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공감] 日,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추진…북한 반응 "야만적 노력수탈"

[평화공감] 日,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추진…북한 반응 "야만적 노력수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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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2-15 18:40 수정 : 2022-02-15 19:32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이기상의 뉴스공감>

○ 진행 : 이기상 앵커

○ 출연 : 강미진 / NK투자개발 대표


강미진의 평화공감 시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최근에 일본 정부가, 일본이 자꾸 왜 우리를 화나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문제가 튀어나오면서 한일관계가 또 다시 독도만으로 충분치 않아서 이제는 사도광산 들고 나왔습니다. 북한은 강제징용 등 과거 문제에 대해서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고 이야기를 하는지 이런 이슈가 있을 때는 거기에서 나오는 반응들은 어떤 내용들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사실 일본은 창피함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남의 나라를 수십 년 동안 강탈한 것도 모자라서 역사를 왜곡하는 거잖아요. 사실 북한은 이렇게 정의를 하고 있는데 일제가 강행한 강제징용, 조선 사람들을 많이 끌어갔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군사시설이나 광산에도 데려가고 비밀 공사를 시키면서 죽였잖아요. 그런 거에 대해서 중세기적인 노예매매 행태로 사람을 부렸다고 하고 이런 강제징용을 하고 있는 노력수탈을 원색적인 발언을 해가면서, 강제적으로 수탈해 간 거예요.

그런 식으로 하면서 일본에 대한 반감은 아마 앞으로도 지속될 것 같아요. 골수에 사무친 원한이 있기 때문에 일본이 세계와의 관계, 한국과의 관계에서도 엄청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게 북한이거든요. 북한이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했을 때 30년대 말이나 40년대 초까지 여러 가지 법령을 내놔서 총동원령, 시민법령 이렇게 해서 개정 국민징용령 이렇게 해서 1943년까지 총 261만 6000명이라는 한반도인을 끌어가는 거예요. 일본에. 청년들을 주로 끌어갔잖아요. 이 사람들을 보수도 얼마 안 주고 매매하다시피, 이런 것에 대한 북한의 반응을 보게 되면 강제수탈 원색적인 언어들을 쓴 걸 봐서는 일본에 대한 분노가 상당히 높다고 보입니다.


▷광복 후에 남한과 북한에서의 일제 청산, 그 역사가 분명히 다르게 진행이 된 부분이 있거든요.

▶저도 그렇게 느끼고 있는데 제가 한국의 역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일단 와서 보면 일제청산이 잘 안 됐다. 북한은 외형적으로 볼 때는 정말 깨끗하게 청산했다고 보거든요. 일제 기관에 복무했거나 하수인을 했거나 심부름을 했던 사람들도 거의 청산을 했어요. 그런데 그중에 안 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북한이 어떻게 얘기를 하냐면 돈을 벌어서 빨치산 운동을 하는, 광복을 위해서 운동을 하는 그런 사람들한테 도와줬기 때문에 이거는 외형만 친일파지 내형적으로 봤을 때는 광복 회원이다. 그런 식으로 했고 실질적으로 안창호 선생님 이런 분들의 활동을 놓고 보면 일제 기관에 복무했거나 지식이 있는 사람들, 실제 지식을 배웠다면 일본의 지식을 배웠을 거잖아요.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내부적으로 조선 사람이기 때문에 한반도를 위해서 투쟁을 했다고 하면서 하고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서 북한이 1946년 3월에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에서 어떤 법령을 채택합니다. 법령의 이름이 친일파민족반역자에 대한 규정이에요. 이 규정 안에 들어가는 사람은 일제 기관에서 기사장, 기관의 공무원을 했거나 이런 사람들을 다 한 명, 한 명 검사, 경찰, 순사 이런 것까지 꼬집어서 이 사람들에 대해서 하나하나 척결을 하거든요.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은 무상몰수해서 인민들한테 공짜로 나눠줍니다. 그렇게 했고 그때 당시 제가 기억이 나는 거는 북한소설,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연들인데 벚꽃이 평양시에 쭉 있었는데 그런데 벚꽃을 사쿠라꽃이라고 하면서 일본 꽃이라는 의미에서 평양시에 사쿠라꽃이 별로 없거든요. 그때 싹 베어버렸어요. 나무까지 화풀이를 할 정도로 북한 주민들은 일제에 대한 원한이 깊다는 거죠.


