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종구 한글 운동가 "천주교 빠른 전파는 한글 덕분…새롭게 인식해야"

[인터뷰] 김종구 한글 운동가 "천주교 빠른 전파는 한글 덕분…새롭게 인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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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업데이트 : 2019-10-09 17:30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김종구 한글운동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천주교 도입 불과 3년 만인 1787년쯤 한글 교리 서적 번역 필사

천주교 선교 특성은 ‘문서 선교의 성공사례’

정약종 성인이 쓴 최초 한글 교리책 `주교 요지`

`장 주교 윤시제우서`, 한글 보급의 역사적 사건

한글과 천주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천주교, 한글에 대한 인식 새롭게 했으면


[인터뷰 전문]

오늘은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한 지 573돌이 되는 한글날이죠.

우리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고 널리 알리기 위한 국경일인데요.

교회 역사가들은 엄격한 신분제도가 있던 조선 시대에 천주교가 빠르게 전파될 수 있었던 비결은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한글’ 때문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한글 역시 ‘천주교’ 덕분에 널리 전파될 수 있었다는 건데요.

신앙의 꽃을 피운 ‘한글과 천주교의 만남’을 연구하고 알리는 일에 애쓰고 계신 한글운동가 김종구 선생님 스튜디오에 모시고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김종구 베르나르도입니다.


▷제가 한글운동가라고 소개를 했는데요.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 퇴임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한글 사랑`에 푹 빠지게 되셨어요?

▶제가 서울 온수초등학교 교장으로 있을 때 교직원 50명과 학생 천 오백 명이 힘을 합쳐 <한글 축제> 공연과 전시를 일주일 동안 열었는데요. 그해 한글학회에서 <한글 지킴이>로 선정되어 한글 사랑에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천주교 신자이시기도 한데요. <한글과 천주교의 만남>을 주제로 한 강의도 하고 계시다면서요?

▶서울대교구 노인대학 지금은 시니어 아카데미로 명칭을 바꾸어 부르고 있지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글과 천주교의 만남”을 강의하는데 천주교 신자들이 잘 알지 못했던 내용이라서 감동하며 경청할 때 참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는 사제나 수도자가 없었어도 준비된 한글로 “맞춤식 교리”를 가르쳐 <문서 선교로 성공한 나라>라는 것을 강조해서 말씀드립니다. 한글이 있어서 “믿음의 꽃과 순교의 꽃”을 피우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지요.


▷ 한글과 천주교의 첫 만남,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1784년 한국최초 세례자, 이승훈 베드로 성인은 중국에서 세례를 받고 와서 권일신, 권철신 형제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었는데 초기에는 `가성직제도`가 있어서 신부가 아닌 평신자가 세례를 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초기 중국 한자 교리서를 가지고 와서 양반들은 한자를 알고 있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한자 모르는 평민들을 위해 곧바로 한글 교리서로 번역해 하느님의 진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불과 2~3년 안에 한글로 된 번역 교리책으로 믿음을 키우게 되었지요.


▷ 한글과 천주교의 만남이 하느님의 섭리였다, 하느님의 뜻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요?

▶하느님의 능력은 “천년도 하루같이, 하루도 천년으로 보시는 지혜”를 지니신 분입니다. 세종대왕께서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하셨는데 주님께서 미리 한글을 창제하도록 예정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창제 후 최만리 같은 학자들이 임금께 상소를 올려 백성들이 한글사용을 반대해 한글 보급에는 실패했지요.

그런데 338년이 지난 후 1784년 천주교가 조선에 들어오는데 신부나 수도자가 없었어도 한문 교리책를 한글로 번역해 백성들이 하느님을 알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을 받아 드리는 도구인 한글이 미리 마련된 것은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국 천주교는 박해 시대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로 성장한 교회인데요. 초기 박해시대, 한글이 선교를 하는 데 어떻게 이용됐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이나 미뤄 짐작할 만한 전승들이 있으면 말씀해주시지요.

▶팔십 평생을 교회사를 연구하신 호남교회사 연구소장을 역임하신 김진소 신부께서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한국 천주교 선교 특성은 ‘문서 선교의 성공사례’라 하시며 선교사가 우리나라에 와서 직접 선교하지 않았어도 이렇게 자국민의 노력에 의해 교회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한글 덕분이에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글 교리책으로 하느님의 진리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세계 어느 나라를 찾아보아도 이런 예는 없다고 강조합니다.


▷박해시기 당시 천주교인들에게 한글이 더욱 빠르게 전파될 수 있었던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요?

▶천주교가 한글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아주 중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장 주교 윤시제우서`라는 것인데 제4대 조선교구장 베르뇌 시메온 주교가 선포한 내용인데요. 베르뇌 주교를 우리나라 이름을 지어 ‘장경일 주교’라 불렀습니다. 장 주교가 각 공소 회장들에게 보내 편지인데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한글을 배우라고 공식적으로 선포합니다.” 한글을 배워서 교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시오. 그리고 윤시란 말은 이 편지를 돌려가며 읽어 보라는 뜻입니다.

