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인터뷰] 강석진 신부 "성 김대건의 으뜸 영성은 행동하는 신앙"

[열린 인터뷰] 강석진 신부 "성 김대건의 으뜸 영성은 행동하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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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8-18 18:52
▲ 순교성지 새남터성당에 세워진 성 김대건 신부 동상(가톨릭평화신문 DB)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 진행 : 서종빈 앵커
○ 출연 : 강석진 신부 /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성 김대건 생애 돌아보는 노력, 감춰진 보물 찾는 시간
김대건 태어난 1821년, 조선에 콜레라 만연하던 시기
김 신부 탄생 200주년과 코로나19 펜데믹, 전화위복될 수 있어

김 신부 으뜸 영성은 ‘행동하는 신앙’
두려움과 고난을 용기로 이겨낸 ‘꼴찌영성’도 새겨야
올해 레지오 마리애 창설 100주년, 김 신부의 성모 신심 부각되길


[인터뷰 전문]

오는 21일은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되는 날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탄생지인 충청남도 당진시가 지난 14일부터 오는 22일까지를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주간으로 정하고 솔뫼성지에서 다양한 기념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아울러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오는 21일, 전국 1750여 개 성당에서 일제히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한다고 밝혔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신앙인들은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어떤 마음으로 보내야 할까요?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강석진 신부 연결해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강석진 신부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오는 21일 성 김대건 신부님의 탄생 200주년을 맞게 됩니다.
순교자의 삶을 통해 완덕의 길로 나아가야 하는 수도사제로서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저는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수도 사제로서 개갑순교성지(전북 고창군)에서 심원공소 협력 사제로 있고요. 매일 아침마다 순교자들의 삶, 순교자들을 현양하겠다고 한 특수 목적을 되뇌고 있기에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을 맞이해서 개인적으로 직간접적으로 여러 가지 공부도 했었습니다.

여러 가지 몰랐던 것도 알게 됐고 새롭게 깨닫게 된 것도 있습니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고 있고 앞으로도 한국 천주교회가 김대건 신부님 26년 생애를 기억할 일이 많다고 봅니다. 그럴 때마다 교회가 김대건 신부님의 삶과 신앙을 충실히 돌아볼 결심을 한다면 하느님께서 모든 것들을 채워주지 않을까 생각해 보겠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삶의 궤적을 돌아보는 노력, 우리가 감춰진 보물을 찾는 시간이 아닐까. 그러면서 늘 설레고 있습니다.


▷신앙인들은 지난해 대림 1주일부터 성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을 보내고 있는데요. 희년을 시작할 때와 달리 익숙해진 일상에선 희년살이를 자주 잊고 살기도 합니다. 신앙인들이 어떻게 좀 살아갔으면 하고 바라세요?

▶올해 김대건 신부님 200주년을 기리면서 늘 따라다니는 것이 코로나19 아닙니까?
김대건 신부님이 태어난 1821년에 놀랍게도 조선에 콜레라가 처음 전파되었고요.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을 기억하는 지금 또한 코로나19가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1821년 조선에 콜레라가 만연했을 때 다블뤼 주교님은 콜레라 때문에 많은 이들이 신앙으로 돌아왔다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따라서 콜레라가 유행할 때 신앙적인 측면에서는 세례성사의 은총을 간절히 원했음을 알 수 있고요. 그래서 콜레라가 박해 이후 신앙 강화 측면에서 하느님께 의탁하는 전화위복이 된 것 같고요.

