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철 신부 "최양업 신부 선교 열정의 원천은 십자가상 그리스도"

[인터뷰] 서철 신부 "최양업 신부 선교 열정의 원천은 십자가상 그리스도"

최양업 신부 탄생 200주년 ‘길 위의 사제’ 최양업 신부 주제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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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3-02 19:17
▲ ‘길 위의 사제’ 최양업 신부의 삶과 영성에 관해 강의하는 서철 신부.(사진=유튜브 화면)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서철 신부 / 청주교구 오창본당 주임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길 위의 사제’ 최양업, 12년 간 9만리 전국 100여개 교우촌 찾아다녀

고국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환자 방문과 병자성사 집전

사나흘 산길 걸어 산골짜기 교우촌 찾아가

선교 열정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게서 나와

한 사람이라도 더, 한 번이라도 더 사람들에게 다가가려고 애써


[인터뷰 전문]

3월 1일은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탄생 200주년이었는데요. 교구마다 최양업 신부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고 시복시성을 기원하는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특히 청주교구는 ‘최양업 신부님 영성 배우기’라는 주제로 5주간에 걸쳐 온라인 특강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길 위의 사제’인 최양업 신부에 관해 특강을 진행한 청주교구 오창본당 주임 서철 바오로 신부 연결해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서철 신부님,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지난주에 유튜브로 진행된 특강 주제가 ‘길 위의 사제 최양업 토마스’였습니다. 어떤 내용이었는지요.

▶어제(2021년 3월 1일)는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청주교구는 최양업 신부님 영성배우기라는 특강을 마련했는데, 최양업 신부님의 삶과 영성을 배우고자 한 것입니다. 저는 ‘길 위의 사제 최양업 토마스’라는 주제로 최 신부님의 선교적 삶, 선교 열정, 선교방법론 등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길 위의 사제’라는 말에서도 최양업 신부님의 선교 열정이 느껴지는데, 최양업 신부님의 선교 열정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길 위의 사제, 땀의 순교자’라고 하는데 신부님께서 28살이 되던 1849년 4월 15일 중국 상해에서 사제서품을 받으셨습니다. 그해에 유학을 떠난 지 13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셨는데 고국으로 돌아오신 해부터 매년 7천리를 걸어서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 등지에 흩어져 있는 100여 개의 교우촌을 순방하셨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의 얼굴은 항상 그을려 있었고, 방문하셨던 자리는 완연히 표가 났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이 말은 전국의 교우촌을 자신의 앞마당처럼 순방하던 신부님의 선교 열정을 잘 설명해 준다고 합니다. 그렇게 12년 동안 9만 리를 걸어서 교우촌을 방문하고, 신자들을 만나고, 성사를 집전하던 신부님께서 마침내 과로로 인한 장티푸스로 쓰러지십니다. 그래서 신부님은 ‘길 위의 사제, 땀의 순교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최양업 신부님께서 고국으로 돌아와서 처음 하신 일이 아픈 사람을 찾아간 일이었다고 하는데요. 이건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세요.

▶아주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당시 최 신부님께서 주교님을 찾아뵈러 충청도로 내려가는 길에 주교님께 인사드리는 것보다도 먼저 중병을 앓고 계시던 다블뤼 신부님을 찾아가서 병자성사를 집전하십니다.

그래서 신부님이 고국으로 돌아와서 제일 처음 한 일은 가장 아픈 사람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그것은 굉장히 의미가 있다, 우리 교회가 누구에게 가장 먼저 눈길을 주어야 하는지 그것을 가장 잘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신부님께서 앞서 경기, 충청, 전라, 경상, 강원도라고 열거하셨듯이, 사목 관할지가 꽤 많이 흩어져 있잖아요. 그런데 당시는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서 산골이나 험준한 산지에 흩어져 살고 있던 때라서 최양업 신부님의 사목 여정이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사목을 하셨던 겁니까?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그 당시는 박해시기였기 때문에 신자들은 박해와 외교인들 눈을 피해서 자유로이 신앙생활을 하고자 험준한 산속으로 점점 들어가신 거죠. 그래서 신자들은 깎아지르듯이 높은 산들로 인해서 사람들이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깊은 산골짜기로 들어가서 조금씩 흩어져 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최 신부님이 편지 쓰신 걸 보면, 사흘이나 나흘씩 기를 쓰고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가야 신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또 외교인들 눈을 피해야 했는데 신부님이 이렇게 쓰십니다. 사목 순방 내내 항상 반(半)무장을 하고 다녀야 했다. 이 말은 외교인이나 포졸들이 천주교 신자라는 것을 알면 약탈하는 이리떼처럼 돌변해 덤벼들어 짐 보따리라든지 기타 등등을 빼앗고 주막에서 쫓아내기도 하고 두들겨 패기도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한 번은 신부님과 일행이 불량배들로부터 공격을 당해서 의복이 찢어지고 반나체가 돼서 눈이 아주 많이 온 날인데 발이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그런 날에 도망을 쳐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전국 방방곡곡 100여 개의 교우촌을 돌아다니고 성사를 집전하시고 신자들을 돌보셨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험준하고 깎아 지르는 산지를 사나흘씩 걸어서 힘겹게 교우촌에 도착하셨군요. 그럼 도착한 곳에서의 일정은 어땠을까요.

