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례 나라슈퍼 사건, 청년들 무죄 최초로 밝힌 박영희 젬마

삼례 나라슈퍼 사건, 청년들 무죄 최초로 밝힌 박영희 젬마

Home > NEWS > 국제
입력 : 2020-11-05 05:00 수정 : 2020-11-05 14:15


[앵커] 20년 전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에서 일어난 강도 살인사건을 아시나요?

당시 마을에 살던 세 청년이 누명을 쓰고 강도치사 혐의로 복역했습니다.

그리고 17년이 지난 2016년에야 세 청년은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여러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가 된 이 사건은 흔히들 유명 변호사의 노력으로 재심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가장 먼저 세 청년의 무죄를 입증하고자 노력했던 건 교정사목 봉사자로 활동하던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전은지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1999년 2월 새벽, 전북의 한 슈퍼에 3인조 강도가 침입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강도들은 집 안의 할머니와 부부를 위협하고 현금과 패물을 들고 달아났습니다.

사건 이후 같은 동네에 살던 스무 살 안팎의 세 청년 임명선, 최대열, 강인구씨는 강도치사 혐의로 체포됩니다.

그해 진범이 있다는 소식이 경찰에 접수되면서 사건은 새 국면을 맞는 듯했으나 부실수사로 인해 결국 세 청년은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세 청년의 무죄를 처음 입증하고자 나섰던 건 다름 아닌 전주교도소에서 종교위원으로 활동하던 박영희 젬마 씨였습니다.

10년 넘게 교정사목 봉사자로 활동하던 박 씨는 교도소에서 우연히 쪽지를 받게 됩니다.

<박영희 젬마 / 前 전주교도소 종교위원>
“1년 전에 어떤 편지도 받았는데, 쪽지. 메모 편지를 살짝 미사 끝나고 난 뒤에 나한테 주고 간 노인이 있었는데. 그분이 상담을 의뢰한 그 아이들을 일 년 후에 만나게 됐어요. 영세 상담 중에. 그 아이가 주범으로 몰린 임명선이에요.”

한참이 지나서야 세례상담을 위해 만나게 된 임명선 씨.

박 씨는 임 씨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며 세례상담을 하다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박영희 젬마 / 前 전주교도소 종교위원>
“(피해자) 할머니 기도를 네가 하늘나라 갈 때까지 잊지 말고 기도를 수시로 해줘야 된다. 그 할머니는 지금 잘 가셨겠지만 그걸 잊지 말아야 된다고 하는데 ‘제가 얼굴도 안 봤고, 그 집을 가본 일도 없고, 어떻게 기도를 하느냐’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래 가지고 완전히 멍해 완전히 얼이 빠졌어.”

경찰의 강압적이고 부실한 수사로 인한 허위자백이었음을 알게 된 박씨.

<박영희 젬마 / 前 전주교도소 종교위원>
“얼굴도 못 본 사람을 네가 어떻게 죽이냐. 그랬더니 ‘그러니까 안 죽였죠. 나는 모르죠’ 그럼 왜 그랬냐. 하니까 두들겨 패니까. 그래가지고 내가 너무 놀래가지고 집에 와서 검찰청 전화부터 돌렸죠.”

임명선씨는 이후에도 일관되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박씨는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자기 일처럼 백방으로 뛰었습니다.

<백선경 헬레나 / 삼례 나라슈퍼 사건 재심 변호인>
“동사무소를 찾아가서 사정을 해서, 피해자 유족의 이사 간 집까지 알아내고. 또 그 피해자 유족한테 연락해서, 한 번에 피해자 유족이 마음을 안 여니까 기다렸다가 몇 개월 만에 또 연락해보고…”

탄원서를 쓰고, 세 청년 가운데 한 명인 최대열 씨의 재심을 처음 신청한 것도 박 씨였습니다.

당시 전주교구 성당에서는 세 청년의 무죄를 기원하는 미사가 봉헌되기도 했습니다.

교정사목 봉사자들은 물론, 사제와 신자들도 기도로 힘을 보탰습니다.

그 사이 임씨는 요한 세례자라는 세례명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됐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재수사가 진전되지 않아 만기 복역 후 출소했고, 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나고 한참이 지난 2016년이 돼서야 재심이 열렸습니다.

재심에는 박씨의 딸도 변호인으로 참석했습니다.

<백선경 헬레나 / 삼례 나라슈퍼 사건 재심 변호인>
“엄마가 그 아이들이 꼭 풀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몇 년간 노력을 하셨기 때문에 그 일이 정말 해결이 된다는 건 너무나 기적 같은 일이었거든요.”

그리고 2016년 10월, 이들은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집까지 내어주며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던 박 씨.

박 씨는 힘들었던 모든 순간을 떠올리면서도 하느님의 이끄심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박영희 젬마 / 前 전주교도소 종교위원>
“다 자식이에요. 저는 교도소 일한 거에 대해서는 정말 후회 없어요. 이걸 안 해볼까도 생각해봤어요. 너무 힘들어서. 안 하려고 하니까. 심장이, 가만히 있는 심장이 북을 쳐요. 그래서 하느님이 안 된다고 하는가 보다.”

박씨는 재소자들이 정성으로 보낸 편지들을 빠짐없이 보관하고 있습니다.

<박영희 젬마 / 前 전주교도소 종교위원>
“이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 다 기억나요. 기억 안 나는 사람들은 정말 제가 얼굴을 기억을 못 해서 잊었거나. 나하고 무슨. 이게 있으면 다 기억이 나요. 참 행복했어요.”

재심 이후 안타깝게도 박 씨는 삼례 나라슈퍼 사건의 피해 청년들과 연락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박 씨는 그들을 위해 늘 기도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교정사목 봉사자가 만들어낸 이 기적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선행처럼 여겨집니다.

CPBC 전은지입니다.













cpbc 전은지 기자(eunz@cpbc.co.kr) | 입력 : 2020-11-05 05:00 수정 : 2020-11-05 14:15

■ 인터뷰 및 기사를 인용보도할 때는 출처 'cpbc 가톨릭평화방송'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가톨릭평화방송 · 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