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침번] 마지막까지 조선학교 챙긴 김복동 할머니…조선학교 지원 움직임들

[불침번] 마지막까지 조선학교 챙긴 김복동 할머니…조선학교 지원 움직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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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업데이트 : 2019-02-11 09:08


▷ 맹현균 기자의 불침번, 오늘도 재일 조선학교 이야기를 계속 해보겠습니다. 맹 기자, 어서 오세요.

▶ 안녕하십니까.



▷ 일본 정부가 지원을 끊은 조선학교. 그런데 국내에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분들이 있다면서요?

▶ 네. 아직은 미약하지만, 조선학교를 향한 관심과 지원의 손길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지난달 세상을 떠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김복동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조선학교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습니다. 오히려 늦게 지원해서 미안하다고 했을 정도입니다. 할머니의 말을 직접 들어보시죠.

<故 김복동 할머니 / 인권운동가·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일본에 있는 학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늦게나마 장학금을 주게 돼서 마음이 착잡합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좌절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학생이 되도록. 여러분은 잘 자라서 앞으로 우리나라가 훌륭한 나라가 되도록 여러분이 힘을 모아주면 고맙겠습니다.”



▷ 할머니의 마지막 인터뷰도 조선학교 얘기였다면서요?

▶ 그렇습니다. 지난해 12월 2일 김복동 할머니는 조선신보와 인터뷰를 했는데요. 인터뷰가 지난달 17일 보도됐으니, 생전 마지막 인터뷰가 됐습니다.

할머니는 왜 조선학교 아이들을 돕느냐는 질문에 “나도 조선 사람이니까 그냥 둘 수 없다”고 했습니다. 분단의 시각이 아니라, 한민족으로 학생들을 바라본 겁니다.

할머니는 조선학교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주기 위해 오사카 조선학교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는데요. 당시 발언 들어보시죠.

<故 김복동 할머니 / 인권운동가·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언젠가 해가 뜰 날이 오겠지요. 우리 조선학교도 여러분의 힘으로 그까짓 거 정부에서 안 봐주면 어때. 하루라도 빨리 통일이 될 것 같아. 남북통일만 돼서 평화의 길만 핀다면 일본서 설움 받을 필요가 뭐가 있노.”

김 할머니는 우리 민족이 지금도 일본에서 설움을 받고 있다는 걸 듣고 너무 한심스러워서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습니다.



▷ 남은 재산도 전부 조선학교에 기부하셨네요.

▶ 네. 김복동 할머니는 2014년 전 재산 5천만 원을 조선학교 학생을 위해 써 달라며 기부했습니다.

지난해 9월에는 태풍 ‘제비’로 피해를 본 조선학교를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할머니는 병상에 누워서도 조선학교 학생들을 챙겼습니다. 들어보시죠.

<故 김복동 할머니 / 인권운동가·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재일동포들 힘내세요. 내 전 재산을 털어서 달달히 후원할 테니. 열심히 공부해서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돼서 이 나라가 남북통일이 돼서 평화의 길이 탁 열릴 때까지 내가 이것은 놓을 수가 없어. 여러분의 협조가 필요해. 나만이 잘 살 수는 없어.”



▷ 조선학교 학생들이 할머니한테 답장을 보냈다고요?

▶ 네. 오사카 조선학교 학생들이 추모 영상을 보내왔습니다. 아이들의 목소리 들어보시죠.

<오사카 조선학교 학생들>
“우리는 김복동 할머니를 잊지 않겠어요. 우리말 우리글 앞으로도 잘 배워 나갈래요. 김복동 할머니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봐 주십시오. 우리는 앞으로도 우리말 우리글 열심히 배워 민족의 넋을 지켜가겠습니다. 김복동 할머니는 조국의 영원한 할머니입니다.”

