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은숙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 기르며 생기 뿜뿜, 친권 행사했으면"

[인터뷰] 사은숙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 기르며 생기 뿜뿜, 친권 행사했으면"

Home > NEWS > 사회
입력 : 2019-05-08 11:16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 진행 : 김혜영 앵커
○ 출연 : 사은숙 위탁모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게 자식 농사라고 하죠.

내 아이를 키우는 것도 버거운 시대인데요.

가슴으로 낳은 딸을 둘이나 키운 부모가 있습니다.

오늘 어버이날을 맞아서요.

위탁부모로 활동 중인 분을 만나볼까 합니다.



▷ 사은숙님 안녕하세요.

▶ 네, 안녕하세요.



▷ 17년째 위탁부모로 활동 중이시라고 들었습니다. 한 명도 아니고 두 아이의 부모님이 되어 주셨는데요. 어떻게 이런 결심을 하시게 됐나요?

▶ 제가 17년 전에 직장 생활을 하다가 은퇴를 하고, 일을 하다가 쉬게 되니까 돈을 벌어야 되나 뭘 해야 되나 고민을 하던 중에 성경을 읽으면서 해답을 찾으려고 하다 보니까 성경 속에 이런 말씀이 있더라고요. "이와 같이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지극히 작은 자가 누구일까 생각 중에 보니까, 매일 그때 당시 뉴스에 IMF 후유증으로 가정이 해체되고 아이들이 시설에 보내진다. 이런 뉴스가 상당히 많이 나왔거든요. 그래서 그럼 저 아이들을 위해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 하고 생각 중에 입양도 생각하고 하면서 찾아 보았어요. 그렇게 찾다 보니까 대안가정운동본부라고 있더라고요. 입양을 원치 않으면서 아이하고는 연락을 하고 싶고 그런 가정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 나도 그러면 이 일에 동참해야 되겠구나’ 하고 알아보니까 서울 경기 지역에는 한국수양부모협회라고 있어서, 그런 일들을 그러니까 가정이 어려운데 대신 돌봐주고 가정이 회복되면 아이들을 돌려 보내는 일들을 하는 분들이 벌써 있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얼른 마음이 변하기 전에 해야지 하고서는 거기에 연락을 해서 보니까 또 가정위탁 지원제도가 생겼더라고요. 그때 당시 2003년도에. 그래서 저도 얼른 신청을 해서 그 때 9개월된 아이를 제가 기르기 시작을 했습니다.



▷ 그리고 5년 있다가 한 아이를 더 키우기 시작하신 거죠?

▶ 네. 그러고 나서 잠시 후에 또다시 남자아이를 하나 또 맡게 되었어요. 그 가정학대로 인해서 떠돌던 아이를 제가 돌보다가, 그 아이는 3년 반 정도 키우고 나서 아빠에게 돌아갔고요. 그 이후에 다시 또 아이가 돌아가고 나니까 하나가 남겨지게 되잖아요. 그래서 그 때 당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아이가 되었어요, 9개월 된 아기는. 그래서 이 아이 말고 또다시 내가 오래도록 키울 수 있는 아이가 누가 있을까 하다가, 집 주변에 있는 보육원에 가서 봉사를 하면서 보니까 거기에 아이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이 하나를 데려온 게 그 때 당시 초등학교 2학년 아이. 그래서 둘을 계속 키웠습니다.



▷ 남자아이는 키웠다가 가정으로 돌려보내신 거고, 계속 키우신 게 두 딸 아이신 거군요. 그런데 아까도 잠깐 얘기해주셨지만, 위탁과 입양이 다르잖아요. 입양을 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 위탁모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 그 때 당시에 알아보니까 입양은 부모와의 단절이지만, 제 느낌에 이 아이들이 계속 부모와 연락을 하면서 내가 돌보다가 돌아간다면 이 아이가 가지고 있는 상처도 훨씬 적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그 한 가정이 힘들 때 내가 힘이 되어 준다면 더 없이 이것도 귀한 일이겠구나 생각을 해서 가정위탁을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 어쨌든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이는 일이 쉬운 게 아닌데요. 남편이나 자녀들의 반대는 없으셨습니까?

▶ 그 때 당시 저는 남편이랑 저랑 우리 아이 둘이 있었어요. 딸이랑 아들이랑. 그리고 저희한테 시어머니가 계셨어요. 결혼하고 계속 시어머니랑 살고 있었는데, 저희 남편은 적극 좋다고 같이 하자고 했고, 아이들도 엄마가 예쁜 아기 기른다는데 나도 찬성이다. 둘 다 찬성을 했는데. 단지 어머님이 좀 걱정을 많이 하셨죠.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 이러면서 그런 말씀을 하시곤 했는데, 막상 아이가 오고 보니까 갓난아이가 왔잖아요. 막 기어다니는 아이가 왔는데, 어머님이 훨씬 더 좋아하시더라고요.



