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세가 불안하기만 합니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5차 전원회의 확대회의 중, 통상 남한을 대상으로 한 메시지에서 "대적투쟁"이란 표현을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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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이러한 반응은 정권교체로 새롭게 임기를 시작한 윤석열 정부의 맞대응 성격으로 분석됩니다. 윤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SNS에서 "주적은 북한"이라는 다섯 글자를 게시했고, 북핵 억지력의 방안으로 "선제타격"을 언급하는 등 대북 강경 노선을 표명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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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의 대치가 말로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북은 ICBM을 포함한 무력시위를 올해에만 총 19차례 시행했고, 우리 정부도 한미 안보 체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대규모 군사 기동 훈련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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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남이든 북이든, 이런 강한 어조와 무력 도발이 전쟁을 억지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데에 있습니다. 차분하고 냉정한 대응은 겁쟁이처럼 인식되고, 뭔가 강하고 센 것만이 상대를 압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가 정말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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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경우, 전후 분단 하에서 서독의 아데나워 정권은 자신만이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이른바 할슈타인 정책을 고수합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대화하지 않겠다는 강경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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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69년 수상에 오른 빌리 브란트는 이 정책의 한계를 지적하며 동독과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지원하는 이른바 동방정책을 수립합니다. 결국 이듬해인 1970년, 동서독은 역사적인 첫 정상회담을 성사시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20년 후인 1990년, 독일은 마침내 분단을 극복하고 지금은 세계적인 선진 국가를 이루어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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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2년 전, 우리도 역사상 최초로 남북의 정상이 손을 맞잡았습니다. 상호 적대와 증오를 중단하자고 다짐했고, 공동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주인이 돼 힘을 합치자고 약속했습니다. 바로 2000년 6월 15일, "6.15 남북공동선언"의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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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동서독 정상이 처음 만난 지 20년 만에 평화를 이루었고, 우리는 비슷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전쟁에 위협 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만큼 불신의 담이 높았고, 미움의 골도 깊었기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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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금 우리의 선택은 대적투쟁도 아니고, 선제타격도 아니어야 합니다. 만남과 대화를 통해 다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해야 하고, 화해와 평화의 길로 함께 걸어가기로 했던 그 날의 약속을 다시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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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사제의 눈]은 "22년 전, 그 약속을 기억하십니까?"입니다. 평화와 번영의 길이 우리 앞에 없는 것이 아니라, 불신과 미움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무력이 아니라 대화를 바라는 이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도하며 오늘도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