조선학교 학생들은 지난 1일 일본 도쿄 중의원회관 앞에서 추모 집회를 열었는데요. 학생들은 “할머니의 사랑 덕에 마음껏 공부할 수 있게 됐다”며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할머니의 뜻을 이어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풍파 사나운 일본 땅에서도 조선사람으로 떳떳하게 사는 저희를 미소로 언제나 지켜봐 달라”고 했습니다.



▷ 김복동 할머니야말로 진정한 인권운동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 그렇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참상을 국내외에 알리고, 본인도 피해자이면서 다른 피해자들을 돕는데 누구보다 앞장섰죠. 거기다 재일 조선학교 아이들까지 챙긴 겁니다.



▷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분들이 또 있다면서요?

▶ 네. ‘몽당연필’이라는 시민단체입니다. 공식 명칭은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인데요. 배우 권해효씨가 대표고요. 영화 ‘우리학교’를 만든 김명준 감독이 사무총장을 맡고 있습니다.

몽당연필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탄생했는데요. 당시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해서 피해가 엄청나게 컸죠. 인근엔 조선학교도 있었습니다.

김명준 감독은 영화 제작을 위해 조선학교 학생들과 3년 동안 함께 생활한 인연이 있고요. 권해효씨는 드라마 ‘겨울연가’에 출연하면서 일본을 자주 방문했고, 자연스럽게 조선학교를 알게 됐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납니다.

일본 정부의 차별도 버거운데, 자연 재해까지 겹치면서 조선학교는 힘든 시기를 보냈는데요. 그 때부터 조선학교와 함께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된 겁니다. 김명준 감독의 얘기를 들어보시죠.

<김명준 감독 / 몽당연필 사무총장>
“지진 났을 때에 한국에서 아무도 이야기 안 하고 있어서 저희가 좀 답답했죠. 그때에 권해효 대표님하고 얘기해서 우리가 뭐라도 좀 하자. 학교는 피해를 받고 진도 9인데 산꼭대기 학교에서 건물이 휜 거예요. 난리가 나거든요.”



▷ 당시 우리 정부를 비롯해서 국제사회가 일본을 지원했는데, 정작 조선학교는 또 소외된 거군요.

▶ 맞습니다. 그래서 문화예술인들은 공연을 하면서 조선학교를 돕기 위한 성금을 모았습니다. 계속해서 김명준 감독의 설명 들어보시죠.

<김명준 감독 / 몽당연필 사무총장>
“너무 고생하고 있는 것을 트위터로 소식을 접하고, 뭔가 해야겠다 일본 프레이포 재팬이라고 전 세계적으로 하고 있는데 동포들에 대한 관심은 없는 것이 안타까워 만든 게 몽당연필이라는 이름을 짓고 공연을 했어요. 모였던 분들이 주로 예술인들 음악가 이런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공연을 많이 해서 1년 정도 공연을 하면서 돈을 모았죠. 조선학교에 기부하고 그 후에 해체하려고 했는데, 안 된다. ”

현재 몽당연필은 서울시에 등록된 비영리 민간단체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회원은 7백 명 정도 됩니다.



▷ 몽당연필의 힘이 커졌네요.

▶ 네, 몽당연필은 한국에서 조선학교의 존재를 알리는 활동을 하고요. 차별받는 동포들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거리로 나서기도 합니다. 그리고 매년 조선학교를 방문해서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도 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또 한국 청년들과의 만남도 주선하고 있습니다.

권해효 대표는 박근혜 정부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죠. 그래서 일거리도 줄고 많은 차별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타국 땅에서 차별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공부하는 조선학교 학생들을 보면서 오히려 본인이 용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김명준 감독도 조선학교를 도우면서 오히려 자신이 위로를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들어보시죠.

<김명준 감독 / 몽당연필 사무총장>
“갔다가 2~3일 지내다 돌아오면 마음이 빨래가 돼 있어요. 정신적인 피로라든가. 다시 희망도 가질 수 있고,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마음도 갖고. 사실 그것 때문에 가는 거예요. 우리 베푸는 것이 아니라 얻고 와요. 그런 존재들이기 때문에 조선학교 아이들이 우리를 끌어들이고 있다 그런 생각이 많이 드는 것이죠.”

