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씨네] 영화 '자산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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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4-09 05:00


[앵커] 가톨릭의 눈으로 영화를 바라보는 시간이죠? 평화씨네.

오늘도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 서빈 미카엘라님 나오셨습니다.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 오랜만에 나오셨습니다. 오늘은 어떤 영화를 가져오셨나요?

▶ 3월 31일에 개봉한 영화 <자산어보>를 가져왔습니다. <자산어보>라는 책 제목은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 학교 다닐 때, 국사 교과서에서 나왔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이 어류들에 대해 정리해놓은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 많이 알고 계시네요.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쓴 것으로 물고기와 해양 생물들을 채집해서 명칭과 형태, 분포 등 실태는 물론이고, 맛과 간단한 요리법까지 기록한 책입니다.

영화는 그 제목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조금 특이한 것은 흑산도 인근에 서식하는 물고기들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이 영화의 앞부분에 나오는 신유박해와 관련이 있습니다.

영화를 잠깐 보고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VCR1]
▷ 흑산도로 유배를 간 거군요?!

▶ 그렇습니다. 아시겠지만, 정약용과 정약전 형제는 천주교 신자잖아요? 신유박해 때 천주교 신자 100여 명이 사형을 당했고, 정약용과 정약전 등 400여 명은 유배됐는데요,

동생 정약용은 강진으로, 형 정약전은 이곳 흑산도로 유배를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흑산도 인근의 바다 생물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거죠.


▷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양반의 신분으로 비린내 나는 물고기와 해양생물에 관심을 가진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닐 것 같은데요.

▶ 바로 거기에 정약전의 위대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약용은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목민심서>, <경세유표>, <여유당전서> 같은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반면, 정약전은 나라의 질서보다는 민중의 삶을 위한 실질적인 지식이 무엇인가에 더 집중을 한 것입니다.

저서만 봐도 두 사람의 가치관이 확연히 다르다는 걸 느낄 수가 있죠?


▷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만약 그가 흑산도로 유배를 가지 않았다면, 과연 이 책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 그래서 '새옹지마'라는 말이 이 경우에 딱 맞는 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동생 정약용도 유배를 가서 <목민심서> 같은 실학사상을 정리하는 저서들을 남기고, 형 정약전도 유배 가서 <자산어보>라는 책을 정리한 거잖아요?

유배 간 곳에서 책을 쓴다는 것은 감옥에 가서 책을 쓰는 것과 같은 거 아닌가요?

그러고 보면, 시간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대단한 거군요! 그런데 그 책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인물이 있었다고요?

▶ 네, 아무래도 양반인 그가 물고기에 대해서 정리하기에는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죠.

옆에서 도와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같이 보도록 하겠습니다.

[VCR-2]
▶ 보시면 아시겠지만, '창대'라는 저 인물은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젊은이입니다.

창대는 물고기에 대해 가르쳐달라고 하는 정약전을 처음에는 멀리합니다.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이죠.

하지만 보신 것처럼 두 사람은 글공부와 물고기에 대한 지식을 '거래'라는 명목으로 맞바꾸기 시작한 거죠.


▷ 그래도 양반과 상놈이라는 계급의 차이가 있었을 텐데 두 사람은 계급의 차이를 뛰어넘었나 봅니다.

▶ 네. 영화를 보면, 두 사람이 처음에는 티격태격하지만, 조금씩 서로에게 물들어가거든요. 처음에는 스승이었다가 나중에는 진정한 벗이 되는 거죠.

이준익 감독은 <자산어보> 서문에서 '창대'라는 인물에 대해 언급된 것을 보고, 영화로 풀어낸 것입니다.

그는 "한 시대에 위대한 인물이 있다면, 그는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옆에는 그 못지않게 위대한 인물이 있다"고 말했는데요,

그래서 정약전이라는 위대한 인물 옆에 있었던 창대란 인물을 조명하게 된 것입니다.


▷ 서문에 나왔으면 길게 나오지도 않았을 것 같은데요.

▶ 네, 창대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몇 줄 나오지 않습니다. 영화에 인용된 <자산어보> 서문의 일부를 앵커님이 읽어 주시겠어요?


▷ 내가 섬사람들을 두루 만나보았다. 어보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사람들의 말이 제각기 달라 이를 정리하여 표현할 수 없었다.

섬 안에 창대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였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책이 많지 않은 탓에 식견을 넓히지 못하였다.

그러나 성품이 신실하고 정밀하여 물고기와 해초, 바다새 등을 모두 세밀히 관찰하고 깊이 생각하여 그 성질을 터득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말은 믿을만 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오랜 시간 그의 도움을 받아 책을 완성하였는데, 이름 지어 '자산어보'라 한다.

이걸로 두 시간이 넘는 영화가 만들어졌다니 참 대단하네요.

▶ 그렇죠? 이 영화의 또 다른 특이한 점은 흑백 영화라는 점이에요.

[VCR-3]
지금 나오고 있죠? 흑백이 주는 장점은 선명성일 겁니다. 컬러를 배제하면 인물이나 물체의 본질에 더 가까워지게 되죠.

한 폭의 수묵화 같은 영상을 통해 몰입감과 감동을 획득하게 되는 거죠.

반면에 배우들은 연기에 더 신경을 썼다고 하는데요, 흑백화면에서는 캐릭터들의 섬세한 감정이 더 디테일하게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이 영화는 의상이나 소품의 디테일에도 아주 정성을 많이 들였는데요, 제작진들의 노고가 들어있는 만큼 영화의 깊이도 그만큼 깊어질 수밖에 없었던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 이 영화의 한줄 요약이 궁금해지는데요.

▶ 오늘은 성경구절에서 골라봤습니다.

"자네의 시작은 보잘것없었지만 자네의 앞날은 크게 번창할 것이네."

욥기 8장 7절의 말씀입니다.

이 구절을 한줄 요약으로 한 이유는 '창대'라는 주인공 이름 때문에 연상됐기도 했지만, <자산어보> 서문에서 출발한 몇 줄 안 되는 창대라는 인물 이야기로 126분의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이준익 감독과 스테프들은 역사적 사실을 고증하며 이 영화를 완성했다고 하는데요, 그런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대작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위대한 인물 옆의 위대한 인물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 <자산어보> 함께 했습니다.


▷ 오늘 영화 소개해주신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 서빈 미카엘님이 감사합니다.


cpbc 이힘 기자(lensman@cpbc.co.kr) | 입력 : 2021-04-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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