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경규 명예교수 “미완의 동양평화론, 반드시 이뤄야 할 신앙적 염원"

[인터뷰] 이경규 명예교수 “미완의 동양평화론, 반드시 이뤄야 할 신앙적 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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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업데이트 : 2020-03-26 18:38
▲ 이경규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의 모습 <사진제공= 이경규 명예교수>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이경규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미완의 동양평화 언젠가는 반드시 이뤄야 할 신앙적 염원

분쟁 끝내고 협력하는 동양과 세계평화 주창

안중근 의사는 민족의 영웅인 동시에 평신도 신앙인의 모법을 보인 분

<동양평화론>은 동아시아 정치, 경제공동체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

안 의사를 생각하면 모두가 나라지키고 안정시키는 ‘국민되기’에 힘쓸 때


[인터뷰 전문]

오늘은 안중근 토마스 의사가 순국한 지 11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올해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추모식을 비롯한 각종 행사들이 축소되거나 취소돼 아쉬움을 남기고 있는데요.

그렇다고 안중근 의사의 행적과 구국정신, 신앙인으로서의 모습까지 잊어서는 안 되겠죠.

안중근 연구 전문가인 이경규 대구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 연결해 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기의 의미와 또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인지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이경규 교수님, 나와 계십니까,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십니까?


▷ 오늘로 안중근의사 순국 110주기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국내외 관련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축소됐다고 하던데 아쉬움이 많이 남으시겠어요.

▶그렇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중국 하얼빈역사 안에 있는 안중근의사기념관도 문을 닫았다고 하는군요. 서울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도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오늘 오전 10시 유족과 임원진이 모여 간단하게 묵념과 추모사만 낭독한다고 하던데,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증손자 안도용씨도 참석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저희 대구대교구에서는 그동안 성모당에서 추모식을 거행해 왔는데, 이번에는 4월 27일(월요일) 11시에 성모당에서 교구 평신도위원회와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거행할 예정이라고 하는군요.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에서도 매년 안의사 동상과 추모비가 있는 도서관 앞에서 추모식을 거행했는데, 올해는 개학도 연기되고 추모식 행사를 할 수 없다고 하네요. 향후 코로나 사태의 추이를 지켜 봐야 되겠지요?


▷추모식을 비롯한 관련행사들은 비록 취소되고 축소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기의 의미가 퇴색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안중근 의사를 기억하고 추모해야 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세요?

▶안의사의 나라사랑과 동양평화의 추구라고 봅니다. 그래서 나라사랑인 대한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32살의 짧은 생애를 불꽃같이 사신 분이 안의사가 아닌가 합니다. 교육운동, 학회활동, 식산운동, 국채보상운동, 의병운동, 하얼빈의거와 옥중투쟁에 이르기까지 최후의 유언에 “대한독립의 소리가 들려오면 천국에서도 만세를 부를 것이다”라고 하셨고, 옥중에서 하얼빈의거를 ‘東洋平和義戰’이라고 하였고, 사형의 연기를 부탁하면서까지 <동양평화론>집필을 마무리 하려고 하였으며, 교수형 형장에서도 ‘동양평화만세’ 삼창을 요구하셨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옥중에서 200여 점의 유묵을 남기셨는데 그중 “人無遠慮難成大業(즉 사람이 멀리 내다보지 못하면 대업을 이룰 수 없다)”의 ‘대업’도 동양평화라고 봅니다.


▷안중근 의사 하면 이른바 단지동맹이 떠오르는데요. 손가락 마디를 잘라내면서까지 구국을 결심한 안중근 의사에게서 이 나라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안 의사가 의병운동에 실패하고 심기일전을 위해 동지 열한 명과 더불어 왼손 약지를 단지하여 대한독립을 천명할 정도로 안 의사에게 국권회복을 통한 대한의 독립은 가장 절실한 과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안 의사는 서우학회·서북학회 활동을 통해서도 국민국가와 국민주권에 바탕을 둔 근대 국민국가를 잘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온 국민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공동체인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책임과 의무가 반드시 따른다고 하였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체포 후 사형이 집행되기 전 5개월 동안 옥중에서 동북아 평화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정리한 <동양평화론>이 비록 미완의 원고이긴 하지만 동북아평화에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하던데요. 안중근 의사가 보는 동양, 동북아 평화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안 의사는 제국주의 시대 동양삼국의 단합을 강조하고, 한·중·일 동양 삼국이 독립의 바탕 위에 서양 열강 특히 러시아의 침략을 막아내자는 것이 기본 구상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일본은 1868년 명치유신이래 가장 먼저 근대화를 추진하여 동양 삼국 중 가장 부강하여, 일본을 중심으로 한국과 중국의 상공업발전을 도모하고, 평화군을 창설하고 또한 삼국이 공동으로 출자하여 은행을 설립하고 공용화폐를 발행하며, 여순에 동양평화회의 본부를 두고 각지에 지부를 두며 한·중·일 삼국인 중에서 회원을 모집하고, 회의 운영을 위한 재정은 회원 1인당 1원씩 모금하도록 했는데, 이는 국채보상운동의 금연을 통한 의연을 모태로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동양평화회’라고 하는 경제공동체라고 하던데요.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지 110년이 지난 지금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요?

