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호견 이사장 "화성 8차, 억울한 옥살이 버티게 한 힘은 신앙"

[인터뷰] 나호견 이사장 "화성 8차, 억울한 옥살이 버티게 한 힘은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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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업데이트 : 2019-11-29 19:13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나호견 뷰티플라이프 교화복지회 이사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사)교화복지회 뷰티플라이프, 재소자와 출소자 자립 도와

2006년 ‘빈첸시오’로 영세, 하느님 자녀로 새로 태어나

억울한 누명 쓰고도 남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 지녀

불편한 몸 불구하고 미사 거르지 않는 열심한 신앙인

출소자, 재소자에게 돌 던지려 하지 말고 격려해주기를


[인터뷰 전문]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이춘재가 특정되면서 또 다른 피해자들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범인으로 지목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을 감옥에서 살았던 윤 아무개씨도 그 중의 한 명인데요.

30년 만에 판결을 다시 바로잡아달라며 재심을 청구했다지만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그의 삶은 누가, 어떻게 대신해 줄 수가 있을까요?

교도소 교정위원으로 윤 씨를 만나 출소 이후 꾸준히 곁에서 힘이 되어준 분이 계십니다.

사단법인 교화복지회 뷰티플라이프 나호견 엘리사벳 이사장 연결해서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나호견 이사장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먼저 뷰티플라이프가 어떤 단체인지 소개를 해주시겠습니까?

▶교도소에서 생활하시고 출소하시는 분들을 출소자라고 해요. 그분들이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데 돌아갈 수 없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나와서 다시 재범하지 않고 잘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하는 분들을 가족처럼 숙식제공하고 직업도 알선해 주고 또한 저금도 해 주고 2년 동안 매달 100만 원 정도씩 저금을 해서 2년 후에 전세방 하나 얻어서 나갈 수 있는 자립의 집입니다.


▷8차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으로 지목돼서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윤 씨를 교도소 교정위원으로 처음 만나셨다고 들었는데요. 윤 씨와의 첫 만남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십니까?

▶제가 교도관님이나 재소자들의 얘기를 들으면 굉장히 생활이 어려워서 가족도 오지 않고 다리가 많이 좋지 않아서 장애인시고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나온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윤** 빈첸시오 형제가 나와서 참회를 하는데 굉장히 활발하고 아주 씩씩하게 자기의사도 잘 표현하고 옆에 있는 재소자들과도 농담도 하면서 제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그분이 거기에서 씩씩하게 잘 살고 계시더라고요.


▷그때는 윤 빈첸시오 형제님이 복역 중에 교정위원으로 만나신 거네요. 그렇게 윤 씨를 만날 때마다 어떤 말씀을 가장 많이 해주셨습니까?

▶교도소 안에서는 거기에 있는 분들에게 10명이 같이 모여 있을 때 매달 성경공부하고 그렇게 했고 이분이 출소해서 나오시고 나서는 제가 3년간 같이 살고 했기 때문에 그때마다 제가 빈첸시오 형제가 다리가 많이 아파요. 통증이 많고 그래서 다리가 어떤가 많이 물어봤고 가족 중에 아프신 분이 계셔서 건강이 어떠신가 이런 얘기를 많이 해 주고.


▷윤 빈첸시오 형제님이 다리가 많이 안 좋으시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선천적인 병 때문에 그렇습니까? 아니면 경찰에서 수사를 받다가 고문 때문에 그렇게 된 겁니까?

▶선천적으로 소아마비 주사를 맞지 못해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많이 다리가 좋지 않아요.


▷그렇군요. 하지도 않은 살인을 했다고 누명을 쓰고, 그래서 20년을 감옥에서 보낸 사람들의 억울함, 서러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겠습니다만 그 20년이라는 시간을 빈첸시오 형제님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신가요?

▶이분이 20년을 사시고 2009년 8월 14일 저희 집에 오게 됐어요. 그래서 제가 이분하고 첫 대면을 했는데 제 손을 잡고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저를 살인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아무도 믿지 않지만 원장님이라도 저를 믿어주시면 저는 소원이 없겠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저는 빈첸시오 형제에게 어떻게 20년을 참고 살았느냐고 물었더니 ‘제가 자백을 하지 않으면 죽겠더라고요. 그래서 살기 위해서 자백을 했습니다.’라고 얘기했어요.

빈첸시오는 그 긴 세월을 어떻게 살았는가. 자기는 죽이지 않았지만 믿어주지 않지만 자기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긍지로 아무리 세상 누가 나를 살인자라고 하더라도 나는 하지 않았으니까 떳떳하다. 그래서 나는 내 길을 걸어간다고 하고 흔들림 없이 자기 자신을 이끌어 나갔고 특히 2006년도에 영세를 했어요. 2009년도에 출소를 했고 3년이죠. 세례를 받고 나서 그때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 하느님께서 자기를 믿어주신다는 그 믿음이 더 큰 용기를 준 것 같습니다.


