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병욱 "한국교회, 중국 천주교 역사 반드시 알아야"

[인터뷰] 최병욱 "한국교회, 중국 천주교 역사 반드시 알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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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3-01 18:52
▲ 후베이성 황강시에 있는 성모무원죄당(聖母無原罪堂,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성당) 앞에 중국 오성기가 펄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최병욱 교수 / 중국 근현대 천주교회사 연구자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근현대 중국인들 반(反)그리스도교 감정의 뿌리는?

마상백은 100세 정치가, 종교인, 교육가

애국회와 지하교회 향후 갈등 증폭 우려

한국 천주교는 중국 천주교사 반드시 알아야

국내 중국 교회사 연구자에 대한 지원 절실


[인터뷰 전문]

우리는 18세기 후반 중국교회를 통해 스스로 복음을 받아들였지만, 중국이 1949년 공산화된 이후 왕래와 친교가 거의 끊긴 채 살아왔죠.

보편교회와 중국교회가 자유롭게 만나 형제적 친교를 나눌 수 있는 날이 빨리 찾아오길 기대해봅니다. 한국교회도 이런 흐름에 발맞춰 중국교회에 더 관심을 갖고 새로운 만남을 준비해야 할 때인데요. 마침 중국 교회사를 연구하는 최병욱 교수가 「중국 근현대 천주교사 연구」라는 책을 냈습니다. 최 교수 연결해 이야기 나눠보죠.

▷최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강원대학교의 최병욱입니다.


▷중국 근현대사를 전공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특별히 ‘교회사’에 집중하신
이유가 있나요?

▶제가 처음부터 교회사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한 것은 아니었고요. 학부시절부터 관심을 가진 문제는 왜 19세기말 중국인들은 그리스도교와 신자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반감을 가지고 반대운동을 했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후에 대학원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지속적으로 연구했지만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주로 그리스도교 문제와 관련된 외교적 문제가 관심사였는데요. 그러다가 10여 년 전부터 반(反) 그리스도교 정서의 치유 문제 그리고 대화와 소통 이러한 주제로 천주교를 다시 바라보면서 직접적으로 교회사 영역으로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말씀드리자면 중국인들의 반(反)그리스도교에 대한 치유, 그리고 그러한 문제에 대한 대화와 소통이라는 주제를 찾게 된 것이죠.

그래서 관심을 가진 인물들이 콘스탄티니 주교, 뱅상 레브 신부, 마상백 이러한 분들이었고요. 그리고 대화와 소통이라는 키워드로 교황청과 중국의 외교관계 역사를 재조명하는 연구를 발표하기도 했었던 것입니다.


▷중국 교회도 격동의 세월을 보내지 않았습니까?
중국 교회의 근현대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상징적 사건들이 있을 텐데, 몇 가지만 간략히 언급해 주시겠어요?

▶길게 해야 될 문제이기도 한데요. 굵직한 사건들만 말씀드리자면 아편전쟁 이후에 사실 서양과 중국과의 힘의 상황이 역전되죠. 그래서 이때부터 등장한 그리스도교와 선교사는 아무래도 조약으로 서양 열강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그때 프랑스 대표가 파견돼서 조약을 체결했을 때 프랑스 대표 요청으로 황제가 중국인의 천주교 신앙금지를 해제하도록 요구를 했고요. 그래서 결국은 100년 이상 지속된 천주교 금지조치가 마침내 해제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명령이 실질적으로 중국 사회에서 잘 지켜지지 않았고요. 결국 제2차 아편전쟁의 결과인 1860년 베이징 조약에서 강제로 천주교 보호 조항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때 프랑스가 중국의 천주교 선교 보호권을 획득하게 됩니다. 이때 천주교 선교사가 중국 지역 사회에서 합법적으로 성당도 건립하고요. 선교의 자유도 얻게 됐는데, 사실 이것이 지역사회에서 그리스도교 신자와 비신자들 간의 갈등을 심화시켰습니다.

그래서 이걸 반기독교 운동, ‘교안(敎案)’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이러한 외교적 마찰을 풀고자 시도한 것이 중국과 교황청의 외교관계 수립시도라고 얘기할 수 있는데요. 이러한 교안 문제를 프랑스가 아닌 교황청과의 협상으로 해결하려고 했는데, 프랑스 정부가 간섭하게 됩니다. 사실 그래서 이로 인해 20세기 전반기까지 외교관계가 성립되지 못하는데요.

