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미경 "첫 미사가 장례미사 된 마리아 할머니, 사랑합니다"

[인터뷰] 김미경 "첫 미사가 장례미사 된 마리아 할머니, 사랑합니다"

CPBC 신앙체험수기 공모전 특별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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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3-05 18:21
▲ 마리아 할머니 병상을 지키고 있는 김미경씨.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김미경(베로니카) / CPBC 신앙체험수기 공모 특별상 수상자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홀몸노인과 방문요양보호사로 만나 ‘어머니와 딸’ 돼

사람 믿지 못해 마음의 문 안 열던 마리아 할머니

힘들 때 성호 긋는 내 모습 보고 천주교 입교 희망

병상에서 세례, 첫 미사가 장례미사 돼

“마리아 할머니 사랑합니다”


[인터뷰 전문]

아마도 이 분의 신앙체험이야말로 가슴 저릿한 주님 사랑의 고백이 아닐까 합니다.
제8회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 신앙체험수기 공모전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수원교구 대천동본당 김미경 베로니카님 연결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김미경 베로니카님,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특별상 수상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수기 첫 대목에서 직업을 먼저 밝히셨더라고요. 방문요양보호사로 일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올해까지 10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이번 수기의 주인공이 94세 김채홍 마리아 어르신인데요. 어떻게 해서 만나게 되셨습니까?

▶어르신은 이미 다른 센터에서 케어를 하시던 분이셨는데요. 선생님들이 번번이 퇴짜를 맞으시고 일이 힘드셔서 안 들어간다고 포기 상태까지 왔다가 마지막에 저희 쪽에 제안이 들어왔던 분이세요. 그래서 그분에 대한 정보 없이 들어가서 만나게 됐죠.


▷만나보시니까 어떠셨어요. 김채홍 어르신 어떤 삶을 살아온 분이셨습니까?

▶여자 혼자 몸으로 어떻게 그렇게 힘들게 살아오셨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 고생을 많이 하셨던 분이세요. 요즘 표현으로 센 언니, 걸크러쉬 그러잖아요. 자기주장도 강하시고, 할 말은 가감 없이 하시는 분이시고 한마디로 거침없이 사시는 분이셨어요.


▷그런데 어르신께서 처음에는 자매님을 여러 번 시험도 해 보시고 나중에는 미안하다고 사과도 하셨다는데 어떤 일이 있었던 겁니까?

▶이분도 저를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모르니까 제가 살림살이를 낭비하고 내 마음대로 하시는지 보고 싶으셨나 봐요. 몰래 세제용기 안에 금을 그어놓고 그렇게 보시기도 하고요. 퇴근하면 갑자기 호출을 하세요. 나한테 일을 생겼으니 와달라고. 그러면 제가 달려오는지 아니면 다른 일로 안 오는지도 보시고 그렇게 한참 애를 먹이시다가 제가 마음에 드셨나 봐요. 나중에는 ‘내가 사람을 믿지 못하니까 이렇게 한 번 너를 테스트 해봤다.’ 하시면서 미안하다고 사과도 해 주셨고요. 그 이후로는 테스트 하지 않았어요.


▷할머니께서 마음속에 상처 혹은 외로움 같은 게 있으셨나 봅니다.
그걸 이미 읽으셨어요?

▶제 눈에는 그게 보이더라고요. 그분이 세게 나오면 나올수록 어린아이들이 반항하면서 ‘엄마, 나 봐줘.’ 하듯이 ‘베로니카야, 너 날 좀 봐줘.’ 이렇게 자꾸 신호를 보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요.


▷그래서 수기에서 애정결핍의 신호라고 받아들이셨군요.

▶제 눈에는 자꾸 그렇게 보였어요.


▷어르신과는 간병인과 요양보호사가 아니고 어머니와 딸이 되신 거 아니에요.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겁니까?