이런 역사적인 일들을 기억해 본다면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과 코로나19로 힘든 이 시기를 겪고 있기에 희년에 대한 의미를 신앙 성장의 차원을 넘어서 환경 문제에 동참하고 나눔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계기가 될 수 있겠죠. 그러면 전화위복의 시간, 어쩌면 십자가의 신비를 깨닫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지난해 ‘성 김대건 바로 알기, 바로 살기’ 북콘서트 강사로 저희 CPBC 프로그램에 출연하셨을 때 ‘평소 김대건 신부님에 대해 머리만 앞섰던 것 같은데 이제는 김대건 신부님의 삶을 내면적으로 정리할 기회가 주어졌다’, 이런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삶을 내면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사실 교회 역사를 공부하는 저로서는 지금까지 역사적 사료에 근거해서 말하고 사료에 충실한 입장에서 문제를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김대건 신부님 역시 사료에 입각해서 공부해 왔고 그것을 바탕 삼아 교우들에게 김대건 신부님의 삶과 신앙을 전달했는데 그럴 때마다 내심 한계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우 분들이 알고 싶은 것이 과연 역사적 사실만인가? 교우들이 진심으로 알고 싶은 것은 역사적 사건 맥락이 아니라 사건 중심 속에 있는 김대건 신부님의 마음과 김대건 신부님을 이끄시는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었는가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서 저 자신부터 올해는 김대건 신부님의 역사적 사건을 좌우, 위, 아래에서 보려는 노력을 했습니다. 덕분에 많은 것들을 새롭게 보았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 같고요. 그래서 찾은 것들을 정리해서 기회가 되면 신자들과 나누려는 노력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 여정, 신부님께선 어떤 점이 가장 인상적이셨어요?

▶사실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 여정 중 인상적인 것은 행동하는 삶을 몸소 사셨던 것 같습니다. 신학생으로 선발되는 과정, 에르곤호를 타고 몇 개월 동안 세상을 경험하는 것, 교우촌에 있으면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조선에 들어갔던 것. 이런 모든 기억을 통해서 정말 김대건 신부님의 삶은 행동하는 신앙인의 삶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신부님의 그 행동의 방법이 길 위에서 하느님을 만났고, 물 위에서 세상을 만났고, 길 위에서 교우들을 만났고, 궁극적으로 행동하는 신앙을 통해 자신을 만났던 사제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 여정, 순교 영성은 ‘행동하는 신앙인’이었고, 그 행동은 결국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말씀하신 주님의 길을 온전히 따랐던 행동, 바로 그 모습이 저에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신학생 때 모습을 두고 ‘꼴찌영성’이라는 표현도 하셨는데요.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되는, 어떻게 보면 역설적일 수 있는 그 의미가 김대건 신부님의 삶엔 어떻게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할까요?

▶신부님께서 신학생으로 선발돼서 신학생 시절 육체적, 정서적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러면서 좋은 스승을 만나서 인정과 지지를 받으면서 자신감을 찾고 세상에 대한 인식을 가졌었는데요. 그런 과정 속에서 도전에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가득한 청년이 되었었죠.

때로는 정화되지 않은 용기는 만용으로 나타나기도 하더라고요. 왜냐하면 조선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 북경으로 갔던 김대건 신학생은 조선의 밀사를 만났고 거기서 1839년 박해로 아버지의 순교 소식, 어머니가 떠돌이 생활하고 있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고통스러운 상황을 겪고 이에 용기가 너무 가득한 나머지 김대건 신학생은 스승 메스트르 신부님에게 그 어떤 보고도 없이 단독으로 1842년 12월 29일에 조선 땅에 들어가게 되죠. 그러면서 김대건 신학생은 준비가 안 된 만용으로 인해 엄청난 고생을 했지만 그래서 주막에서 사람들에게 의심도 사게 되고 체포의 위기도 닥쳐올 뻔 했었습니다.

꼴찌에서 용기 충만한 청년인 김대건 신학생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선으로 계속 간다는 것이 위험하다는 올바른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김대건 신학생은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발길을 돌려 중국으로 돌아오는 사실들을 통해서 늘 아프고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꼴찌 김대건 신학생, 도전 정신이 충만한 청년이 되었고 그러다가 만용으로 인해 죽을 고비도 겪었지만 이 모든 시간은 성장의 계기가 되어서 올바른 판단력을 갖춘 훌륭한 청년이 되어 가는 과정, 바로 이러한 것들이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벌써 2년째 코로나19로 많은 분들이 지치고 힘들고 스스로 꼴찌가 된 듯한 시간을 보내는 분들도 계실 같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김대건 신부님의 ‘꼴찌영성’이 어떻게 좀 힘이 되고 도움이 됐으면 하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소식을 신문과 방송을 통해 매일 접하고 있습니다. 그런 어려움들은 일반인뿐만 아니라 교회도 수도회도 영향에서 예외일 수 없고요. 말로만 희망이 아니라 건강한 신앙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말씀을 드리면서 김대건 신부님의 신학교 생활 한 단면을 잠깐 말씀드릴게요.

