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6.25 전쟁을 전후해 희생된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와 동료 37위’의 국내 시복절차가 모두 끝났습니다.
관련 자료들은 교황청 시성성으로 보내져 최종 심사를 받게 됩니다.
리길재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운회 주교 / ‘신상원 보니파시오와 동료 37위’ 시복 예비심사 관할 주교>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와 동료 37위’의 생애, 덕행, 그리고 순교 명성에 관한 예비심사가 2017년 10월 19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열린 제17차 폐정 회기로 종결되었음을 선언합니다.”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와 동료 37위’의 시복 예비심사가 지난 19일 춘천교구장 김운회 주교의 교령 공포로 폐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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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와 동료 37위’ 시복 예비심사 관할 주교인 김운회 주교가 법정 문서에 직인을 찍고 있다. |
시복 재판 법정 개정 8년 만에, ‘신상원 보니파시오와 동료 37위’의 생애와 덕행, 그리고 순교의 명성에 관한 조사가 마무리 된 것입니다.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와 동료 37위’는 6·25전쟁 전후 시기인 1949년부터 1952년까지 북한 공산 정권에 의해 체포돼 순교했거나 순교한 것으로 추정되는 성 베네딕도회 남녀 수도자들과 헌신자, 덕원자치수도원구, 함흥교구, 연길교구 소속 사제들입니다.
한국인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가 13명, 독일인 사제와 수도자가 25명입니다.
주요 인물로는 초대 원산교구장이며 덕원수도원장인 신상원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 아빠스와 덕원수도원 출신 첫 한국인 사제인 김치호 신부 등이 있습니다.
이번 시복 재판이 한국 가톨릭교회사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이들이 우리 역사의 한복판에서 우리 민족과 운명을 함께 나누었다는 데 있습니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의 정치 사회적 혼란, 그리고 6·25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족의 절망과 아픔을 고스란히 몸으로 겪은 분들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삶과 죽음은 그 자체로 이미 한국 현대사의 일부이며, 그들의 순교 사건은 한민족의 비극과 별개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들 38위 순교자들이 우리 현대사에 끼친 영향력을 생각할 때 이들의 순교 행적은 교회 안에서뿐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이가 가슴에 품고 공경할 만합니다.
<장익 주교 / ‘신상원 보니파시오와 동료 37위’의 시복 재판장>
“이런 삶이 더욱 밝혀져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도대체 뭐며 어떻게 살겠다는 얘긴지가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 삶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밝혀지는 그런 은혜를 입었으면 하는 그런 마음 뿐입니다.”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와 동료 37위’에 대한 시복 예비심사 조서 원본은 시성 절차법에 따라 춘천교구 문서고에 보관되고, 사본과 번역본은 교황청 시성성으로 보내져 최종 심사 자료로 이용됩니다.
<박현동 아빠스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장(시복시성 청구인)>
“이걸 시작하면 앞으로 우리 한국에서 제출할 6.25 때 돌아가신 분들, 신부님들 이런 안건들에 대한 경우에는 좀 더 원활하게 또 진행될 수 있는 측면도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cpbc 리길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