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의 꽃 ③] 김성우 성인 “죽어도 살아도 나는 천주교인”

[순교의 꽃 ③] 김성우 성인 “죽어도 살아도 나는 천주교인”

Home > NEWS > 가톨릭
입력 : 2020-09-16 04:00 수정 : 2020-09-16 19:44

[앵커] 103위 순교 성인의 삶과 영성을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전교활동에 매진했던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에 대해 전해드립니다.

전은지 기자입니다.

[기자]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은 1795년 경기도 광주 구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성인은 글 공부를 알려주던 선생님을 통해 천주교에 입교했고, 동생들도 차례로 입교시켰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던 성인은 마을 전체를 교우촌으로 만들었습니다.

다블뤼 주교가 남긴 기록엔 “구산마을이 아주 신앙에 열심한 마을이 됐다”는 내용이 전해집니다.

이후 김성우 성인은 신앙에 대한 갈증을 채우고자 한양으로 이주했습니다.

한양에서는 집에 공소를 마련하고, 교우들과 함께 기도했습니다.

모방 신부도 자신의 집에 모셨습니다.

성인은 구산 공소의 초대 회장으로도 임명돼, 구산과 한양을 오가며 왕성한 전교활동을 펼쳤습니다.

신자들에게 교리문답을 가르치고, 교회력을 전했으며, 임종을 앞둔 이들에게는 대세를 주기도 했습니다.

당시 교우들 중엔 성인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1839년 피바람이 불던 기해박해를 피해갈 순 없었습니다.

‘사학의 괴수’로 지목된 김성우 성인은 체포돼 모진 고문과 신문을 받았습니다.

김성우 성인의 답변은 한결같았습니다.


<성 김성우 안토니오>
“나는 당신들의 질문과 회유에 대하여 ‘나는 천주교인이오!’라는 한마디 밖에는 할 말이 없소.”

김성우 성인의 옥중생활은 무려 15개월이나 지속됐습니다.

성인과 형제들이 겪은 옥중생활은 후손을 통해서도 전해집니다.

<김학렬 신부 / 성 김성우 안토니오 방계 5대손>
“감옥에서 생활하시는 그 모습, 당시에는 가마니를 뜯어서 먹을 정도로 아주 열악한 환경이었는데. 식사하시는 모습 그걸 다 보고, 그러고는 뒤돌아서 내려올 때 눈물을 흘리고 흘려서 빈 바가지에 눈물이 가득 고일 정도로 처참한 환경을 목격하며 내려왔다 하는 그런 이야기를 저희 할아버지한테 저는 직접 들었습니다.”

‘사생간천주교인’.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을 것이라는 김성우 성인의 말은 성인의 굳건한 신앙을 보여줍니다.

구산성지엔 김성우 성인의 묘소와 성인이 이끌었던 교우촌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CPBC 전은지입니다.


























cpbc 전은지 기자(eunz@cpbc.co.kr) | 입력 : 2020-09-16 04:00 수정 : 2020-09-16 19:44

■ 인터뷰 및 기사를 인용보도할 때는 출처 'cpbc 가톨릭평화방송'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가톨릭평화방송 · 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