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침번] 정부가 `조선학교`를 외면한 이유는?

Home > NEWS > 가톨릭

[불침번] 정부가 `조선학교`를 외면한 이유는?



▷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을 불침번처럼 살펴보는 코너죠. 맹현균 기자의 불침번 순서입니다. 맹 기자, 어서 오세요.

▶ 안녕하십니까.



▷ 지난번에 조선학교의 실상을 영화로 살펴봤죠.

▶ 네. 북한으로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렸는데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조국 땅을 밟은 아이들은 진심으로 행복해했습니다. 교복을 입어도 거리낌이 없고, 자유롭게 우리말을 쓰고, 우리말로 노래도 부르고요.



▷ 판문점 북측에서 남쪽을 바라봤던 학생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고향이 제주도라고 했죠.

▶ 맞습니다. 조선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로 고향에 갈 수 없는 학생이었죠. 영화 속 장면 다시 들어볼까요.

<영화 `하늘색심포니`>
"령화 고향은 어디?"
"제주도입니다."
"가본적 있어?"
"없어요."
"조선적을 가진 령화는 고향땅인 한국에 갈 수 없다."

당시엔 한국 방문이 힘들었는데요. 지금은 한국을 방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제주도에 가봤는지는 모르겠네요. 남쪽 땅을 밟았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땅에서 조선학교 학생들에 대한 차별은 여전하다고 합니다.



▷ 오늘은 조선학교의 탄생 배경을 취재했다고요?

▶ 네. 탄생 배경을 말씀드리기 전에 역사적 사실부터 짚어볼까 합니다. 일제강점기로 돌아가 볼까요. 수많은 조선 사람들이 일본 땅을 밟았습니다. 강제징용으로 끌려가기도 했고요. 징병이 돼서 끌려간 사람도 있습니다. 일본이 침략전쟁을 시작한 이후 더 많은 조선인이 끌려갔죠. 직접 전장에 투입되기도 했습니다.



▷ 특히 한반도 남부지방에 살던 분들이 일본으로 많이 끌려갔다면서요?

▶ 그렇습니다. 그래서 재일동포 중에는 남한이 고향인 분들이 많습니다. 해방 직후 일본에 있던 조선인은 무려 200만명이나 됐습니다. 상당수는 고향으로 돌아왔는데요. 하지만 고향 땅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가난했을 수도 있고요. 일본에서 돈을 조금 더 벌고 가야지 했다가 영영 못 돌아간 분도 있을 겁니다. 어찌 됐건, 약 60만명의 조선인이 일본에 남았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재일동포’라고 부르죠.



▷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분들이 많네요.

▶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일제강점기 35년은 너무나 길었습니다. 일본은 우리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앗아갔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의 말과 글입니다. 영화 ‘하늘색심포니’를 연출한 박영이 감독의 말 들어보시죠.

<박영이 감독 / 영화 `하늘색심포니` 연출>
“일본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해방을 맞이했는데, 일본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우리말을 모르는 것이에요. 그래서 1세 동포들이 이 아이들이 언젠가 고향에 돌아갈 것인데 우리말쯤이야 이야기를 해야 고향에 돌아갈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해서 조선학교 세운 것이 시작인 것이죠.”



▷ 재일동포들이 해방 직후 우리말 교육을 중점적으로 시작했다고 했죠.

▶ 맞습니다. 일본 전역에 약 6백여 개의 학교를 세웠습니다. 조국을 되찾았다는 기쁨은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이 됐습니다.



▷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민족의 교육열은 굉장히 높아요.

▶ 네. 그런데 조선학교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냉전이라고 하죠. 이른바 이념 싸움에 휩싸이게 되는데요. 미 군정과 일본 정부는 사회주의자들이 조선학교를 주도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조선학교 폐쇄 결정을 내립니다.



▷ 해방이 됐는데도 장애물이 많았네요.

▶ 네, 해방된 민족이 우리말을 가르치는 게 뭐가 잘못됐나! 재일동포들은 울분을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를 지키기 위한 투쟁에 나섰는데요.

거리로 나섰던 16살 김태일 군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지고 맙니다. 김태일 군은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였습니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일만 했는데요.

학교조차 다니지 못했던 청소년이 왜 조선학교를 지키려고 했을까요. 그만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조국과 민족 소중함을 누구보다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 아닐까요.