▷ 아기가 너무 예쁘니까.

▶ 네. 그냥 얘가 잘 잤는지, 뭘 잘 먹었는지. 오히려 저보다 더 관심을 가지시고. 또 집안에 아기가 하나 딱 오니까 온 가정에 정말 생기가 뿜뿜뿜뿜(웃음). 그렇게 웃을 일이 없었는데 아기 보면서 그냥 매일 웃고 아기를 중심으로 해서 이야기 나누고 하다 보니까, 갑자기 집이 그냥 웃음꽃이 활짝 피고 매일 웃고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했어요.



▷ 가슴으로 받아들이신 두 딸이 17년 동안 훌쩍 커버렸습니다. 딸들 자랑 좀 해주세요.

▶ 자랑이요? 하하. 먼저 큰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와서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금년에 얘가 위탁이 종료가 됐어요. 고등학교 졸업을 하면서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얘는 회사에 취업을 했거든요. 그런데 고등학교 졸업하고도 일할 수 있는 곳이 괜찮은 곳이 있어서 취업을 해서 돈을 벌고 자기 나름대로 자립 준비를 하면서 매달 저축 기본적으로 120만 원씩 저축을 하게 하고요. 또 나머지 돈으로 자기가 여행도 하고, 엄마 아빠 소소한 선물도 사주고, 조카들 용돈도 주고, 지금 남아 있는 우리 고등학교 1학년 딸 고등학교 입학한다고 가방 사주지, 신발 사주지, 가끔 용돈 주지. 언니 노릇을 아주 톡톡히 하고 있어요. 얼마나 가슴이 뿌듯하고 행복한지. 제가 대학 진학을 안 한다고 해서 상당히 염려를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자기는 엄마 나는 너무 잘했다고. 내가 대학을 다니면 4년 동안 돈도 최소한 4000만 원씩 들 것이고, 내가 4년 동안 엄마 일을 해서 저축을 하면 나는 5000만 원 정도 모으고 이자하고 이래서 보면 1억은 차이 날 거야. 이러더라고요.



▷ 그런 것까지 다 계산해서.

▶ 네. 제가 그런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어디서 생각을 해냈는지 그런 생각을 하고, 저한테 얘기를 해 주고 그래서 제가 깜짝 놀랐는데. 그렇게 또 열심히 저축도 하고 하다 보니까 자기도 뿌듯한 것 같아요. 아주 자존감이 그냥 높고. 회사에서도 지난달에는 우수사원으로 표창도 받았더라고요.



▷ 회사 생활도 잘하고 있네요.

▶ 네. 회사에 제가 전화를 했더니 거기 같이 일하는 선배 언니가 전화를 받았어요. 그러더니 얼마나 칭찬을 하는지 제가 그냥 가슴이 다 떨리더라고요. 너무 행복해요.



▷ 둘째 따님 자랑도 해주세요.

▶ 우리 둘째 딸 9개월에 와서 저희들을 아주 행복하게 해주었는데, 사춘기가 좀 많이 힘들었어요. 사춘기가 되면서 화장도 많이 하지, 요즘은 고등학교 가니까 염색도 하더라고요. 그리고 또 자기 발언도 세지고 그래서 이제는 자기 의사 표현을 분명하게 하고 그러면서 학교 생활 열심히 잘하고 있어요.



▷ 늦둥이는 뭘 해도 다 예쁘다고 합니다만, 혹시 자녀들이 샘을 내거나 질투하지는 않던가요?

▶ 다행히 저희 딸이 22살인가 그 때 오고 우리 아들이 20살 때 왔는데. 저희 딸은 대학 다닐 때고, 우리 아들은 군대 가 있을 때여서 얼마나 아이를 예뻐하고. 맨날 데리고 학교에도 가고. 직장 다니면서 직장에도 데리고 가고 했어요.



▷ 오히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니까 더 챙겨주게 되는 거군요.

▶ 네. 얼마나 예뻐했는지. 저희는 정말, 저희 가정은 아이들을 위탁함으로 인해서 신세계를 맛보았습니다.



▷ 그런데 아이 키우시다 보면 혼낼 일도 생기잖아요. 혹시 상처가 있는 아이들이 또다시 마음을 다칠까 봐 망설여지지는 않으셨는지 어떻게 하셨어요?

