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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소사

< 2020 / 11 >
SUNMONTUEWEDTHUFRISAT
     

순교 복자 유항검 등 5명, 신유박해로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

  • 연도 : 1801년 10월 24일
    유항검 柳恒儉 (1756-1801) :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 전주 출생, 윤지충의 이종사촌. 윤지충에게서 교리서적을 빌어 보고는 이를 더 깊이 연구하기 위해 권일신을 찾아가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가성직제도에 의해 신부의 권한을 위임받은 그는 고향에서 전교에 온 정열을 쏟 아 호남지방 교회창설의 초석이 되었으므로 <호남의 사도>로 불리게 됐다. 가성직제도가 교리에 어긋나며 독성행위가 됨을 깨닫고 이를 시정키 위해 북경 주교에게 문의편지를 내게 한것도 그였다. 이렇게 해서 주문모 신부가 입국해 지방에 내려 왔을 때는 자기 집에 머무르게 하여 함께 전교에 힘썼다. 1801년 신유박해때 전라도 지방에서는 그가 제일 먼저 체포돼 혹독한 고문을 받고 서울로 압송되었다. 그는 형조 심문에서 외국인 신부의 입국을 도와 내통하였고, 사교를 믿었을 뿐만 아니라 청나라에 청원서를 냈다는 죄목으로 사형언도를 받았다. 전주감영으로 다시 이송되어 1801년 10월 24일 참수됐는데 그의 나이 46세였다. 달레(Dallet)는 그를 순교보다는 배교쪽으로 보고 있으나 모두 확실하지가 않다. 부인 신희, 큰아들 유중철, 며느리 이순이, 둘째아들 유문석, 동생 유관검 등이 처형됐고, 나이 어린 세 자녀는 유배됐다. * 사진 - 유항검 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