▶이분이 혼자 동네에서 곤란한 일들을 많이 겪으셨던 것 같아요.
경로당에서 잘 지내시다가도 조금 일이 생길 때는 경로당 노인들이 뒤에 자식들이 있으니까 더 유세를 하신다고 표현하셨는데, 그럴 때 자격지심에 많이 속상하셨나 봐요. 그럴 때 저를 앞세워서 같이 다니시고 하면 주변에서 ‘딸이 생겼네. 좋겠어.’ 라고 칭찬의 말씀도 해 주시고 하니까 그런 거에 든든함을 느끼시지 않으셨나 싶어요.


▷어르신께 더 마음을 주시고 살뜰히 보살펴드리면서 늘 주님께 기도를 드리셨다고요. 어떤 기도를 주로 드렸습니까?

▶이분이 워낙 ‘센’ 분이다 보니까 가끔 저도 속으로 너무 지나치다 할 때가 있었어요. 그럴 때는 제가 하느님께 기도를 하죠. 제가 힘든 거 봉헌하면서 이 고비 넘기게 해 주시고, 어머니께서 제 진심을 알아주시기를 청하면 또 그분이 제 마음을 헤아려주시더라고요. 매번 기도를 통해서 참았죠.


▷어르신께서 홀로 사신 지도 꽤 오래 되셨고 일가친척과 연락이 끊긴 지도 오래 됐다고 수기에 쓰셨던데, 그런 어르신께서 이른바 센 할머니셨는데 언제 어떤 마음으로 천주교 신자가 되겠다고 결심하신 겁니까?

▶자신도 가끔 저한테 억지를 부린다는 걸 아세요. 그러면 제가 뒤돌아서서 성호를 긋고 삭히는 모습을 보셨나 봐요. ‘너 뭐하니? 손으로 뭘 긋고 있어.’ 막 이렇게 보시고 나중에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고 ‘저도 힘들 때는 이렇게 성호 그으면서 마음을 다스려요, 어머니.’ 그랬더니 ‘너도 나를 통해 많이 참고 있었구나.’ 하시더라고요. 그랬더니 조금씩 관심을 주셨고 천주교 신자가 되고 싶다고 하셨죠.


▷자매님의 묵주기도 하시는 모습도 많이 보셨나 봐요.

▶어머님이 밤에 혼자 계시니까 무서워서 잠을 못 주무신데요. 제가 가면 30분에서 1시간 정도 주무시거든요. 어머니 주무실 때 제가 옆에서 묵주기도 해드리면 그렇게 잠을 편히 잘 주무시더라고요. 좋아하셨죠.


▷어르신께서 폐암에 걸리셨고 또 갑자기 넘어지고 쓰러지셔서 여러 차례 병원 신세를 지는 동안에 어르신 돌봐드리랴, 보호자 역할도 하시랴 고생이 참 많으셨을 것 같은데 혹시라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던가요.

▶지금 생각해도 제가 신기해요. 이상하게 포기가 되지 않고요. 이분이 온전히 저를 믿고 저한테 의지를 하는데 내가 매정하게 다른 시설에 연계해서 보내드리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할 때 까지는 해 보고 가보자. 하느님이 알아서 다 해 주시겠지라고 믿고 가보게 된 것 같아요.


▷어르신과 함께 하고 또 보살펴 드리면서 가장 속상하고 슬프고 마음이 아팠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어머니께서 당신이 폐암이라는 걸 알고 임종 준비를 스스로 하셨어요. 제가 성당 다니는 걸 아니까 천주교 공원묘지를 원하셨거든요. 그런데 세례를 받으셔도 보호자 없이는 불가하다고 하시는 거예요. 제가 보증을 서겠다고 해도 안 되더라고요. 어머니께서는 살아도 사랑받지 못했는데 내가 죽어서도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없다고 너무 상심해 하셨죠. 서글피 우시는 모습 보면서 저도 마음이 안 좋았었어요.


▷남편 되시는 바오로 형제님이 차로 안성 미리내 성지에 할머니 모시고 가기도 하셨다는데, 김 할머니께서 미리내 성지에 묻어주면 좋겠다는 말씀도 하셨다면서요.