그 중간에 1922년에 교황 비오 11세가 중국에 교황 사절 콘스탄티니 주교를 파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분이 외교적 신분을 갖진 못했지만 공의회도 개최하고요, 그다음에 중국인 주교 축성을 주도하게 되죠. 그때 1926년에 6명의 중국인 주교가 교황청에서 첫 주교 서품을 받게 되는 일이 일어나게 되죠. 그때 이분을 중심으로 해서 중국 천주교 토착화 작업에 매진하게 되는데, 물론 교황청의 계획 하에서 진행되는 것이죠. 그러다가 1942년에 공식적으로 외교관계가 수립되었고요. 그리고 1946년에 교계 제도가 성립이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칭다오대목구장이었던 톈겅신 토마스 주교가 최초의 아시아인 추기경에 임명이 됐는데, 외교관계가 시작되면서 당시 국민당과 공산당이 내전을 벌이고 있었던 시기죠. 그러다가 중국 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설립하게 되면서 선교사들을 추방하게 되고, 그다음에 외교관계도 단절되고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렇게 이어져 오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


▷마테오리치를 비롯해 그동안 많은 서양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복음을 전했는데요.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중국 천주교 토착화와 관련해 예수회 소속의 중국인 마상백(馬相伯) 신부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더라고요. 마 신부님은 어떤 활동을 하신 분입니까?

▶마샹보라고도 얘기하는데요. 마상백은 신부였던 사람입니다. 100세를 사신 분인데 1840년 아편전쟁 때 태어나셨고요. 1939년 중일전쟁 시기에 사망하신 분인데 1870년에서 77년까지 신부 생활을 하셨습니다.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긴 하지만 중국 천주교회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종교인이자 교육가이기도 했고 정치가 활동도 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와 관련된 부분만 말씀드리자면 명나라 때부터 이어진 전통적인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고 전통 유가 교육도 받고, 상해의 예수회 학교에서 우리나라로 따지면 중학교 시절부터 서회공학(徐匯公學, College Saint Ignace)이라고 하는 학교에서 서양식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상해에서 신학교를 졸업했고, 1870년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중국 교회사 입장에서 보자면 예수회의 엄격한 훈련과 체계적인 학위 과정으로 성직자로 양성된 예는 사실 마상백이 최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회공학 교장과 신학교 교장까지 역임하기도 했지만 예수회와의 갈등으로 예수회를 탈퇴하게 됩니다. 당시 중국 신부에 대한 외국 선교사들의 차별이 심했거든요. 그리고 그러한 강압적 태도에 실망을 느끼게 된 것이죠.

그런데 특이하게 정치권으로 가서 양무운동(洋務運動)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양무운동이 실패하면서 상해에 거주하면서 중국 천주교 토착화에 힘을 쓰게 되는데요. 특히 학문 선교를 주장하셨는데 대학이라든가 교육사업을 통한 선교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면서 중국 천주교 대학인 보인대학 창립에도 도움을 주셨고요. 교육가로도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상해 천주교 진단학원 그리고 복단대학의 창립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현재 마상백의 교육 활동의 저변에 가톨릭 정신이 반영돼 있음을 밝히고 있는 연구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20세기 중국 선교 하면, 벨기에 출신 선교사 뱅상 레브(Vincent Lebbe) 신부도 빼놓을 수 없는데, 그 분의 업적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한마디로 말씀드리자면 19세기에 이어져 왔던 중국인의 반그리스도교 감정에 대한 치유적 활동을 하신 분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뱅상 레브 신부님은 프랑스 선교 보호권 아래에 있는 중국 천주교에 대해 과감 없이 비판도 하셨고요. 이에 대항하여 중국 천주교를 개선하고자 했었던 분입니다.

그래서 중국 교회의 자립화를 위해서 중국인 주교 임명을 교황청에 요구해서 중국인 주교 임명을 이끌어내었고요. 그다음에 중국 고등교육 발전을 위해서 대학 설립을 교황청에 요청해서 보인대학 설립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중국 천주교의 토착화를 위해서 중국인 남녀 수도회를 설립했고요. 이는 오늘날 대만 천주교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종교인으로서 활동했던 것뿐만 아니라 중일전쟁 시기에는 중국군에 스스로 자원해서 부상병들을 치료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 와서 종교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귀화를 했었거든요. 중국인으로서 중국사회와 끊임없이 소통하고자 했던 분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중국인들과 깊이 소통을 하고 존경을 받았던 선교사 신부가 아니었나 생각이 드네요. 현재 중국 정부 당국과 교회의 관계, 또 애국회와 지하교회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제가 애국회와 지하교회의 관계를 직접 연구해 보지는 못했지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현재 중국에서 종교의 자유는 공식적으로는 있지만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는데요.

