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씨네]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평화씨네]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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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2-19 04:00


[앵커] 가톨릭의 시선으로 영화를 감상하는 평화씨네 시간입니다.

오늘도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 서빈 미카엘라님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설 연휴가 지나고 첫 번째 시간입니다. 어떤 영화를 가져오셨나요?

▶ 저는 왠지 설날이 지나야 진짜 새해 느낌이 나는데요. 새해엔 뭔가 밝고 희망찬 이야기를 나누고 싶잖아요?

그래서 오늘은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 가져와 봤습니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함께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 제목만 들으면,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 같은데요. 주인공이 해고를 당하는 얘기인가요?

▶ 정확히 해고는 아니지만, 비슷합니다. 영화는 주인공 '정은'이가 7년 동안 일했던 회사를 떠나 하청업체로 파견을 가는 장면으로 시작이 됩니다.. 권고사직을 받은 정은이가 그걸 거부하자 회사는 하청업체로 파견을 가면 1년 후에 원청으로 복귀시켜 주겠다는 제안을 한 거예요.


▷ 그런 경우는 보통 나가라는 말 아닌가요?

▶ 그렇죠.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1년을 버텨내겠다는 각오로 하청업체로 간 겁니다. 그 상황을 한 번 보실까요?

▶(VCR-1) 주인공의 상황: 하청업체에서의 소장과의 첫 대면

▷ 역시 반기지 않는군요.

▶ 현대 사회는 내가 하는 일로 내가 정의되는 사회잖아요. 그런 사회에서 해고가 된다는 것은 생존과 정체성, 두 가지가 다 위협을 받는다는 뜻인 거죠. 주인공은 밀려난 느낌이라 기분이 안 좋은 것 같고, 하청업체 입장에서도 왜 여길 왔나 싶은 거죠. 옷차림에서도 구분이 되지만, 정은인 사무직 노동자고, 하청업체는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인 것 같죠?


▷ 네, 그렇게 보이네요. 과연 저기에 정은이가 일할 자리가 있을까, 의문스러운데요. 저런 분위기에서 1년을 버텨내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 맞습니다. 처음에는 책상도 없었어요. 그냥 작업장이거든요. 정은인 임시로 마련한 책상을 작업장에 놓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있었다면, 영화의 제목이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가 되지 않았을 거예요. 주인공이 자신을 어떻게 해고하지 않기로 선택하는지, 다음 장면을 같이 보겠습니다.

(VCR-2) "누군 태어날 때부터 말하면서 태어난 사람 있습니까?”

▶ 참 통쾌하지 않나요?

▷ 은근히 정은이를 무시하는 소장에게 일침을 가하네요.

▶ 만약 정은이가 나는 사무직이라는 생각으로 일손이 부족한 현장 일을 나몰라라 했다면, 이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 인생도 그런 것 같아요.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기회는 오지 않죠. 영화를 만든 이태겸 감독은 세상이 나를 밀어낸다고 해도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다면 나를 지킬 수 있고, 더 나아가 '나를 해고하지 않는' 개인들이 서로를 지키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 영화를 연출했다고 해요.


▷ 희망이 느껴지는데요? 이 영화를 보니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 <미안해요, 리키> 같은 영화가 생각납니다.

▶ 아마, 영화를 보신 분들은 비슷한 느낌을 받으실 거예요. 다르덴 형제의 <내일을 위한 시간>,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 <미안해요, 리키>. 모두 다 구조적 모순에서 오는 노동자 문제라든가, 사회복지제도의 맹점을 다루고 있는 리얼리즘 영화들인데요, 오늘 소개하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도 그 계보를 잇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들에 우리가 공감하는 이유는 거대한 사회가 품고 있는 모순에 집중하기보다 그 안에 있는 왜소한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기 때문인데요,

평범한 개인이 구조적 모순에 영향을 받게 되는 과정을 현실적으로 차근차근 보여주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마치 내가 겪은 상황인 것처럼 느끼게 합니다.

[영화 속 명장면]

▷ 오늘 가져오신 명장면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 제가 가져온 장면은 평가원들이 와서 현장실습을 평가하는 날의 장면입니다. 고소공포증이 엄습한 정은은 송전탑에 올라갈 차례가 되어 약을 먹고, 송전탑 아래에 서는 데요... 어떤 상황이 펼쳐지는지 함께 보시겠습니다.

(VCR-3)

▷ 이 장면을 명장면으로 꼽으신 이유가 있을까요?

▶ 처음에 정은이 이곳에 왔을 때는 노동자들끼리 서로 갈등관계도 있었어요. 그들의 입장에선, 사무직만 했던 네가 뭘 할 수 있겠냐, 여자인 네가 뭘 하겠다는 거냐, 파견을 했으면 그만 두라는 건데, 왜 여기까지 내려왔냐 등등 수많은 비웃음과 멸시가 있었을 거고, 정은의 입장에선 난 본청에서 파견된 사람이다, 난 난 너네랑은 다르다. 난 1년만 버티면 된다. 뭐 이런 우월감과 반드시 돌아가겠다는 의지가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장면은 이들이 갖고 있는 그런 생각들과 거리를 한순간에 전복시킵니다. 이 순간, 그들은 갈등 관계를 벗어나 그냥 동료가 되는 거죠.

▷ "밑에 보지 마시고 위에만 보고 올라가세요. 계단 올라간다고 생각하시고 그냥 한 발짝씩만 올라가시면 돼요. 할 수 있을 만큼만 올라가세요.”

정은의 입장에서는 동료의 이 말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을 텐데요.

▶ 네, 서로 반목하던 이들이 동료로서, 인간으로서, 이렇게 말해주는 이 장면이 전 참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이 대사를 우리 인생에 적용해도 좋을 것 같은 대사라고 생각했어요. 송전탑을 인생으로 바꿔본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뒤를 보지 마시고 앞만 보고 가세요.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하시고, 한 발짝씩만 가면 돼요. 할 수 있는 만큼만 가시면 돼요."


▷ 송전탑이 우리 인생의 메타포 같은 게 되겠군요.

▶ 실제로 감독도 송전탑과 그 탑을 오르는 일이 우리 삶과 닮았다고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영화 포스터를 자세히 보면, 제목 앞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이 조그맣게 붙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에는 많은 말들을 내포할 수 있겠군요.

▶ 그렇죠. 회사에선 나를 해고했지만,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세상은 나를 밀어내지만, 나는 나를 밀어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미워해도, 나는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 다양한 상황에서 다르게 대체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독은 어려서부터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누굴까를 궁금해했다고 해요. 그리고 나를 가장 미워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이 영화를 통해 나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고, 그 사랑을 볼트와 너트로 삼아서 세상이라는 철탑을 오를 에너지를 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 이 영화의 한 줄 요약, 무어라고 하실지 궁금한데요?

▶ 눈치채신 것 같은데요? 오늘은 두 마디가 되겠네요. 방금 우리가 나눈 말.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로 두 마디 요약을 할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사랑하기로 선택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의 두 마디 요약이었습니다.


▷ 노동자들의 부당한 해고 문제를 통해 나에 대한 사랑의 태도를 돌아볼 수 있는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함께 만나봤습니다.

오늘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cpbc 이힘 기자(lensman@cpbc.co.kr) | 입력 : 2021-02-1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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