 전] (53)백령도 입국 시도
‘조선전도’ 없이 백령도로 항해 조선인 두 번째 사제 최양업 신부는 1849년 4월 15일 상해에서 강남대목구장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마레스카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은 후 그해 5월 메스트르 신부와 함께 조선 입국을 위해 백령도로 떠났다. 두 사제가 백령도로 향한 이유는 페레올 주교의 지시에 의해서다. 페레올 주교는 김대건 신부의 마지막...
마침내 최 토마스 사제품 받아, 조선 교회 두 번째 사제 탄생
[신 김대건·최양업 전] (52)사제 수품
조선 입국 실패, 자책하는 최양업귀국에 실패하고 영국 함선을 타고 상해로 되돌아온 최양업 부제는 무너져 내렸다. 혼자서라도 남아 자신을 데리러 올 신자 배에만 올라타면 조국의 내륙으로 들어가 선교사들과 그리운 가족, 신자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손에 잡힐듯한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기 때문이다. 메스트르 신부는 요동이나 홍콩으로 다...
조선 땅을 눈 앞에 두고 발길 돌려야 했기에 눈물을 삼키다
[신 김대건·최양업 전] (51)신치도에서
영국 군함에 구조를 요청글로와르호 함장 라 피에르 대령은 함대의 고군산도 좌초 사실을 알리고 영국이나 미국 함선에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8월 25일 준사관 2명을 오늘날 구명정에 해당하는 종선(從船)에 태워 상해로 급파했다. 좌초한 뒤 군사 560명이 신치도에서 숙영한 지 13일 만의 결정이었다. 라 피에르 대령은 좌초된 2척의 함선을...
프랑스 군함에 통역사로 승선한 최양업은 고군산도까지 갔지만…
[신 김대건·최양업 전] (50)프랑스 군함 타고
조선으로의 출항최양업 부제는 메스트르 신부와 함께 파리외방전교회 홍콩 극동대표부에서 「기해ㆍ병오박해 순교자들의 행적」 라틴어 번역 작업을 마친 후 조선으로 출항할 프랑스 함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해 곧 1846년 8월 세실 제독은 프랑스 군함 3척을 이끌고 충청도 홍주 앞 외연도로 가서 조선 정승 앞으로 한문 편지를 전달하고 돌아왔...
라틴어 능통했던 최양업, 기해·병오박해 순교자 시복의 숨은 공로자
[신 김대건·최양업 전] (49)최양업은 홍콩에서
조선 순교자 시복시성 운동에 기여홍콩은 1841년 1월 영국에 점령된 후 청이 제1차 아편전쟁에서 패함으로써 1842년 남경조약에 따라 영국에 양도됐다. 이때부터 홍콩에는 영국과 미국, 독일의 개신교 선교사들이 들어와 선교 활동을 펼쳤다. 교황청도 포르투갈의 선교 보호권을 축소하기 위해 1841년 4월 22일 지목구를 설정해 홍콩을 포...
김대건 순교 소식에 비탄에 빠진 최양업, 조선 입국마저 무산
[신 김대건·최양업 전] (48)최양업의 눈물
병오년, 박해의 피바람이 불다김대건 신부가 붙잡히자 조정은 그를 도운 이들을 찾아내기 위해 체포령을 내렸다. 이에 1846년 5월부터 7월에 현석문(가롤로)와 김임이(데레사), 이간난(아가타), 우술임(수산나), 정철염(가타리나), 임치백(요셉), 남경문(베드로), 한이형(라우렌시오) 등 약 30명이 체포됐다. 이들 중 김대건 신부가 ...
조선인 첫 사제 김대건, 칼을 맞고 거룩한 죽음을 맞다
[신 김대건·최양업 전] (47)김대건 신부의 순교
이름: 김대건(우대건) 나이: 25세 출신: 중국 광동성 오문현(현 마카오) 종교: 천주교 압수 물품: 언문 소책자 1권, 붉은 비단 주머니 1개(성모자상과 예수성심상이 새겨진 무명 조각 2개가 들어있음). 특이 사항: 머리카락을 반쯤 잘라 기르지 않은 흔적이 있음. 진술 내용: 본래 중국 광동성 오문현 사람으로 성은 우(于)이고, 이...
선교사 입국 도우려 다시 뱃길에 오른 김대건 신부, 결국 체포돼
[신 김대건·최양업 전] (46)김대건 신부의 마지막 항해
해로 개척을 위해 김대건 신부는 1846년 4월 12일 주님 부활 대축일을 지낸 후 곧바로 페레올 주교의 지시에 따라 선교사 입국을 위한 해로 개척에 나섰다. 여행 준비 기간 페레올 주교는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장에게 보낼 보고서와 편지를 라틴어로 썼다. 김대건 신부는 선교사들의 입국에 꼭 필요한 조선 지도 2점을 그렸다. 김대건 ...