사실 근대 이전이나 지금이나 중국은 종교를 국가통치의 관할 아래에 두고자 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정치공동체와 교회는 그 고유 영역에서 서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이라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이 중국에서 발휘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런 측면에서 바로 이 천주교 애국회라고 하는 애국이라는 말이 지닌 의미가 분명해진다고 볼 수 있겠죠. 그래서 애국회는 중국 당국의 관변 단체이거든요. 그래서 이를 통해서 중국 천주교를 토착화하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이에 반해 지하교회는 교황의 수위권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중국교회의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입장이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최근 몇 년 전부터 지속된 교황청과 중국의 외교관계 논의를 둘러싸고 애국회와 지하교회의 관계는 좀 극단적이라고 볼 수 있어 향후 갈등이 증폭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런 상황에서 교황청은 꾸준히 중국 정부 당국과 대화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는데요. 외교관계 정상화 논의, 지금 어느 단계까지 와 있는 건가요?

▶최근 교황청과 중국 정부의 관계 개선의 징후가 벌써 여러 번 보이고 있죠.
사실 오랫동안 양측의 외교관계 수립에 최대 걸림돌은 의심할 여지없이 주교의 선임 문제였습니다. 주교 임명권과 관련해서 교회법에서는 교황만이 주교를 임명하거나 추임한다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천주교 주교를 스스로 선출하여 서품하는 행위는 교회법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거든요.

이러한 측면에서 양측이 합의를 본 것이 중국 정부와 교황청이 제출하는 주교 후보자 명부에 대한 동의권 행사하고, 교황청의 결정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는 방식으로 최종적으로 교황이 주교를 임명하는 시스템 이러한 것들을 협의를 했는데요.

이를 바탕으로 최근이죠. 2018년 9월에 교황청과 중국 정부는 베이징에서 주교 임명에 관한 잠정 합의문에 서명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이 교황을 세계 천주교회 수장으로 인정하는 대신에 교황은 중국 정부가 교황의 승인을 받지 않고 임명한 주교 7명을 승인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 합의문이 최근에 연장이 되었죠. 그런데 이 교황청과 중국 외교관계 수립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특히 홍콩이나 타이완 쪽에서도 목소리가 높긴 한데요. 현재로서는 사실 중국과 교황청 모두 서로 간의 큰 것을 위해서 작은 것을 희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요.

중국 입장에서는 교황청과 수교를 통해서 대만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만의 독립 노선에 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황청 입장에서는 교황의 중국 주교 서품 권한을 회복하고 세계 가톨릭의 합일성을 이루고 방대한 중국 천주교 신자를 획득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겠죠.


▷앞으로 바티칸과 중국의 외교관계 정상화, 그리고 활발한 교류를 기대하면서 한국 천주교회는 무엇을 준비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저는 중국 천주교사를 연구하는 연구자 입장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한국 천주교 역사를 알고자 한다면 중국 천주교 역사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교회사를 연구하는 소수의 학자 그리고 신부님 이외에 일반 천주교 신자들에게도 중국 천주교를 이해하도록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지원돼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요.

또한 한국 교회사 연구에 대한 지원이 현재 어려운 상황으로 알고 있는데요. 중국 교회사 연구자에 대한 지원, 그리고 중국 쪽 교회사 연구자 상당히 많이 있거든요. 그들과의 민간 연구 교류 지원 이것을 바탕으로 한 중국 천주교회와의 교류가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요. 현재 제가 아시아 천주교사 연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데요. 중국 교회사를 연구하고자 하는 연구자 모임입니다.

그래서 2014년부터 한국 순교복자 성직수도회에서 출발해서 2016년에 새남터로 옮겼다가 현재는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매달 연구 발표회를 갖고 있습니다. 현재 코로나19로 잠시 중단된 상태이긴 한데요. 이 연구회가 한국 천주교회와 중국 천주교회 만남에 중요한 밀알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요. 이번에 미흡하기는 하지만 제 책의 출간이 한국에서 중국 천주교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중국 근현대 천주교사 연구」를 쓴 최병욱 교수였습니다. 교수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cpbc 김원철 기자(wckim@cpbc.co.kr) | 입력 : 2021-03-01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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