▶신부님은 외교인들 모르게 도착해야 하니까 밤에 교우촌으로 들어간 겁니다. 그리고 먼저 고해성사를 집전하는데 작은 교우촌은 2, 3명밖에 고해자가 없었지만 많은 경우는 40명 내지 50명이 있어도 모든 신자에게 하루 안에 고해성사를 다 집전해 줘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하룻밤을 묵으시고 그다음 날 저녁에 미사를 봉헌하고 신자들에게 성체를 배령해 주셨어요. 그사이에 신자들에게 교리나 성경말씀 이런 것을 가르치셨겠죠. 그렇게 공소 순방이 끝나면 또 한밤중에 일을 마치고 새벽녘 동 트기 전에 사람들이 모르게 떠나시는 여정을 3일에 한 번씩 반복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이동하는 게 일상의 연속이었다고 봐야 하겠네요.
결국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과로로 인한 장티푸스로 경북 문경 진안리 부근에서 선종하셨잖아요. 그래서 ‘땀의 순교자’라는 말이 더 와 닿는 것 같은데, 최양업 신부님의 이런 선교 열정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요.

▶저는 신부님의 서간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신부님이 만 15살에 유학길에 올라서 마카오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에 조선 신학생들을 위한 신학교가 있었는데, 이 신학교에서 7년 공부를 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난 예수님을 온 생애 동안 닮고자 노력했는데, 최 신부님이 만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라고 생각합니다. 그 점이 신학생이던 21살(1842년)에 스승 르그레즈와 신부님께 보낸 서한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 서한에 ‘신부님께서 저에게 청하라면 한 가지 제가 바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진짜 십자가 나무(예수 그리스도가 못 박힌 십자가)의 한 조각이나 성인 유해를 주셨으면’ 하는 글이 나옵니다. 바로 이 십자가가 신부님의 화두이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 십자가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죠.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내어주시고, 그 아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을 깊이 깨닫고 체험한 신부님은 그 사랑을 동포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민족의 구원사업에 동참하겠다는 선교 열정으로 발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최양업 신부님의 서한에서도 진짜 십자가의 한 조각, 성인들의 유해를 달라고 간절히 요청하셨던 거군요.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바로 최 신부님의 영성과 삶의 방향성을 고정한 것이겠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그리스도, 즉 인류구원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구세주이시고, 십자가의 발자취를 따르는 순교의 삶은 우리가 영원한 생명, 부활에 이르는 직선길이고,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서 그 고단한 사랑의 삶을 당신도 살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최양업 신부님이 내재적으로 그런 선교 열정을 지니셨다면 과연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선교방식은 어떠셨을까, 이 점도 궁금합니다.

▶신부님의 선교 열정이 구체적으로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단 한 번이라도 더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는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매년 7천리를 걸어서 산 속 깊이 숨어있는 교우촌을 방문해서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방문할 뿐만 아니라 그사이에 어려운 처지에 있는 단 한 사람이라도, 두세 사람이라도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즉시 찾아가려고 하십니다.

그 좋은 예가 1850년 도왕골에서 쓰신 편지에 안나라는 여 교우의 이야기로 나타납니다. 신부님이 어느 공소를 방문하셨을 때 50리쯤 떨어진 약 20km 떨어진 곳에 안나라는 여 교우가 살고 있는데, 이 교우는 시집가서 철저한 외교인 집에서 갇혀 지냈는데 신부님 만나기를 너무나 간절히 소망한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자 신부님이 이렇게 편지를 쓰십니다. ‘나는 허둥지둥 서둘러 황급히 안나가 사는 마을로 달려갔습니다.’ 허둥지둥, 서둘러, 황급히 이렇게 쓰십니다. 성사를 집전할 가능성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의탁하고 안나의 진심을 믿으며 떠났다고 하십시다. 그 마을에 도착해서 마치 길을 가다가 피곤한 것처럼 강가 나무 그늘에 쉬고 계시고, 같이 간 신자를 보내서 안나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알아보게 합니다.

마침 그 집안의 남자들이 다 밭에 나가고 안나 혼자 딸과 있는 겁니다. 그러자 심부름 간 신자가 안나로부터 고해성사를 위해 성찰한 쪽지를 받아서 신부님에게 찾아오죠. 신부님은 그것을 앉은 자리에서 읽고는 즉시 안나 집으로 달려가서 안나를 바깥 사랑방으로 불러내서 재빨리 사죄경을 바치고 성체를 영해준 다음 도망치다시피 빠져나오십니다. 이처럼 한 사람을 위해서 즉시 움직이시는 분이 바로 최양업 신부님이셨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최양업 신부님의 그런 선교 열정을 어떻게 본받고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최양업 신부님의 서간을 읽고 신부님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신부님은 길 위의 사제로서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 나서시는 분이셨다. 그런데 혼자 움직이시지 않고 신자들과 일심동체가 돼서 한 몸이 돼서 움직이십니다.

일심동체가 된 신부와 신자들은 먼저 눈과 귀를 크게 열어서 주변의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이 누가 있는지 찾아내야 하지 않을까. 그다음에 그 사람을 찾아내고 온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도와줄 방법을 찾아야겠죠. 기도하는 가운데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게 무엇인지 물질적인 도움이 필요한지 신앙적으로나 영적인 도움이 필요한지 알아내고, 마지막으로 손과 발이 돼서 그에게 꼭 맞는 방법으로 도와주고 그와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최양업 신부님처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가는 거. 소위 ‘맞춤형 서비스’처럼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그와 함께함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게 해 주고 신앙의 기쁨을 느끼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한 사람도 본당 공동체의 관심과 사랑에서 제외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거. 그것이 길 위의 사제 최양업 신부님의 선교 열정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청주교구 오창본당 주임 서철 바오로 신부님과 말씀 나눴습니다.
서철 신부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cpbc 김원철 기자(wckim@cpbc.co.kr) | 입력 : 2021-03-02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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