조선 선교의 자유 얻기 위해 무력 사용도 고려한 페레올 주교
[신 김대건·최양업 전] (45)페레올 주교의 고민
메스트르 신부와 최양업 부제페레올 주교와 김대건 신부는 메스트르 신부와 최양업 부제가 경원 개시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에 휩싸였다. 둘은 왜 메스트르 신부와 최양업 부제가 국경을 넘지 못했는지 분석했다. 겨울철 만주 벌판을 지나 훈춘까지 가는 여행길이 얼마나 험하고 위험한지 김대건 신부는 직접 체험한 바 있다. 페레올 주...
사제가 돼 돌아온 아들 10년 만에 만난 어머니, 감격의 눈물
[신 김대건·최양업 전] (44)페레올 주교 한양 입성
한양에서 미사와 성사를 베풀다조선 입국 후 강경에 은신하고 있던 페레올 주교는 1845년 주님 탄생 대축일 즈음에 한양에 안착했다. “저는 조선의 수도에 도착한 지가 얼마 안 됩니다. 출발하기 전에 우리 신자들 가운데 몇몇이 저에게 엄청나게 큰 위험을 겪을지 모른다고 말했으나, 그 위험은 다행히도 단지 그 신자들의 상상의 산물이었을 뿐...
최양업 부제 일행, 중국 국경 수비대에 체포돼 조선 입국 좌절
[신 김대건·최양업 전](43)최양업, 조선 입국 시도했으나
“언젠가 좋으신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저의 동포들을 만날 행운이 저에게 다가오기를 하루하루 바라면서 머물러 있습니다. 저의 동포들의 딱한 사정을 생각하면 탄식과 눈물을 쏟지 않을 수 없습니다.…정말 저는 부끄럽습니다. 이렇듯이 훌륭한 내 동포들이며, 이렇듯이 용감한 내 겨레인데, 저는 아직도 너무나 연약하고 미숙함 속에 허덕이고 있습...
페레올 주교, 강경에서 우리말 배우며 조선 교회 상황 파악
[신 김대건·최양업 전] (42)강경에 머물며
새 배를 구하라“선원 두 사람이 우리를 업어다 순교자들의 땅에 내려놓았습니다. 제 착좌식은 그리 화려한 것이 못되었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모든 일을 소리 없이 은밀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야음을 틈타서 앞장서서 가는 신자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 집은 흙으로 지어진 초라한 초가였습니다. 방이 두 칸 있었고, 높이가 3피에(약 96㎝)...
강경 부근의 황산포 나바위 도착, 드디어 조선 본토에 발 디뎌
[신 김대건·최양업 전] (41) 조선 본토에 도착
선교사들의 조선 입국 목적지는 어디인가김대건 신부 일행은 라파엘호를 타고 1845년 10월 12일 충청도 은진현 강경을 통해 조선에 입국했다. 페레올 주교를 입국시키기 위해 그해 4월 30일 한양에서 출발한 지 165일, 사제품을 받고 8월 31일 상해에서 귀국길에 오른 지 43일 만이다. 이로써 김대건 신부와 조선 신자 11명은 페레...
제주 표착 확인 후 바로 조선 본토로 항해
[신 김대건·최양업 전] (40) 제주 표착
라파엘호 제주 표착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ㆍ김대건 신부 그리고 조선 신자 11명이 탄 라파엘호는 1845년 9월 28일 제주도에 표착했다. 아쉽게도 라파엘호에 있던 그 누구도 표착 장소에 관해 자세히 알려주지 않아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다만 해류에 따라 라파엘호가 표류했을 제주 서쪽 바다에는 비양도, 차귀도, 가파도 세 섬이 있는...
라파엘호, 죽음의 폭풍우 헤치고 기적적으로 제주 표착
[신 김대건·최양업 전] (39)페레올 주교와 조선으로
상해에서 출발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와 조선 선교사 다블뤼 신부 그리고 김대건 신부와 11명의 조선인 신자들은 상해에서 귀국길에 오른다. 김대건 신부 일행이 타고 온 라파엘호의 수리도 모두 마무리됐다. 폭풍우를 만나 부러진 돛과 키는 새것으로 교체됐지만, 조선 배에 중국식 돛과 키를 단 라파엘호는 마치 한복 차림에 양복 윗도리...
조선인 첫 사제의 탄생, 신자들 감격의 눈물 흘려
[신 김대건·최양업 전] (38)김대건 사제 수품
라파엘호에서의 선상 미사김대건 부제는 1845년 6월 4일 상해에 도착한 후 8월 31일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와 함께 라파엘호를 타고 상해를 떠나 귀국할 때까지 프랑스 예수회 출신 클로드 고틀랑(Claude Gotteland, 1803~1856) 신부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는다. 고틀랑 신부는 산동대목구장이며 남경교구장 서리인 이탈...
거친 폭풍우 만난 라파엘호, 죽음의 공포에서 성모님께 매달리다
[신 김대건·최양업 전] (37) 뱃길로 중국 상해 도착
무동력선 타고 중국으로목선인 라파엘호는 동력선이 아니어서 자연 현상 곧 물흐름(해류와 조류)과 바람을 이용해 항해해야 했다. 동중국해에서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지나 태평양으로 빠져나가는 물길이 바로 ‘구로시오 해류’이다. 구로시오 해류는 대만에서 양 갈래로 나뉜다. 그중 중국 절강성 주산군도에서 동북향으로 흐르다가 제주도 서남단에서 다...