▷ 우리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했나요?

▶ 당시 우리나라는 남쪽과 북쪽에 따로 정부가 들어서는 등, 혼란스러웠습니다. 결국 힘없는 남측 정부는 이들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면 북측은 조선학교 지원에 나섰습니다. 박영이 감독의 설명 들어보시죠.

<박영이 감독 / 영화 `하늘색심포니` 연출>
“너희는 일본에 있으니까 일본에 맡기겠다고 버림을 한 것이죠. 그런데 북에서는 일본에 있어도 해외 국민이다. 민족의 한 성원으로 받아들인 것이죠.”

조선학교는 북측을 지지하는 조총련계 학교입니다. 이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단의 혼란 속에서도 북측은 조선학교를 지원해주거든요. 이유는 우리말과 글을 지킨다는 이유였죠. 사상적인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박영이 감독의 말 들어보시죠.

<박영이 감독 / 영화 `하늘색심포니` 연출>
“1957년 처음으로 북에서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돈을 많이 보내왔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재일동포들이 북을 지지하고, 조국이라고 말하기 시작한 것이에요.”



▷ 가장 어려웠을 때 도와준 거네요.

▶ 맞습니다. 사실 재일동포들은 이념, 사상, 이데올로기 이런 것까지 고민할 여력조차 없던 거죠. 박영이 감독의 말 들어보시죠.

<박영이 감독 / 영화 `하늘색심포니` 연출>
“한국에서는 아마 조선학교 하면 조총련=빨갱이 학교 이런 식으로 몰아가기 마련인데, 총련 속에서도 북한 국적과 한국 국적 사람이 있고, 조선학교의 반 50%는 한국 국적이에요. 저도 한국 국적이에요.”



▷ 그런데 한국 국적인 사람이 북측을 지지하는 학교에 다녔다는 점도 이해가 잘 안 됩니다.

▶ 앞서 말씀드렸지만, 우리말을 가르치는 곳이 조선학교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박영이 감독은 우리말을 가르치는 곳이 여기 밖에 없는데, 그럼 일본학교를 보내라는 말이냐고 되묻더라고요.

실제로 조선학교에 자녀를 보내지만, 많은 사람이 북한이나 조총련을 지지하진 않는다고 합니다. 이들에게는 이념이나 사상, 이런 것보다 민족이 상위 개념으로 자리하고 있는 거예요. 남북으로 갈라지기 전 조선은 하나였으니까요.

그런데 일본에서는 조선학교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거죠. 재일동포를 차별하는 논리 자체가 분단 구도가 만든 비극인 것입니다. 계속해서 박영이 감독의 말 들어보시죠.

<박영이 감독 / 영화 `하늘색심포니` 연출>
“북이냐 남이냐 이렇게 해서 사상이나 정치로 몰아가는 그것 자체가 냉전 구도, 분단의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 그런데 조총련계 학교면 교육 시스템도 북한 방식을 따른 것 아닌가요. 우상화 교육 이런 거요.

▶ 북한식 교육은 맞습니다. 북한 노래를 배우기도 합니다. 그런데 조선학교 학생들은 사실 일본에서 나고 자랐거든요. 자본주의 문화에서 컸다는 뜻입니다. 일본에서 살기 때문에 기본 생활이나 문화, 이런 지식은 일본과 똑같습니다.

영화 우리학교를 연출한 김명준 감독의 설명 들어보시죠. 조선학교에서 3년 동안 직접 살면서 이들을 지켜본 분입니다.

<김명준 감독 / 영화 ‘우리학교“ 연출>
”아이들은 일본땅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 문화 안에서 살고 있죠. 교육이 어떻다고 하더라도 생활 속에서 영향을 안 받을 수 없는 것이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우리나라 아이들과 즐기는 문화라든가 생각 방식이라든가 큰 차이는 없는 것이죠.“

김명준 감독은 조선학교 학생들의 모습은 오히려 남한의 학생과 더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김명준 감독 / 영화 ’우리학교‘ 연출>
”왼쪽 오른쪽보다 학교 교육이 어쨌든 아이들은 학교에서는 이렇게 배우고 저렇게 배워도 문화적으로는 오히려 북보다는 남쪽이 더 가까운 것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고. 그렇다고 북과 거리가 멀다 이건 아니라 학교에서는 제대로 북의 역사라든가 한반도 역사 제대로 배우기 때문에 몸 안에 마음 안에 남과 북이 함께 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러니까 재일동포들이 차별과 압박 속에서도 민족교육을 지속한 이유는 한반도가 조국이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면 우리는 조선학교 학생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 영화 하늘색심포니의 한 장면을 들어보시겠습니다. 북한으로 떠난 수학여행 마지막 밤입니다. 저녁식사 자리가 울음바다로 변합니다. 조국을 떠나는 날 아침, 애정어린 응원에 또다시 눈물이 밀려 나옵니다.