▷윤 씨의 세례명이 빈첸시오잖아요. 사형수나 무기징역수 같은 장기수들에게 과연 종교, 특히 세례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궁금해지는데 이사장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사형수나 무기수는 희망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죠. 이 세상에서는 자기가 이미 죽었지만 하느님은 자기를 다시 살리셔서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해주셨기 때문에 이제 자기는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세계로 진입을 하기 때문에 인간적인 면에서는 안 되는 삶이 하느님의 신앙의 삶으로 들어가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기 때문에 세례는 이분들에게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수 있고 보이지 않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이분들의 삶을 이끌어간다고 저는 생각을 해서 정말 신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빈첸시오 형제님이 하느님을 만나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된 것은 빈첸시오 형제님만의 자기 의지가 굳건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럼요.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우리 집에서 저하고 3년을 했고 또 우리 집 바로 옆에 이사를 가서 10년을 함께하고 있는데 보통 주일에도 근무를 해요. 그러면 토요일 저녁에 미사를 가요.


▷꼭 빠지지 않고 주일 저녁미사도 봉헌을 하고.

▶특별한 경우 외에는 꼭 미사를 가고 다리를 절뚝거리고 불편한 몸을 가지고도 미사에 참여하는 걸 보고 제가 감동했어요. 정말 신앙 생활 열심히 했습니다.


▷무기징역수에서 모범수로 20년형으로 감형을 받아서 출소를 했다고는 하지만 20대의 청년이 마흔이 넘어서야 세상에 나온 거 아니겠습니까. 강산이 두 번은 더 변했을 시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재심청구 기자회견을 보니까 빈첸시오 형제님이 누군가에 대한 원망을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어요. 미움과 원망은 없고 감사만 가득한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 잘 이해가 안 되고 납득이 안 되는데, 어떻게 보셨습니까?

▶정말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하실 겁니다. 그런데 빈첸시오 형제는 자기가 그러한 누명을 쓰고 살게 된 것이 누구의 탓이라고 얘기하기 이전에 나에게 주어진 것이다. 내 인생에서 나에게 주어진 운명인데 어떻게 하나. 받아들여야지. 그래서 그거를 그냥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리고 나는 아무리 내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관없으니까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열심히 살면 되고 그리고 그 열심히 사는 도중에 나를 도와주고 나에게 용기를 준 사람들이 많았어요. 교도소에도 교도관들이 이번에도 많이 인터뷰를 했지만 모범수였다. 그리고 직장에서도 성실한 직장생활을 했기 때문에 동료들도 빈첸시오를 믿어주고 상당히 인간관계가 좋았습니다.

자기 자신이 남을 원망하고 한탄하고 이런 식으로 살지 않고 긍정적으로 고통도 받아들이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표시를 내지 않고 기쁘게 사니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를 더욱더 사랑하게 되죠. 그래서 저는 그것이 너무나 우리 빈첸시오 형제가 오늘의 이 시간이 올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하느님만은 빈첸시오 형제의 마음을 다 알고 계시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빈첸시오 형제님이 지난 13일 30년 만에 재심을 청구하면서 무죄를 받고 명예를 찾는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다는 말을 했던데, 재심청구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십니까?

▶빈첸시오 형제는 재심은 자기 자신은 혼자서 30년은 결백하다고 하고 살았잖아요.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나 혼자가 아니라 세상이 결백하다고 인정해 줄 수 있는 시간이 왔잖아요. 그것은 기적 아닙니까?

그래서 빈첸시오 형제는 재심은 내가 30년을 묵묵히 나 혼자서 외치고 지키고 하느님께 기도했던 그것들이 이제 이루어지는 순간이기 때문에 윤** 빈첸시오의 30년의 보상이고 그다음에 윤** 형제님이 이런 말을 했어요. 재심을 청구하고 와서, ‘원장님, 이제 저는 죽어도 부모님 얼굴을 볼 수 있게 돼서 정말로 행복해요.’ 왜, ‘저는 만약에 누명을 벗지 못하고 죽으면 내가 부모님 얼굴을 어떻게 볼까 그게 제일 걱정이었어요. 사형수, 살인자가 어떻게 부모님 얼굴을 보겠어요. 그랬는데 정말로 내가 누명을 벗게 되면 부모님을 떳떳이 만나보게 돼서 자기 인생에서 최고의 행복이라고 그렇게 눈물을 흘렸어요.


▷나호견 엘리사벳 이사장님이 재소자, 출소자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오고 계신데 우리 사회가 재소자나 출소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렇게 바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실 것 같은데, 어떤가요?

▶이춘재의 자백이 이런 부분에 많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춘재가 자백한 것이 누구 때문인지 윤** 빈첸시오의 30년의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성실이 하느님이 이춘재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래서 윤성여는 그에게 고맙다고 감사하다는 그 말을 듣고 하느님의 기적이, 마음의 움직임과 함께 미안하다, 법정에 서서 진실을 밝혀주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모든 국민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춘재가 사람도 아니고 저주 받을 사람이라고 국민들은 알고 있지만 한 사람의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에 조그마한 바늘구멍이라도 이춘재도 사람이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인간적인 면을 드러냈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 많은 출소자, 범죄자가 있지만 1% 외에 99%는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 남편, 자녀이고 우리처럼 아주 작은 일로 아주 큰 어려움 속에서, 유혹 속에서 한 번씩 넘어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돌을 던져주지 마십시오. 그들은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일어서려고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좀 믿어주십시오. 여러분들의 가족처럼 생각하시고 믿어주시고 후원해 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다시 이 사회에 떳떳한 시민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열어주시고 격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단법인 교화복지회 뷰티플라이프 나호견 엘리사벳 이사장과 말씀 나눴습니다. 나호견 이사장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cpbc 윤재선 기자(leoyun@cpbc.co.kr) | 최종업데이트 : 2019-11-29 19:13

■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pbc 가톨릭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윤재선입니다>'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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