▶ 그런 생각을 하면 제가 많이 위축이 되는데, 그냥 저는 이 아이들이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얘네들을 확실하게 자립시키려면 야단칠 때도 분명하게 야단을 쳐야 되겠다 해서, 저는 그냥 잘못했을 때는 따끔하게 야단을 치고 혼내고 했어요. 우리 아이들이랑 마찬가지로 키웠어요, 똑같이.



▷ 오늘 어버이날입니다. 혹시 딸들한테서 선물이나 카네이션 받으셨습니까?

▶ 문자 받았고요. 직장 생활하고 또 학교 가고 이러다 보니까 그렇긴 한데. 저희 같은 경우에는 어머님도 계시고 또 친정엄마도 있고 이래서 저희 가족들은 어린이날 기념해서 가족여행을 갔어요. 가족 몽땅 다 해서 가족여행을 다녀왔고, 저는 오늘은 우리 엄마랑 어머니를 뵙고 와야 되죠.



▷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친부모랑 스스럼 없이 만나게 하셨다고 들었거든요. 아이들이 친부모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 제가 그랬죠.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아이를 낳으면 다 너무 금쪽같이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정말 힘들고 어려운 사정이 있을 때 아이들을 키울 수 없는 사정도 생긴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너희들을 우리가 만날 수 있게 해줘서 너무 감사하고 또 봐라. 요즘 낙태라는 이야기도 많이 나오지만, 낙태를 해서 너희들을 우리가 만날 수 없었다면 얼마나 불행했겠니. 그렇지만 정말 용기 있게 너희들을 낳아주고 또 이렇게 잘 자랄 수 있게 나한테 보내줘서 나는 더없이 감사하다. 그 낳았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너희 엄마들은 굉장히 큰 일을 한 거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줬어요.



▷ 위탁부모로 아이들을 키우시면서 홍보대사로도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혹시 좀 제도적으로 보완돼야 할 점, 지원이 필요한 점도 있다고 보십니까?

▶ 네, 있죠. 지금 현재 위탁부모는 시설이나 그룹홈 그런 관리자들처럼 저희들은 아이들을 잘 돌보라는 것만 있고 그 아이들의 생활에 필요한 친권 행사를 전혀 할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친권이 필요한 아이들이 긴급하게 수술을 할 때요. 보호자 사인을 못하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또 아이들을 데리고 해외여행이라도 가려면 여권을 발급을 해야 하는데, 여권 발급도 친권이 없어서 굉장히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지만 발급을 받을 수 있고.



▷ 많이 불편하셨겠어요.

▶ 그렇죠. 아주 불편한 게 아주 많이 불편하고. 제일 중요한 게 핸드폰 개설을 할 수가 없어요. 저희 아이들이 핸드폰을 바꿀 때마다 눈물 질질 짜고. 또 엄마랑 연락이 안 되는 사람들은 말도 못 하게 고생을 합니다. 아이들이야말로 요즘 핸드폰은 거의 존재감이거든요. 그런데 그 핸드폰이 고장나든가, 어떻게 돼서 교환을 하든가 새로 개설을 하든가 이럴 때는 정말 위탁부모 힘들다. 이런 호소들을 굉장히 많이 하세요.



▷ 그런 점들은 제도 보완이 꼭 돼야 될 것 같습니다.

▶ 그리고 여권 발급을 할 때 저희 아이 같은 경우는 작은 아이는 엄마가 있고 큰아이는 부모님을 잘 몰라요. 찾을 수가 없는 상황인데. 둘을 데리고 해외를 나가는데 여권을 발급을 하는데, 작은 아이는 엄마를 통해서 복수 여권을 발급 받았어요. 그런데 큰아이는 단체 여권을 발급 받다 보니까 얘가 굉장히 가슴이 아파요. 여권 색깔이 다르고. 막 유효기간 이런 게 다르고 하다 보니까, 아이가 굉장히 상심을 많이 했어요.



▷ 그런 부분은 정말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겠네요.

▶ 그렇죠. 아이들을 위해서 그런 배려는 좀 해줘야 되겠다 싶더라고요.



▷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어버이날 맞아서 가슴으로 낳은 두 딸 키우신 위탁부모 사은숙 님 만나봤습니다. 이른 아침 인터뷰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cpbc 김혜영 (justina81@cpbc.co.kr) | 입력 : 2019-05-08 11:16

■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pbc 가톨릭평화방송 <오창익의 뉴스공감>'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pbc 가톨릭평화방송'에 있습니다.
ⓒ 가톨릭평화방송 · 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