김대건 신부님은 신학생 시절에 건강도 좋지 못했고 학업도 힘들었지만 그보다 더 힘들었을 거라고 추측되는 것은 신학교 신부님들로부터 은연중에 동료였던 최양업 신부님과 비교되었던 겁니다. 실제로 김대건 신학생 편지와 최양업 신학생의 편지를 비교해 봐도 1842년, 1843년 초반에 그 서한의 문체나 논리를 보면 확연히 다릅니다.

이처럼 김대건의 신학교 스승 신부님으로부터 자신과 최양업을 비교당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본인은 거기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묵묵하게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길을 최선을 다해 걸어갔고요. 그래서 타인과 비교될지언정 본인 스스로는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여건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김대건 신학생의 모습처럼 기도를 우선적으로 하는 삶. 타인과 비교하여 자신을 자학하지 않는 것. 결국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삶. 성실함을 통해 자신의 길을 우직하게 걸어가는 삶을 살아갈 때 어쩌면 우리 모두가 지금 현실적으로 겪고 있는 아픔, 고통, 좌절, 우리네 인생살이 모든 것들에 살아갈 힘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가톨릭교회가 지난 주일을 성모승천대축일로 지냈는데요. 김대건 신부님의 성모 신심도 각별하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천주교회의 수호성인인 성모 마리아에 대한 김대건 신부님의 신심, 어느 정도였습니까?

▶김대건 신부님은 신학생으로 선발되어서 신학생 시절 때 신학 공부를 하면서 성모님 신심을 강하게 간직하게 되었을 것이고요. 김대건은 조선이 겪고 있는 박해 상황과 그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아마 인간적인 노력과 힘만으로 되지 않음을 알고 온전히 기도에 의탁했을 겁니다. 이런 기도의 의탁은 김대건 신부님이 성모님의 전구에 의지함으로써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자라난 삶을 살겠다는 거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김대건 신부님의 성모님 신심은 성모님께 기도하는 마음에 ? 모든 것을 의탁했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 마음은 조선 땅에서 천주교 신앙이 박해 때문에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 언젠가 박해를 뛰어넘어 하느님이 계시는 참 세상이 오리라는 희망. 이러한 것들을 가지고 있었기에 박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자 노력했던 것입니다. 이 모든 바탕에는 늘 하루의 많은 시간을 성모님께 기도하고 묵주기도로 성모님께 자신을, 그리고 조선교회를 봉헌했던 모습에서 우리는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피를 흘리지 않는 백색순교의 시대를 사는 우리 신앙인들이 어떻게 삶과 신앙 안에서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영성을 이어가면 좋을까요?

▶결국 사랑이 그 해답을 제시하지 않을까 합니다. 신학생 시절부터 부제, 사제로 이어오는 과정 동안 김대건 신부님은 하느님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고 그렇게 사랑했던 것만큼 조선이라는 나라와 조선 천주교회, 그리고 조선의 교우들을 사랑했던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김대건 신부님은 조선 땅에 하느님의 놀라운 사랑이 전해질 수 있다면 모두가 사랑 안에서 기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요. 그래서 김대건 신부님은 사랑의 마음으로 실천하고자 노력했던 분이라고 봅니다.

김대건 신부님이 보여준 사랑의 영성은 죽음 앞에서도 사랑의 가치가 최우선이라는 그때의 일을 발견했기에 순교의 길을 기쁘게 걸어갈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김대건 신부님이 보여준 하느님에 대한 사랑만큼이나 조선인 교우를 사랑했던 마음으로 우리 역시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간다면 그 사랑이 우리를 진정 참된 삶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 확신하면서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 영성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강석진 신부 연결해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의 의미와 순교영성에 대해 말씀 나눴습니다. 강석진 신부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cpbc 김원철 (wckim@cpbc.co.kr) | 입력 : 2021-08-18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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