▷그것은 한민족이라면 다 같은 입장일 것이고요. 역사 속에서 그것을 어떻게 청산했느냐에 대한 부분은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일제의 조선인 강제노동동은 남북이 갈라지기 전 일이잖아요. 사실은 남북이 함께 대응해 나가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있거든요.

▶저도 그렇게 봅니다. 사실 우리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게 맞는 거죠. 그러니까 강제징용에 대한 그 아픔을 가지고 있는 거는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지 다른 나라 사람은 모르잖아요. 이러한 문제를 남북한이 합쳐서 정말 우리 한민족의 역사 중에 정말 아팠던 기간이 일제 강제 36년 기간이 아닐까 생각을 하는데 이때는 진짜 위안부로 끌려가셨던 여성분들도 지금도 치유 못하고 있잖아요. 강제징용 이런 거는 한민족이, 북한하고 남한이 물론 통일도 논하고 앞으로 경제상황도 논해야 하겠지만 이렇게 한민족이 공통으로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쳐서 풀어가야 할 숙제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제청산의 나름 구체적인 예들이 있나요.

▶북한은 거의 일제 기관에 복무를 했던, 어쨌든 신분 이력이 다 있을 거잖아요.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그때 당시 그 사람에 대해 증언을 하는 사람들이 두세 명만 있으면 그 사람의 행적이 어떤 것도 용서가 안 되는 거예요. 공식적으로 어떤 기관에 내가 돈을 벌어서 독립군에 보냈다. 이런 공식적인 자료가 있지 않는 한 그냥 외형상 봤을 때 너는 일제 기관에서 인민들을 못살게 굴고 기관에 복무했다고 하면 진짜 청산이 되는 거예요. 북한은 지금도 연좌제가 적용됩니다. 그때 당시는 더 했겠죠. 그런 가족들에 대해서는 본인은 더 가혹한 처벌을 줬고요.

사실 저희 동네에서도 일제 때 할아버지가 순사를 하셨대요. 이 할아버지는 꼼꼼히 모으는 습관이 있었나 봐요. 순사일지, 기록부라는 것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딱지놀음을 하잖아요. 그 집 아이가 딱지 하다가 졌으니까 학습장을 뜯어서 할 수 없어서 할아버지 서랍을 뒤지다가 서랍 밑에 있는 순사일지를 가져다 한 거예요. 애들은 모르잖아요. 가지고 놀다가 딱지를 두 개를 다른 애한테 뺏겼어요. 애들이 집에 가서 딱지를 보강하느라 겉에 다른 거 씌워서 하다 보니까, 그 집 아빠가 만들어줬나 봐요. 그런데 그 집 아빠가 봤는데 일제의 순사일지가 있는 거예요. 그걸 당의원에 잡아 바치고 그 행적을 추적하니까 다른 지역에서 일제 순사에서 고등계 형사라든가 높은 자리를 하다가 다른 데로 도망쳐 온 게 저희 집으로 도망쳐 온 거예요. 그 가족이 진짜 갔어요.


▷동네에 순사를 하던 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는 얘기는 문제가 된다는 얘기거든요. 알겠습니다. 남과 북의 차이를 조금씩 줄여나가고 평화를 찾아나가야 하는데 들을 때마다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강미진의 평화공감을 통해서 그 갭을 조금씩 줄여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cpbc 이기상의 뉴스공감 (vigorousact@gmail.com) | 입력 : 2022-02-15 18:40 수정 : 2022-02-15 19:32

■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pbc 가톨릭평화방송 <오창익의 뉴스공감>'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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