▶저희 남편하고는 저보다 더 화통하게 잘 맞았어요. 주거니 받거니 말씀도 잘하시고 그래서 두 분이 놀러갔다 오시고 하면 미리내 성지가 참 넓잖아요. ‘그 넓은 곳에 내가 있으면 가까우니까 너라도 날 찾아와주지 않겠니.’라고 하시면서 안성 가까운 곳에 묻히기를 원하셨죠.


▷어르신께서 꼭 천주교 입교를 하겠다고 약속을 하신 건데, 마리아라는 세례명을 어떻게 받으신 겁니까?

▶처음에는 성당에 가서 교리를 받고 세례 받기를 원하셨는데요. 병이 깊어지시고 코로나가 이번에 있었잖아요. 성당에서는 하지를 못했고요. 병실에서 저하고 남편이 증인이 되고 양아들이 계신 데서 대세를 받으셨어요.


▷비상세례를 받으셨군요.

▶어머니께서 내가 세례를 받으면 세례명을 짓고 싶은데, 자식 낳은 성녀가 누구냐고 물으시는 거예요. 저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성녀 중에 자식을 낳은 분이 없잖아요. 성모님밖에 안 계신다고 했더니 성모 마리아 그 이름을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이름을 택하시게 됐어요.


▷그런데 할머니와 정말 허망하게 마지막 이별을 하셨다고요.

▶지금도 그 생각하면 너무 믿어지지 않는데 식사도 잘하셨고요. 병은 깊으셨지만 조금은 호전기가 있어서 대화도 잘 나누시고 그날 시술도 간단한 거라고 하셨거든요. 폐에 물만 조금 빼면 된다고 하셔서 정말 아무런 준비 없이 가볍게 들어가셨는데 그 길이 마지막이 될 줄은 저도 몰랐죠.


▷마리아 어머니라고 부르시니까 이 마리아 어머니의 생애 첫 미사가 장례미사가 된 건데요. 장례미사 드리는 마음이 어떠셨습니까?

▶너무 아팠고요. 정말 진짜 이분이 하느님을 알고 신자가 되셨다면 아마 그 구역에서도 저 아닌 돌봐주시는 분이 더 많이 있었을 것 같아요. 다른 자매님들이 같이. 그런데 뒤늦게 돌아가신 후에야 세례를 받게 됐는데, 당신의 첫 미사가 장례미사가 되리라고는 어머니도 모르셨을 것 같아요.


▷그 누구도 몰랐지만 그래도 할머니를 만나서 양딸이라고 해야 되죠. 어머니로 모셨으니까. 양딸이 되고 딸과 어머니의 관계가 된 건데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계획이었다, 주님의 뜻이었다고 생각을 하셨습니까?

▶네, 어머니께서 그 많은 사람들, 주변에 오는 사람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물리치시고 외롭게 혼자 계셨는데 제가 어르신을 만나게 됐잖아요. 그분이 아프시고 병중에 있으시면서 세례를 받겠다고 말씀을 하실 때 그때 제가 이분이 준비는 돼 있었는데 혼자 갈 수 없으니까 하느님이 저를 보내셨구나. 모시고 가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주님께서 우리 김미경 베로니카 자매님을 통해서 김채홍 마리아 할머니를 하늘로 불러올리신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주님 품 안에 드셨을 마리아 어머니께 어떤 말씀을 꼭 전해드리고 싶으세요.

▶이제는 어머님이 혼자가 아니시죠. 저도 있고 무엇보다 하느님 아버지가 계시잖아요. 아마 하늘에서는 아프시지 않을 거고 남편이나 저나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으니까 늘 기도하실 거고 사랑한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8회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 신앙체험수기 공모전 특별상 수상자이신 김미경 베로니카님과 함께 이야기 나눴습니다.
오늘 인터뷰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cpbc 김원철 기자(wckim@cpbc.co.kr) | 입력 : 2021-03-05 18:21

■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pbc 가톨릭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윤재선입니다>'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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