▶지금으로써는 너무나 불가능해 보이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안의사가 주장한 <동양평화론>이 동아시아 정치공동체, 경제공동체의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분단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모색해 볼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정부차원의 대화와 협력도 중요하지만 ‘동양평화회의’와 같은 민간차원의 소통과 유대가 이어진다면 삼국의 갈등은 조금씩 해결의 물고를 틀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안중근 의사의 염원인 대한 독립과 동양평화, 가톨릭 신앙이 바탕이 됐다고 하던데요. 가톨릭 신앙인으로서의 안중근 토마스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안의사는 평신도신앙의 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빌렘신부님을 도와 하느님 사랑을 널리 전파하였으며, 그로 인해 황해도 일대에 교세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또한 이웃사랑을 실천한 사례들이 옥중에서 탈고한 자서전인 <안응칠역사>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의사의 행적은 신앙과 결부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앞에서 언급한 12명이 참여한 단지동맹은 12사도와도 연관이 있어 보이며, 하얼빈의거의 성공여부도 하늘에 달려 있고, 의거 후 일본총영사관에서 이토오 히로부미의 절명소식을 듣고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고 전합니다. 어머니와 부인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도 장남 분도가 신부가 되기를 희망하였으며, 유묵“天堂之福永遠之樂(즉 천당의 복이 영원한 즐거움이다)”라는 것도 가톨릭 신앙인의 염원을 담은 것이고, 안의사의 모든 행적은 사랑과 평화 자체시신 하느님을 증거하는 삶이었습니다.

안의사는 옥중에서 200여 점의 유묵을 남겼다고 전해집니다. 이것은 안의사의 인품에 감화되어 여순감옥의 간수, 교화승, 검찰관 등이 다투어 지필묵을 넣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사형집행 직전에 써준 “爲國獻身軍人本分(즉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다)”라는 유묵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탁하고, 죽음 앞에도 흔들리지 않는 의연한 성품을 엿볼 수 있습니다. 헌병 간수였던 지바 도시찌는 이 유묵을 고이 간직하여 고향인 미야기현으로 돌아갔으며, 그곳 대림사(大林寺)에 이 내용의 석비를 세우고 안의사를 추모하였습니다. 1981년 대림사에 세워진 현창비문에 지바가 안의사에게 존경의 마음을 품게 된 이유를 ‘청렴한 인격의 소유자’, ‘평화를 향한 고매한 이념’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안의사를 심문했던 미조부치 검찰관도 안의사를 ‘동양의 의사’라고 지칭하였습니다. 이처럼 안의사의 인품도 가톨릭신앙이 바탕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 분의 뜻을 따르며 살았던 신앙인으로서의 안중근 의사에게 이토 히로부미 살해라는 거사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안의사는 평소 부친 안태훈 진사와 대화에서도 동양평화를 해치는 이토오 히로부미를 제거해야 한다고 하였으며,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하얼빈의거를 ‘동양평화의전’이라고도 하였고, 안의사가 지적한 이토오 히로부미의 죄상 15개조 가운데 열네번 째가 ‘동양평화를 깨뜨린 죄’라고 하였습니다. 또 본인은 옥중 심문 때에 개인 자격으로 이 일을 행한 것이 아니고, 대한의군 참모중장 자격으로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서 행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평화를 해치는 인물이 이토오 히로부미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기를 맞아 남은 과제들에 대한 얘기도 좀 해봤으면 하는데요. 무엇보다 안 의사의 유해 발굴 문제입니다. 안 의사의 유해 발굴 작업, 현재 어디까지 와 있습니까?

▶국가보훈처는 유해발굴을 위해 중국정부에 협조를 요청했으며, 문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도 유해 공동발굴에 대해 협의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안중근의사 유해발굴추진단’이 중심이 되어 유해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전에 2005년에서 2007년 사이에 남북공동조사단이 결성되어 유해찾기를 위한 노력이 있었고, 여순감옥 감방소장의 딸이 가지고 있었던 사진을 근거로 2008년 한 차례 발굴이 있었지만 성과는 없었습니다.

서울 효창공원 삼의사(즉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묘역에는 안의사의 가묘가 있습니다. 안의사가 최후로 남긴 유언에서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다오”라고 하셨고, 안의사의 외손녀인 황은실 여사께서 대구가톨릭대학교에 초청받아 학생들과 간담회를 하는 중에 안의사는 우리 모두의 할아버지라고 하셨는데, 아직까지도 유해를 모셔오지 못해 후손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작업 외에 후손에게 남겨진 과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안의사가 우리에게 남긴 과제의 하나는 동양평화의 실현인데, 동아시아 공동체 결성은 한반도 분단체제의 평화적 극복을 위한 전제 조건이며, ‘동양평화론’을 동아시아 공동체 수립의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분쟁의 씨를 협력의 모델로 활용할 수 있으며, 작금 동양 삼국에 요구되는 핵심 내용은 역사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신뢰), 안보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안정), 경제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공영)입니다. 이와 같은 전제 조건들이 충족될 때 동아시아는 함께 평화와 번영을 구가할 수 있다고 봅니다.

또 국력이란 단합된 국민의 힘에서 나오고, 국가적인 재난도 국민의 일치된 힘만 있으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나라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안의사 순국 110주년을 맞이하여 작금의 코로나19 사태도 국채보상운동에 동참하여 책임과 나눔을 적극적으로 실천하신 안의사를 기억하며, 우리 모두가 나라를 지키고 안정시키는 ‘국민되기’에 힘쓸 때 이 환난은 반드시 극복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알겠습니다. 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기 의미와 남은 과제에 관해서 이경규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의 말씀 들었습니다.

이 교수님, 오늘 나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cpbc 이주엽 기자(piuslee@cpbc.co.kr) | 최종업데이트 : 2020-03-26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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