<영화 `하늘색심포니`>
"읽어보라. 소리내서."
"세상은 착한 마음만 갖고는 못 산다. 강하게도 돼야 한다. 힘차게 나아가라. 응원한다."
"특히 일본에서 그래. 알겠어? 내 말뜻을 살아가면서 계속 생각해."

학생들의 눈물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동안 이들은 환영받은 적이 없습니다. 우리말을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차별은 심해졌습니다. 하지만 조국 땅에서는 달랐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일본에서 우리말을 지키느라 고생 많았다고 어깨를 두드려주고요. 돌아가서도 기죽지 말라고 격려합니다. 이 짧은 한마디가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큰 격려가 됐을 겁니다.



▷ 그래서 학생들이 일본으로 돌아가기 싫어하는 거군요.

▶ 맞습니다. 여전히 일본 사회는 조선학교 학생을 차별합니다. UN에서도 "어른들의 이데올로기 싸움에 교육권이 침해돼선 안 된다"고 권고합니다. 하지만 소용 없습니다. 역사적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김명준 감독의 말 들어보시죠.

<김명준 감독/ 몽당연필 사무총장 · 영화 `우리학교` 연출>
"일본이라는 나라 안에서는 이 사람들이 유독 심하게 차별받고 있는 것이고 차별받는 이유는 분단 때문이고 차별받는 이유가 과거의 역사를 반성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차별받고 있는 것이거든. 우리가 함께 해결하지 않으면 차별을 해소할 수 없어요."



▷ 조선학교 학생을 평범한 학생으로 볼 필요도 있을 것 같아요. 교육 받을 권리는 동일한 거니까요.

▶ 맞습니다. 이념이나 역사, 민족을 떠나서 그냥 학생으로 바라보면요. 절대적으로 소수이며 약자인 집단이 기본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명준 감독도 이런 점을 많이 안타까워 했습니다.

<김명준 감독/ 몽당연필 사무총장 · 영화 `우리학교` 연출>
"한반도에서 파생된 아이들로만 보시지 마시고 그냥 한 평범한 학생으로 보시면 애들이 왜 차별을 받아야 되는가. 왜 학교에 협박전화가 그렇게 와야 하는가. 그런 고민을 많이 하시면서 보면 좋고."



▷ 우리 정부가 한국에 있는 일본인 학교를 지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일본 정부가 조선학교를 차별하는 게 참 안타깝고 아쉽고 그렇습니다.

▶ 네, 우리는 일본에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면서도 조선학교에 대한 지원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조총련계 학교라는 점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요.

오히려 시민사회단체들이 조선학교를 지원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명준 감독은 조선학교의 존재를 알게 됐을 때 너무나 부끄러웠다고 했습니다. 들어보시죠.

<김명준 감독/ 몽당연필 사무총장 · 영화 `우리학교` 연출>
"존재를 알았을 때 되게 부끄러웠죠. 분단이 초래하는 아픔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구조적이든 사회 편견이든 우리한테 전달되지 않았구나 그런데 그 우리가 전달받지 못하고 그 시간동안 이 분들이 겪은 아픔을 생각하면 되게 미안한 것이죠."



▷ 아픈 역사 속에서 여전히 설움을 받고 있는 동포들의 상황,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 네, 지난주에 돌아가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도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도 하셨는데요. 그래서 다음 시간에는 이 부분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 <맹현균 기자의 불침번>, 지난 시간에 이어서 조선학교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cpbc 맹현균 기자(maeng@cpbc.co.kr) | 최종업데이트 : 2019-02-06 08:00

■ 인터뷰 및 기사를 인용보도할 때는 출처 'cpbc 가톨릭평화방송'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가톨릭평화방송 · 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