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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소사

< 2021 / 1 >
SUNMONTUEWEDTHUFRISAT
     
      

冬至使 조윤대와 副使 서미수 등이 討邪泰文과 假帛書를 갖고 북경행

  • 연도 : 1801년 12월 02일
    황사영 백서 사건이 일단락되자 조정은 동지사 조윤대를 통해 주문모 신부 처형과 신유박해 결과를 적은「토사주문」과 황사영 백서를 조작한「가백서」를 청나라 황실에 보냈다. 신유박해는 조선 천주교회에 큰 타격을 입혔다. 신유박해는 조선 천주교회에 가해진 최초의 전면적인 박해로 지도층 신자는 거의 다 순교하거나 유배를 떠나 교회는 빈사 상태에 빠질 만큼 폐허화됐다. 하지만 신유박해는 천주교 신앙을 보다 더 넓은 지역으로 전파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살아남은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경기도, 충청도, 강원도, 경상도의 산간 지방으로 숨어 들어가 복음을 전파했다. 결국 신유박해는 일시적으로 교회에 큰 타격을 주었으나 궁극적으로는 천주교가 더욱 발전하는 밑거름이 됐다. 또 신유박해를 거치면서 천주교가 민중 신앙으로 자리잡게 됐다. 신유박해를 계기로 중인 이하 신분층 신자들의 교회 내의 역할과 비중이 이전에 비해 훨씬 커지게 돼 천주교회의 민중적인 성격이 더욱 뚜렷해졌다. * 사진 - 광주대교구 영광본당, 신유박해 순교자 기념 새 성전 기공(2013-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