몽당연필 공연의 한 장면 준비했습니다. 일본에서 열린 토크 콘서트 실황입니다.

<몽당연필 일본 콘서트 현장>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학교란다. 초라하지만 단 하나뿐인 우리의 학교.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학교란다. 언제나 우리 마음에 요람이요.”



▷ 힘든 마음이 빨래가 된다는 말이 와 닿네요. 그런데 이름을 왜 몽당연필로 지은 거죠?

▶ 연필은 쓰면 쓸수록 길이가 짧아지지 않습니까? 몽당연필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조선학교 학생들과 함께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실제로 몽당연필 홈페이지엔 “함께 가는 길,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임을 잊지 않겠다”고 써있습니다.



▷ 그렇군요. 서강대 학생들이 다음주에 조선학교를 방문한다는 소식도 있네요?

▶ 네.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가 주관하는 프로젝트인데요. 서강대 청년 14명이 시모노세키 야마구치 조선학교를 방문합니다. 오는 16일부터 7박 8일 일정인데요.

시모노세키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지역입니다. 일제강점기 우리 동포들은 대부분 시모노세키를 통해 일본땅으로 끌려왔거든요. 여기서 일본 전역에 있는 탄광으로 끌려가 강제 노역을 했습니다.

1942년 해저수몰사고로 140여 명의 조선인이 희생된 곳도 시모노세키 해저탄광입니다.



▷ 역사적 아픔이 있는 장소네요. 그런데 아베 총리의 고향이기도 하지 않나요?

▶ 맞습니다. 아베 총리의 정치적 기반이 된 곳이죠. 그 말은 극우 성향의 일본인이 많은 동네라는 뜻입니다. 그만큼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더 심하겠죠. 청년들은 이곳에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마주하고, 조선학교 학생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시간을 보낼 예정입니다.



▷ 출발 전에 열린 사전모임에 다녀왔다면서요?

▶ 네. 청년들은 조선학교 방문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조선학교의 역사와 사회적 배경을 공부하면서 말이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이승훈 씨의 소감을 들어보실까요?

<이승훈 /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어떻게 보면 국가로부터 외면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 조금 더 어려움 고통을 알아가고 제2, 제3의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신중하고 성찰적으로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습니다.”

한국에 조선학교의 실태를 알릴 수 있게 많이 배워오겠다고 한 학생도 있었습니다. 서강대학교 경제학부 이채영 씨입니다.

<이채영 / 서강대학교 경제학부>
“저희는 아는데 한국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 제가 잘 배워와서 알렸으면 좋겠고, 거기 학생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활동했으면 좋겠습니다.”



▷ 이런 움직임이 있다는 게 고무적이네요.

▶ 그렇습니다. 청년들의 조선학교 방문을 앞두고, 김명준 감독이 당부의 말을 전했습니다. 들어보시죠.

<김명준 감독 / 몽당연필 사무총장>
“저희가 교류하며 느끼는 불안은 공부를 많이 하고 가야 해요. 국적을 왜 한국 국적을 유지하느냐 그런 질문 많이 하잖아요. 그런 질문을 하는 순간 뭘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모를 거예요. 왜 조국에서 온 사람이 왜 정체성을 지키느냐 질문하면 어떻게 말을 해요. 상처가 되는 것이죠. 자신도 모르는 부분인데.”

김명준 감독은 호기심이나 행사 목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함께하는 입장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서강대 학생들이 어떤 점을 느끼고 돌아올지 궁금하네요. <맹현균 기자의 불침번>, 세 차례에 걸쳐 재일 조선학교의 실태와 지원 움직임까지 살펴봤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 네. 감사합니다.
cpbc 맹현균 기자(maeng@cpbc.co.kr) | 최종업데이트 : 2019-02-11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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