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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소사

< 2020 / 7 >
SUNMONTUEWEDTHUFRISAT
   
 

김대건 신부, 순위도(巡威島)에서 체포(병오박해의 계기)

  • 연도 : 1846년 06월 05일
    1846년 5월 13일 서울을 떠난 김대건 신부는 황해도 연안의 백령도에 다달아, 배를 빌려 해로를 찾던중 순위도(巡威島)에서 포졸들에게 잡히는 몸이 됐다. 김대건 신부는 배주인인 임성룡과 뱃사공 엄수 등과 함께 옹진(甕津) 옥에서 고문을 당하고, 5일 후 해주로 이송되어 신문을 받았는데, 그의 신분 이 알려지자 해주감사는 일의 중대성에 놀라, 그를 곧 서울로 압송했다. 그런데 때마침 그해 6월 하순 프랑스 군함 세 척이 조선에 와서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때 순교한 앵베르 (IMBERT, 范世亨 ), 샤스탕 (CHASTAN, 鄭牙各伯 ), 모방 (MAUBANT, 羅伯多록 ) 등 프랑스인 세 성직자를 죽인 책임을 묻게 되자, 민심이 흉흉하여 정부에서는 김대건 신부 처형을 서둘렀다. 그 결과 김대건 신부는 그해 9월 16일 한강 새남터에서 참수되어 순교하고, 김 신부의 뒤를 이어 끝까지 신앙을 지킨 현석문 등 남녀교우는 그해 9월 20일 모두 순교했다. * 사진 - 김대건 신부 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