국가가 나서서 한글을 배우라는 명령을 내린 일이 없는데 오직 천주교 교구장이 교서를 내린 것은 왕명과 같은 권위와 위력이 있는 것입니다.세종대왕이 한글 창제하고 최초로 한글을 배우라는 명령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언제부터 한글로 된 교회서적들이 출판되기 시작한 건가요?

▶실제로 1784년 천주교가 도입된 이후 불과 3년 만인 1787년쯤부터 한글로 된 교리 서적이 발견되기 시작되었는데 한문 교리 책을 한글로 번역해 붓으로 필사해서 전달되고 서로 돌려가며 보거나 바꾸어 보기도 했지요. 그런데 천주교 박해시대 임에도 불구하고 신자 수가 늘어나게 되자 인쇄된 교리 책이 나와 쉽게 교리 책을 구할 수 있게 되었지요.


▷ 엄혹한 박해시대에 한글로 쓰여지고 한글로 읽혀지는 교리서나 관련 책자가 어떻게 전파됐는지도 궁금합니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을 읽고 하느님을 믿게 되었으니까요. 첫 번째 소개하는 책은 초기에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복자가 지은 최초 한글 교리책 “주교요지”는 하느님에 대한 핵심 내용인 천지 창조, 강생구속, 삼위일체. 권성 징악에 대한 내용을 읽고 하느님을 믿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책은 역관 최창현 요한 복자는 “성경직해광익”이란 책을 번역해서 지금의 미사 책을 보듯 각 공소 회장들이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는 것과 같이 <성경, 해설, 강론, 행동지향과 기도> 순으로 역은 책입니다. 이렇게 선조들은 신부가 없었어도 주일을 잘 이끌어 갔지요.


▷조선에 온 파란 눈의 선교사들은 한글의 위대함을 익히 알았던 걸까요? 한글 사전을 만들기 위해서도 노력했다면서요?

▶선교사들도 한글의 위대함 즉 독창적이고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운 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들도 한글을 배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지만 우리 말은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동사의 변화와 말의 의미가 다양하게 해석되기 때문에 글보다 말을 배우기가 힘들은 거죠.

처음 선교사가 다음에 오는 선교사들이 한국을 빠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말의 뜻을 알려면 먼저 한불사전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전 작업을 서두른 것이지요. 이 한불사전과 자전은 해방 후 한글 사전을 만드는데 기초가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천주교는 한글로 쓰여진 책 이외에도 한글로 된 노래로도 전파됐다고 하던데요, 어떤 노래인가요?

▶한글은 젊은이들에게는 하룻밤이면 배울 수 있는 한글이지만 나이든 어른들은 문맹으로 사는 분들도 많았지요, 그럼 글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느님 진리를 가르쳤을까요? 조상들의 지혜는 대단했습니다.
우리 고유 가사(노래)에 하느님에 대한 진리를 담아서 외우기만 하면 되는 천주가사의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집안에는 어른 있고 나라에는 임금 있네/ 내몸에는 영혼 있고 하늘에는 천주 있네/삼강오륜 지켜가자 천주 공경 으뜸일세/이내몸은 죽어져도 영혼 남아 무궁하리. 이렇게 문맹자라도 외우기만 하면 하느님 진리를 깨닫게 가사로 믿음을 전파하였지요. 그 종류가 무려 23종류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 한국 천주교회와 신자들이 한글을 어떻게 대하고 발전시켜 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계십니까?

▶저 역시 “한글과 천주교의 만남”이란 것을 몰랐을 때는 한글의 역할이 천주교에 큰 영향을 주었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나 한글과 천주교의 만남에서 정말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고 이제 천주교 신자들은 물론 한글 역사를 다시 써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1784~1874 100년 동안 오직 천주교만이 한글을 널리 보급하는 큰일을 해냈다는 것을 널리 알려야 할 때입니다. 한국 천주교는 “문서 선교”로 성공한 나라, “맞춤식 교리” 즉 “한글 천주교 교리책”과 “한글 천주가사”로 “선교의 꽃”이 “순교의 꽃”으로 승화 되어 103위 성인과 124위 복자가 태어났지요. 앞으로도 더 많은 증빙자료가 찾아지면 더 많은 성인이나 복자가 태어나리라 확신합니다.

“역사는 한 치의 거짓을 더하거나 빼지 않고 사실 그대로 남아야 합니다.” 한글날을 맞이하여 천주교는 한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한글에 대한 고마움도 다시 생각하면서 한국천주교회는 한글 기념미사와 강론을 준비해서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한글 운동가` 김종구 베르나르도 선생님과 말씀 나눴습니다.

오늘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cpbc 윤재선 기자(leoyun@cpbc.co.kr) | 최종업데이트 : 2019-10-09 17:30

■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pbc 가톨릭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윤재선입니다>'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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