페레올 주교 데려오기 위해 목선 라파엘호 타고 중국으로 향하다
[성 김대건·최양업 전] (36)라파엘호 출항
김대건 등 라파엘호 승선자들김대건 부제는 페레올 주교가 지시한 일들을 모두 마무리하고 1845년 4월 30일 조선대목구 재산인 배를 타고 마포나루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목적지는 중국 강남이었다. 페레올 주교를 이곳에서 만나 이 배로 조선에 입국시키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다. 현석문(가롤로)과 이재의(토마스), 최형(베드로), ...
‘조선전도’ 만들고 조선 순교사와 순교자들에 관한 보고서 작성
[신 김대건·최양업 전] (35)김대건은 한양에서 무엇을 했나
100여 일 동안 한 일 김대건 부제는 1845년 1월 15일 한양에 도착해 4월 30일까지 머물렀다. 그럼 김 부제는 106일 동안 한양 소공동 돌우물골에 머물면서 무슨 일을 했는지 살펴보자.김대건 부제는 한양에 머물면서 페레올 주교가 지시한 다섯 가지 일을 처리했다. 먼저, 페레올 주교와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했을...
김대건 부제, 한양 중심지에 머물며 집 한 채 따로 마련
[성 김대건·최양업 전] (34)김대건 부제, 돌우물골에 머물다
김대건 부제는 1845년 1월 15일 한양에 도착해 그해 4월 30일까지 소공동 돌우물골(石井洞) 남별궁(南別宮) 뒤편 우물가를 지나 두 번째 초가에서 생활했다. 만 106일이라는 꽤 긴 시간을 김대건 부제는 이 집에 기거했다. 1840년대에 김정호가 제작한 한성지도 「수선전도」는 남별궁 옆을 돌우물골로 표시하고 있다. 남별궁은 조선...
묵주기도에 의지, 강추위와 싸우며 국경 넘어 한양으로
[신 김대건·최양업 전] (33)김대건 부제, 조선으로
김대건 부제는 1845년 1월 1일 봉황문 책문에서 페레올 주교와 함께 자신들을 데리러 온 김 프란치스코와 조선인 신자 2명을 만났다. 페레올 주교는 이들로부터 자신의 조선 입국이 어렵다는 말을 듣는다. 이에 그는 마카오로 돌아가기로 하고, 김 부제 홀로 신자들과 입국해 조선 정세를 파악하고 중국 강남에서 만나기로 했다. 눈 쌓인 숲 ...
페레올 주교가 세 차례의 기회 차버리면서 조선 입국 계속 늦어져
[신 김대건·최양업 전] (32)두 신학생의 부제 수품과 조선 입국의 난항
최양업ㆍ김대건 부제 되다신학생 김대건은 1844년 2월부터 두 달간의 두만강을 통한 조선 입국 탐사를 마치고 그해 4월 페레올 주교와 메스트르 신부가 있는 소팔가자로 돌아왔다. 이에 앞서 요동반도 백가점에 남아있던 메스트르 신부는 1843년 12월 31일 개주 양관에서 거행된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 서품식에 참여한 뒤 1844...
맹수 득실대는 산림 뚫고 왕복 1600㎞ 대장정, 두만강 국경 탐사
[신 김대건·최양업 전] (31)조선 입국 탐사와 김대건의 ‘훈춘 기행문’
신학생 김대건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의 지시로 1844년 2월 5일 2개월 여정으로 중국 만주 길림성 소팔가자에서 두만강 국경을 통한 조선 입국 탐사 길에 오른다. 그의 말대로라면 편도 2000리, 왕복 1600㎞의 대장정이었다. 김대건은 이 여행 보고서를 ‘훈춘 기행문’이란 제목으로 페레올 주교에게 제출했다. 훈춘 기행문(김대건의...
페레올 주교의 안전주의에 조선 입국로 탐색만 하며 시간 흘러
[신 김대건·최양업 전] (30)두만강 입국로 개척
신학생 김대건의 성직자 영입을 위한 압록강 입국 시도에 이어 두 번에 걸쳐 두만강을 통한 입국로 개척 과정을 살펴본다. 김대건은 신학생 시절 조선에 두 차례 입국했다. 첫 번째는 1842년 12월 29일 압록강을 건너 의주까지 왔다가 1843년 1월 1일 다시 중국 봉황성 책문으로 돌아갔다. 두 번째는 1844년 3월 8일 두만강을 건...
검문검색과 살을 에는 추위 뚫고 홀로 국경을 넘나들어
[신 김대건·최양업 전] (29)의주 땅을 밟고 돌아오다
부친과 최양업 부모의 순교신학생 김대건은 1842년 12월 27일 중국 봉황성에서 약 8㎞ 떨어진 지점에서 우연히 조선의 동지사 일행과 마주쳤고, 그들 속에 있던 조선 교회 밀사 김 프란치스코를 만났다. 김대건은 그로부터 1839년 기해박해로 앵베르 주교를 비롯한 모방ㆍ샤스탕 신부와 신자 200여 명이 순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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