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오늘의 소사

< 2020 / 11 >
SUNMONTUEWEDTHUFRISAT
     

황심, 신유박해로 서소문밖에서 순교

  • 연도 : 1801년 10월 24일
    황심 黃沁 (1756-1801) : 순교자, 세례명 토마스, 충청도 덕산출신으로 본명은 인철. 내포의 사도로 불리는 이존창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한 후 지황, 윤유일과 더불어, 조선교회와 북경주교와 연락을 담당했다. 1794년 12월 북경 주문모 신부를 영입하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주문모 신부 입국사실이 탄로나 1795년에 윤유일, 지황이 잡혀 순교한 뒤로는 황심이 주로 북경과 연락을 맡았다. 1796년에 주문모 신부의 서한을 북경 주교에게 전달하기 위해 동지사(冬至使)의 하인 자리를 돈 주고 사서 북경에 들어가 밀서를 무사히 전달했고, 그 뒤에도 여러번 옥천희, 김유산 등과 함께 북경을 왕래하면서 조선교회의 사정을 북경에 알리는 동시에 조선교회에서 성사집행에 필요로 하는 성유 등 성물을 가져와 주 신부를 도왔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강원도 춘천으로 피신했는데, 이 때 황사영이 가까운 곳에 피신해 온 것을 알고는 제천으로 그를 찾아가, 주 신부의 순교사실을 알리는 동시에 조선교회의 이같은 사정을 북경 주교에게 알리는 방안을 의논했다. 이렇게 해서 황사영은 북경 주교와 면식이 있는 황심의 이름으로 백서를 쓰게 됐으나 10월 3일 황사영이 잡혔고, 그는 1801년 10월 24일 옥천희와 서소문밖에서 순교했다. * 사진 - 서소문순교성지.